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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Jul 03. 2021

진구 엄마는 나쁜 엄마래요

잘못은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초딩 아들은 진구 엄마를 아주 나쁜 엄마라고 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엄마인  같은데  그런말을 할까?


진구 엄마는 도라에몽에서 조연에 불과했다. 도라에몽과 진구, 그리고 친구들이 4차원 주머니로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 동안 그녀는 묵묵히 집에서 집안일을 했고 아들의 성적을 챙겼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판에 박히고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4차원 주머니로 인해 일어나는 기현상 속에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중심을 지키는 캐릭터. 그래서 내 시선에서는 꽤 대단하고 고마운 엄마였다.


그러나 아들에겐 그렇지 못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진구 엄마는 이렇다.


1. 진구 엄마는 아들을 보고 웃지 않는다. 그녀가 웃어줄 때는 진구가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을 때. 그렇지 않으면 진구가 여행을 떠나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만났을 때다.

(아이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진구는 평생 단 한 번 100점을 맞았다고 한다.)


2. 진구 엄마는 매일 작은 일까지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한다. 그래서 진구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매일 울었으며, 이를 피해 가출까지 감행하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진구 엄마는 나쁘다고 하는 아이였다. 심지어 그런건 엄마도 아니란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진구 엄마는 도라에몽의 능력을 다 알면서도 집에서 함께 살게 허락해 줬잖아. 엄마라면 그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데 감히 그런 결정을 못했을 것 같은데 그런걸 보면 진구 엄마도 좋은 사람 아니야?"


"아니. 그건 도라에몽이 쓸모가 있기 때문이야. 도라에몽의 능력으로 자기가 잔소리를 한 마디라도 덜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니까 같이 살게 해주는걸 걸? 진구가 만약에 길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려오지? 그때는 눈물 나게 잔소리 듣고 다 쫓겨나"


아이 눈에 비친 진구 엄마는 생각보다 냉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때로, 잘못은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다.


진구 엄마에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집에서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아이의 학교 숙제를 봐주는 일은 엄마로서 책임을 다 하는 일이다. 평범한 엄마의 삶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엄마 밑에서 진구는 늘 엄마 눈치를 보며 잔소리 때문에 울었다. 아마 진구에게는 별 것 아닌 일에 두 눈을 맞추고 웃어주는 것, 작은 실수를 못본 척 넘어가주는 것, 함께 시간을 보내며 놀아주는 엄마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도라에몽과 함께였다.


깨끗한 환경에서 아이를 잘 먹이고 똑똑하게 바르게 잘 키우려는 마음은 엄마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진구 엄마도 그런 엄마다. 여기에 몰입하다보면 아이를 다그치고, 잔소리를 하기 쉬워지는 것 같다. 좋은 엄마가 되려는 것일 뿐인데 자칫하면 그게 아이에게 잘못이 된다.


아이를 한창 몰아세우고 혼냈던 때가 생각난다.


1학년을 앞두고 가뜩이나 덜렁대고 장난기 많은 아들을 학교에 보낼 것이 걱정이 앞섰다. 아이가 하는 작은 실수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잔소리가 극에 달했을 때는, 아이가 책상에서 연필을 툭 쳐서 굴러 떨어지게 만들면 학교였다면 잃어버렸을 것이라며 뭐라고 했다. 실제로 하지도 않은 실수까지 아이는 혼이 났다.


1학년을 기점으로 아이는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눈으로 나를 보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못미더운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어깨부터 움츠러들고 내 눈치를 봤다. 진구처럼.


어리석은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도 여전히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다 아이와 도라에몽을 같이 보다가 깨달았다. 내가 평범하게 나쁜 엄마라는 것을.


같이 만화를 보다가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있어서 "진구 엄마 진짜 별로다 그지? 뭐 저런걸로 애를 혼내~" 하고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이가 대뜸 "맞아. 진구 엄마 나쁜 엄마 같아. 그런데 엄마도 좀 비슷해" 라고 대답한 것이다.


 "어? 엄마가 진구 엄마랑 비슷하다고?"


"응"


그 후로 나는 변하기로 마음 먹었다. 되도 않는 잔소리와 아이를 지적하는 말을 멈췄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려고 애썼다. 아이가 좋은 엄마라고 느끼는 지표는 간단했다.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기, 잔소리 하지 않기. 잘 키워보려는 책임감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이 두 개의 필터를 떠올리고 거기에 나를 걸러냈다.


오늘 설거지를 하면서 도라에몽을 보는 아이에게 또 같은 질문을 했다.


"엄마는 진구 엄마랑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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