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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Sep 07. 2016

살아있는 꽃게를 손질하던 날

"미안해 꽃게야...정말 미안해.."

가을 제철을 맞은 꽃게인지라,

우리 집도 꽃게탕 맛을 좀 봐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온라인 장보기로 꽃게 몇 마리를 주문했다.


꽃게를 장바구니에 담기 전, 

옵션 중에 냉동/생물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가격이 거의 차이가 없길래 별 생각 없이 '당연히 생물이지!'하고 '생물'을 클릭하고

오늘 저녁 배송을 받았다.


나는 그저 '살아있는'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냉동 후 해동이 필요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꽃게가 든 비닐봉지를 열어본 순간

'아...이게 아닌데' 꽃게가 살아있었다.


집게 다리가 파닥파닥하는 것을 보고 비닐봉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한 마리를 집게로 조심히 집어 들었다.

그러니 밑에 깔려있던 다른 한 마리가 집게로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 눈에 그 광경은 마치 꽃게가

'가지 마... 널 절대 놓치지 않을거야...마지막까지 힘을...'

라고 하는 것 마냥 보기가 불편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혼미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정녕 이 살아있는 것들을 직접 내 손으로 손질을 끝내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꽃게 네 마리 중 2마리만 살아있었다는 것...

그 사실에 감사했다.


이쯤에서 완벽한 꽃게 손질법을 차례로 나열하면


1. 꽃게 겉면(특히 배 부분과 다리 사이사이 옆 부분)을 깨끗한 솔로 문질러 닦는다.

2. 배 부분 겉딱지를 떼어내고 그 속을 솔로 닦는다.

3. 꽃게 다리부분과 등딱지를 양 손으로 잡고 힘있게 벌려 등딱지를 분리한다.

4. 분리된 몸통 부분에서 아가미를 떼어내고 몸통에 알갱이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기생충을 제거한다.

5. 꽃게의 눈과 입을 가위로 자른다.


산채로 저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잔인한 것이었다.


그래도 가족들 먹이겠다고 산 꽃게였다. 

예전에 꽃게를 대충 씻어서 쪘다가 몸통 안에 기생충들이 득시글득시글한걸 보고 

차마 다 먹지 못하고 내려놓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엔 손질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가위를 들 수 있는 나름의 명분을 앞세워서 손질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고 손에 가위를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꽃게 눈을 정면으로 봤다.


투명한 눈 속에 이곳 저곳을 살피는 꽃게의 검은 눈동자가 살아있었다.

아...그냥 탁! 쳐서 기절이라도 시킬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딱딱한 갑옷으로 무장한 꽃게를 어떻게 한 번에 고통없는 저세상으로 보내야 할지...


일단 이미 죽어있는 꽃게를 먼저 손질하고

용기를 내서 살아있는 녀석에게 솔질을 시작하자마자 

꽃게가 있는 힘껏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집게는 다칠까봐 미리 잘라두었지만

굳센 몸짓에 살기 위한 몸짓이 내 손끝으로 그대로 전달되어 너무도 무섭고 경악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꽃게를 싱크대에 던져버리고 '으악!!(내가 지금 무슨 짓을!!)'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다행히 옆에 계시던 친정엄마 도움을 받아서 손질을 대신 부탁하긴 했는데

꽃게를 좋아해서 늘상 꽃게 철마다 아무렇지 않게 손질을 해오던 내가 

이렇게 공포를 느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꼭 그렇게 먹어야 했는가.

산 놈을 잡아 먹어야만 했는가.

그냥 죽은 놈을 주워먹었다면 좋았을텐데.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서 우리 가족의 배를 채워준 고마운 꽃게 덕분이었는지

꽃게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가 오늘은 유달리 꽃게 살을 더 발라달라며

'또 주세요, 또 주세요.'했다.


그 값진 희생을 치르게 한 나로서는

그 꽃게가 헛되이 낭비되거나 버려지는 일이 없게 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위안삼을 수밖에 없었다.


'꽃게야...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네 덕분에 우리 아들이 그동안 맛 없다고 먹지 않던 꽃게를 정말 맛있게 먹었어...

이제와서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감사하며 잘 먹는 일밖엔 없는 것 같구나...'


한동안은 살아있는 꽃게는 쳐다도 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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