나의 아이돌, 나의 우상 -2

일상에 반항하고, 비일상에 도전하기

by 난편

2025년 10월 06일 17:20


학창 시절 학기가 끝나고 방학식날, 나는 늘 상장을 받았다. 근면과 성실함의 상징 ‘개근상’이었다. 어른들 말은 곧이곧대로 따르던 나는 야간자율학습 한번 걸러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성적은 중상위권에서만 머물렀다. 시험성적표를 받는 날, 매번 야자를 도망치던 친구들이 나보다 높은 성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억울함과 열등감으로 그날 하루를 망치곤 했다.

어른이 된 나는 나이만 늘어난 것처럼, 가장 오래 일하지만 퍼포먼스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었다. 야근과 철야는 나의 일상이었고, 에너지 음료는 나의 상징이 되었다. 당연히 건강은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나의 야근과 철야는 멈추지 않았다. 늘 작업시간이 모자랄 때면, 먼저 나서서 주말과 휴가를 반납했다.

늘 집단이 정한 일정에 반항하지 않으며 살아온 삶. 이 순종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람들은 날더러 유달리 높은 책임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은 칭찬처럼 들렸다. 이 착각에서 깨어난 건 올해 초였다. 나 때문에 야근을 함께 하는 팀원들의 원망 어린 눈빛에 숨 막혀하며 생각했다. 책임감이 높은 게 아니었다. 그저 그런 퍼포먼스의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 시선을 마주하는 나의 불안 때문이었다. 더 나은 퍼포먼스를 얻기 위한 노력은 귀찮으니까, 그저 일하는 시간을 늘려, 불안과 미안함을 덮어 타인과 스스로를 속이려는 것이었다. 성과를 내는 노력은 힘들어서 싫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비판은 듣기 싫은, 양심과 무성의 사이의 애매한 어딘가 쯤, 그곳이 늘 내가 있었던 곳이었다. 무겁지만 빠르게 전개되던 사고가 하나의 결론 앞에서 멈췄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상을 포기하는 삶, 이제는 멈춰야 한다. 그 결론은 마치 이 순간을 위한 변명처럼 느껴졌지만, 오랜 고민 속에 머물던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서두가 길었다. "정말 취소하시겠습니까?"라는 선택지 앞에서, 나는 조용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니요’.

나는 주말 출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콘서트 당일 적당히 오전 11시쯤 일어났다. 후줄근한 티셔츠와 바지를 챙겨 입고, 간단히 짐을 쌌다. 도착까지 2시간은 족히 걸릴 거 같았다. 지하철만 두 번을 환승해서 인천의 한 경기장에 도착했다. 락콘서트라서였을까. 경기장이 가까워질수록 어둑어둑하고 편한 옷들을 입은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나도 그 어둠의 무리에 섞여 자연스레 목적지로 걸어갔다. 대기 장소에 서서 뒷목을 때리는 햇빛에 목 뒤가 따가울 때 즈음 입장할 수 있었다. 시원하게 탁 트인 파란 하늘이 공연장의 지붕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처음 경험해 보는 스탠딩 공연에 머뭇대고 있을 때, 내 앞에 서있던 이름 모를 콘서트 고수님의 역동적인 헤드뱅잉에 맞춰 나 역시 눈치 보지 않고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2개의 오프닝 공연으로 예열을 끝내고, 하늘이 어둑해질 즈음 나는 드디어 뮤즈를 만날 수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얼굴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그들은 쉴 새 없는 연주와 20년이 지나도 녹슬지 않은 노래실력으로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를 뛰게 했다. 직접 마주한 그들의 퍼포먼스는 가히 환성적이었고, 나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이 꿈같은 현실에 집중했다. 마지막 무대로 뮤즈는 ‘스타라이트’를 부르며 폭죽으로 밤하늘을 별빛으로 물들였다. 사람들은 별빛으로 가득 찬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목청껏 떼창을 불렀고, 나는 그 축제 속에 숨어 눈물을 흘렸다. 방과 후 조그만 휴대폰에 담아보던 그들의 공연이, 현실로 내 눈앞에 다가왔었다. 그때로부터 20년이 흘러 기어코 이 자리까지 비집고 들어왔지만, 내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은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버텨낸 스스로가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노래를 20년 동안 들으면서 과연 온전히 성장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뿌듯함과 회의감 그 어딘가 쯤 애매한 감정이 느껴졌다.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공연의 여운은 아직 가시질 않는다. 현실로 다가왔었던 그들의 공연은, 다시 내 조그만 휴대폰에 담겼다. 다음에 뮤즈가 한국을 찾을 때,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어른에 좀 더 가까워져 있을까. 변명 같았던 결심, 일상과 업무 모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행동으로 완성되어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조금은 자신 없는 물음을 뒤로한 채 혼자 ‘스타라이트’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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