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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Jun 26. 2021

경단녀의 발목을 잡는 것들

10년차 경단녀로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다시 일하고 싶어졌다. 


'왜 갑자기...?' 라고 묻는 여러 지인들에게 나는 이런 대답을 해 주었다.


"둘째도 이젠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고, 이젠 나도 다시 자리를 잡아보고 싶어"

"남편 벌이에만 의존하고 싶지 않아. 경제력도 그렇고 나도 내 이름으로 4대보험에 가입하면 좋겠지"

"큰 애 학교 다니면서 가르치고 싶은게 많아졌어. 외벌이로 학원비 다 감당하려면 부담이긴 해"

"내가 좀 일찍 결혼했잖아. 그래서 그런가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 많이 남았나봐"


나는 이렇게 여러가지 대답을 내놓았지만 사실 진짜 내 생각은 숨겼다.


그들에게 대답하기 전에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왜 내가 일 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 이토록 이유가 필요한 일인지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업을 위해 애쓰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유독 결혼, 출산, 육아를 경험하느라 경력에 공백이 생긴 여성들은 이런 삶에서 예외의 존재 같다. 다시 일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타당함을 피력하듯 이유부터 설명하게 되니 말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왜 일하려고 하냐고 묻는 지인들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 같다. 경단녀는 자신이 다시 일 하기로 결심했다고 주변에 알리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나는 오랫동안 일을 쉬었기 때문에 컴퓨터 자격증부터 따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나이도 차고, 경력에도 공백이 큰 나를 어여삐 봐 줘서 간신히 취업에 성공했는데, 내가 컴퓨터도 제대로 다룰 줄 몰라서 동료 직원들이 내 컴퓨터 선생님이 되게 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서너 시간씩 컴퓨터 공부와 씨름을 벌였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서 비는 오전 시간이나, 오전에 집안일이나 병원 진료 등 스케줄이 있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던 날이면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필기와 실기 공부를 했다. 함수 때문에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필기는 필기대로 실기는 실기대로 나를 몇 번이나 멘붕에 빠뜨렸다.


'내 나이 서른 중반에 이 자격증 하나 딴다고 어느 회사에서 나를 오라고 하긴 할까? 쓸데없이 시간만 버리는건 아닐까?' 


마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 나는 네이버의 도움을 받았다. 좀 우습지만 '컴활1급 꼭 따야'로 검색해 본 것이다. 댓글들의 반응은 거의 아래와 비슷했다.


'취업준비하는 문과생 -> 컴퓨터 자격증은 '필수' 입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준비하는 취준생치고 컴퓨터 자격증 '도' 없으면 취업을 '준비'한다고도 말 못하죠. 애초에 공기업, 공단 문과 사무직은 기본이 되는 가상점인 컴퓨터 가산점 없으면 99% 아니 100% 서류 광탈 입니다.'


'그래, 나는 나이도 많고, 경력도 공백이 커. 공기업이나 대기업 가는 사람들이 꼭 준비하는 자격증이라면 대기업 아닌 기업에서도 이런 자격증 반겨주겠지. 내가 이런 노력이라도 해야지'


나는 이렇게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컴활 1급 때문에 머리가 터질 무렵, 지인은 나를 위해 간혹 지역 알바 자리 중에서 컴퓨터 능력이 필요없는 이런 것있다며 공고를 스크랩 해 보여주기도 했다. 


[ㅇㅇ교육기관 사무보조 모집]

자격:1980년 이후 여성(경력 무관)

7월 근무 가능하신 분

시간: 월~금 오전 08:30 ~ 오후 3:00

장소: ㅇㅇ구 ㅇㅇ동

업무: 스쿨버스 차량보조, 간단한 사무업무, 조리보조, 교육활동보조, 간단한 청소

급여: 월 120만원


누군가의 일자리가 될 소중한 공고는 맞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 지인이 생각하는 일자리의 모습은 사뭇 차이가 있었다. 지인이 왜 그런 일자리를 스크랩해서 보여주었는지도 사실은 알만 하다.


경단녀 여성을 위한 일자리는 매번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성인력센터나 여성복지회관 채용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무슨 말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곳에서 내가 최근에 본 공고들은 이러하다. 


[출처: 성남시청 여성복지회관 취업게시판]


방역인력, 구내식당 주방 보조, 환경미화원, 제빵보조, 캐셔, 사회복지사, 청소원이 게시판 10줄 중에 7줄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학교 일자리, 사무보조 등의 일자리가 2-3줄 자리잡고 있다. 


7줄을 차지하고 있는 그 일자리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아이를 돌보는 여성을 배려한 시간제 일자리가 당연히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고려하더라도 경단녀를 거리낌없이 환영하는 직업의 폭이 정말 좁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4대보험 적용이 가능한, 다양한 직무 분야 중 하나에 속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다시 쌓아나가고 싶다. 기왕이면 내가 결혼 전부터 하던 경력과 연관되는 직무라면 더 좋겠다. 


현재 내 머리에 피터지는 배움의 고통이 있더라도 나는 그런 일을 다시 할 수만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이룰 생각이다. 진출의 벽이 높은 게 현실이라는 것도 알지만 나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도 시험해보고 싶다. 이렇게 경단녀는 직업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도 하나의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도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가족 때문이다. 특히, 남편은 내가 무슨 엄청난 능력자라도 되는 줄 안다. 컴활 1급 자격증 합격 소식을 알린 그 날, 남편은 내게 토익 시험을 다시 치라고 했다. 


"당신은 이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준비 할 수 있는만큼 더 하고 일자리 찾아봐도 늦지 않아. 당신 영어도 잘하잖아. 토익 점수 만료 됐을텐데 그것까지만 더 도전해봐"


남편은 결혼 전부터 열심히 일 했던 내 모습을 기억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더 준비하라는 남편의 말이 고마웠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컴퓨터 시험이 끝나고 합격 소식을 알리자마자 내가 또 토익공부를 한다고 하니 지인으로부터 또 그 소리를 들었다.


"영어 공부는 왜 해요? 어디에 필요한데요?"


설명하기 싫었지만 나는 또 다시 이유를 설명했다.


"아무래도 직장을 알아보기 전에 뭐든 최선을 다 해보면 좋잖아요. 남편도 제가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남편이 더군다나 육아 휴직을 써서라도 제가 다시 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니 고마워서라도 열심히 더 해보려고요"


이것으로 대충 설명이 될 줄 알았지만 지인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아니, 남자가 책임감 없이 육아휴직을 해? 그럼 큰일나~ 여자가 밖에 나가 일 하면 남자가 여자 믿고 일 안한다? 두고 봐~ 그러다 남자 일 욕심 없어져서 안 돼~"


나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생활력 강한 여자 등골 빼먹으며 서방질하는 얼굴도 모르는 이웃집 남편 욕을 그렇게 했는데. 지인의 말에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뭐 그런 맥락인가.


그동안 내가 두 번씩 대학병원 입원해가며 두 아들 낳고, 회사에 어렵게 휴가 써가며 내 병수발 들어주던 남편이었다. 결혼 10년차가 되기까지 한 번도 쉬지않고 성실하게 일해온 남편과 지인의 이야기가 겹쳐질만한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결혼한 여성이 바깥일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도움이 절실하다. 사정이 허락하는 워킹맘들은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등에 업어가며 회사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손길이 엄마에서 엄마로 대를 이어 전해지는 것이 아이 입장에서도 편할 테지만 남편의 도움이 빠져서야 되는가 싶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다가 결혼 후 퇴직한 지인을 알고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세 군대 대학병원에 지원했다가 모두 붙어서 가고 싶은 대학병원을 골라갔다고 한 능력자다. 그러나 현재는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다. 


그러다가 최근, 코로나 때문에 간호사 인력이 한창 부족하다는 뉴스가 나오던 때 그녀는 용기있게 다시 간호사로서 인력 지원에 나섰다. 다시 현역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 요즘 난다고 했던 그녀였다. 내가 한창 컴퓨터 자격증을 준비하느라 피터질 때 그녀는 내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었다 


두 달 뒤에 만난 그녀는 다시 집에 있었다. 남편이 첫 한 달은 그래도 와이프가 일 한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곧 밥상이 달라지고 집안이 예전같지 않으니 한 달만에 다시 집에 들어오면 안되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게 그녀가 일을 지속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남편의 입김이 아내에게 얼마나 세게 작용하는가. 


남편이 격려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푼돈 번다고 집안일에 소홀하다고 일 하지 말라느니, 여자가 돈 벌면 남자가 돈 안 벌고 밖으로 놀러다닌다느니 하는 말이나 듣고 앉아있어야 하는 형국이라니. 런 힘 없는 말들조차 다시 일하고자 하는 경단녀를 어렵게 만든다.


헤쳐가야 할 것이 많기도 하다. 나는 경단녀라는 말도 거부하고 싶다.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뜻 아닌가. 왜 끊어져야만 하는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은 왜 잘려나가야 하나. 


쉼이 길어져서 일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컴활 1급 공부하면서 힘들었던걸 생각하면 이런 공부 없이 사무실에서 일했다면 어땠을까 아주 아찔하다. 그러나 이젠 아니지 않은가. 그땐 못 했지만 이젠 할 수 있다. 경력의 공백이 곧 능력의 삭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다시 출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한 명의 구직자로 보아주길. 너무 큰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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