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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Jan 08. 2021

'여기'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국민임대에 살면서 들은 이야기들

'달팽이, 거북이는 나보다 낫네. 집 걱정 안하고 살아도 되고...'


 나는 진료를 마치고 내과 병원 대기석에 잠시 앉아 이런 속엣말을 되뇌었다. 내과 의사에게 들은 어떤 말 때문이었다.


 잠깐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엑스레이 촬영실의 간호사다. 폐 사진을 찍어야 하니 속옷을 탈의하라고 부른 것이다. 나는 가운을 입고 나와서 불편하게 대기실에 다시 앉았다. 맨 가슴으로 얇은 가운 하나 걸치고 사람 많은 대기실에 섞여 있자니 몸이 조금 움츠러들었다.


 "겉에 걸칠 가운이라도 하나 더 드릴까요?"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친절하게 말했다. 그동안 엑스레이 찍으러 와서 가운을 두 개 걸쳐본 적이 없어서 마치 내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팽이, 거북이를 생각하던 아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그러고보면 살면서 이렇게 아무 이유 없는 친절을 받고, 베풀던 그런 때가 꽤 있었는데. 그럴 때 삶은 마치 고양이 발처럼 사랑스럽고 몽글몽글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임대 아파트'에 살고 나서부터는 그런 친절을 바랄 것도 없이 괜히 움츠러드는 일이 왕왕 생겼다.


 이어서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런 때에 관한 것이다. 일단, 병원에서 달팽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부터 이어서 해야겠다.


 얼마 전부터 잠을 좀 설쳤더니 목에 멍울 같은 게 느껴져서 단지 옆에 위치한 큰 내과에 갔다. 동네 병원 치고는 검사 장비가 꽤 잘 갖춰져 있어서 종종 이용하는 곳이다. 정형외과만 다니다가 내과는 처음 가봤는데 의사는 꽤 젊은 여의사였다.


 내 목을 한 번 만져보고 열이 있는지, 기침은 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열도 없고 기침도 전혀 없으며 문제가 되는건 근육통 같은 이 멍울이라고 대답했다. 의사는 그런 내게 갑상선 초음파와 폐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다.


'목이 아픈데 폐 엑스레이는 왜...?'


 내 호흡기 질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 의아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갸우뚱 하니 의사는 말했다. 손바닥을 들어 바로 옆 국민임대 아파트 단지 쪽을 가리키며 "여기 사시잖아요."

 

나는 의아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결핵 검사도 해봐야 돼요. 결핵이 있어도 임파선이 붓거나 할 수 있거든요.

 그...아시다시피...여기 사람들(국민임대 입주자) 중에 결핵이 은근 많아서요.

 그러니까 폐 사진까지 찍고 다시 보죠"


 의사의 방을 나선 직후, 나는 여러가지 질문을 떠올렸고 혼자 그럴싸한 대답을 찾기 시작했다.


첫번째. 나는 여기 살기 때문에 결핵에 걸리기 쉽다 ( O / X )

두번째. 여기는 결핵 환자가 많다. ( O / X )

세번째. 의사는 진료 시 나의 거주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O / X )

네번째. 의사는 내가 결핵에 감염될 것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 O / X )

다섯번째. 내가 여기 사는 것이 질병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 O / X )

여섯번째. 환자들은 흔히 진료 시 이런 말을 듣곤 한다. ( O / X )

일곱번째. 의사가 엑스레이 영업을 위해 무리한 근거를 들었다. ( O / X )


 여기에 대충 써놓은 이유들보다 수많은 이유들이 머리속을 떠돌았다. 갑상선 초음파를 보면서도 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혹시 내가 괜히 예민한건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런것은 아닌지 자기 검열이라도 해야했다. 갑상선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뭐라뭐라 말했지만 사실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은 계속되었고 폐 엑스레이를 기다리던 의자에 와서는 달팽이를 부러워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 의사는 내 목의 멍울보다 더 풀기 어려운 혹을 달아 주었다. 나는 이런게 혹시 혐오가 아닌가 하고 생각 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혐오는 증오하거나 싫어하며 기피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마치 인종차별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과거 백인들이 흑인은 열등하다는 편견을 갖고 흑인을 그 편견 너머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에게 나는 나 자체보다 '여기' 사는 사람으로만 구분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들이 국민임대에 관해 보고 듣는 것이라곤 '낮은 임대료', '돈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생활 수준이 열악한 곳','범죄나 사건이 잦은 곳','섞이기 싫은 곳' 정도가 아닐까?


 나를 갸우뚱 하게 한 일은 또 있었다. 어느 날 친정 아빠가 우리 단지에 놀러왔다. 아빠는 나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가 놀이터를 지나던 중이었다.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우르르 무리지어 놀고 있었는데 아빠는 아이들을 보고 감탄했다.

 

 "영세민 아파트에 태권도 다니는 애들이 뭐 이렇게 많냐?"


 나는 또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빠에게 국민임대란 영세민 아파트이며, 학원 보낼 돈도 없는 부모들이 사는 곳 정도로 보였나보다. 그런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버젓이 태권도복을 입고 놀고 있으니 놀라셨던건가. 아빠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이사온 뒤로, 이따금씩 이런 일을 겪었다. 한번은 지역 커뮤니티 게시글에 이런 글도 올라왔다. 마을버스 제일 뒷자리에 탄 청소년 학생들이 우리 단지 정류장을 가리키며 "휴거, 휴거(휴먼시아 거지)"라고 낄낄대는 모습을 보고 속상했다는 글이었다.


 호기심에 임대아파트라고 검색해보니 이런 글도 올라온 것이 보였다.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막 이사온 주부가 쓴 글이었는데 '이 동네 임대아파트 차별 심한가요?'라는 주제였다. 이 동네는 부자 동네라서 차도 외제차에 가방도 다 명품이더라. 나는 기죽어서 기도 못 펴겠다는 요지의 글이다.


 그 글에 달린 댓글은 이러하다. 임대아파트라도 공무원 임대아파트 아니냐, 부부가 다 공무원이면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 직업을 가지고선 왜 그러시냐. 그 중에 내 가슴을 또 한 번 철렁 하게 한 댓글은 '공무원 임대아파트는 일반 임대랑은 달라요.'라는 댓글이었다. 어떻게든 여기는 구분지어지는 곳이구나.


혐오란 곧 구분지어지는 것 아닐까. "나는 여기 속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안심이 된다면 그것이 곧 혐오다. 꼭 돌을 던지고, 인상을 찌푸리고, "쟤랑 놀지마" 하고 드러내지 않아도 이미 우리 마음 속 깊숙한 곳에 혐오는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생각에서 자유로운 사람인가를 생각해볼 ,  역시도 자유로울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사회가 많이 발전하고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우리는 혐오와 차별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하는 세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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