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생 Mar 04. 2022

엄마에게 필요한 두 가지 자질

‘내향 육아’를 읽고 알게 된 엄마로서의 기본기


우연히 서점을 거닐다가 ‘취향 육아’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


그동안 지나쳐간 수많은 육아서에서 본 바로는 ‘엄마라면 ㅇㅇㅇ해야 한다’는 이야길 하고 있었다. 책 제목만 봐도 엄마보다는 아이의 욕구와 흥미, 정서를 앞세우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만큼은 한가롭게도 엄마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 하다니.


학습에도 면밀한 관심이 필요한 초등 아들과, 이제 한창 떼쓰기가 정점에 달한 5살 아들을 키우며 상당히 지쳐있던 나였다. 그런 육아 속에 내 취향은 거의 말살되고 방치되어 있었다. 그 책은 내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당장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검색해보니 그 책은 따끈따끈한 신간이라 도서관에서는 아직 볼 수가 없다. ‘육아서’는 내 돈 주고 사지 않는다는 별스런 신념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저자가 이전에 썼던 책을 보며 저자의 신념을 탐색해 보기로 맘먹었다.


그녀의 이전 작품은 ‘내향 육아’다. 무의미한 엄마들 모임과, 매일같이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전집 등 정보의 홍수에 피로를 느끼는 그녀는 폭 넓은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내향인’이라고 정의내렸다. 그런 그녀에게는 반대로 에너지 넘치고 호기심 넘치는 활기찬 아들이 하나 있다. 참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와 아들의 성향차이를 너끈히 뛰어넘을 만한 본인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의 관심과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자란 아들은 영재발굴단에 과학영재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내게도 저자와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엄마들 모임에 나가서 아이 반찬 이야기, 친구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등등을 실컷 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했다. 어디 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것보다 익숙한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보거나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하는 등의 활동이 나를 회복시켰다. 밖에서 에너지를 쓰고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집순이인 나도 어쩌면 내향인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향인에 관해 더 알아보고 싶어서 저자가 이전에 봤다고 소개한 책을 나도 도서관에 대출 예약해두었다.


물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러고나서는 꼭 집에서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고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하면서 고요에 잠기는 단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나를 절대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내겐 에너지 넘치고 호기심 많은 아들이 둘이나 있다. 고요에 잠길 틈이 없기에 고독은 이제 내겐 매우 귀하다.


세상엔 떠들썩한 엄마들의 자랑과 전문가들의 조언이 무수히 넘쳐나고 있다. 그들의 정보는 매우 유용하고 실천할 때 꽤 보람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끝에는 어딘지 모를 숨이 가빠오는 면이 있다. 그들의 무용담과 조언들을 모두 따르지도, 그렇다고 끊어낼 수도 없는 나는 평생 엄마라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향 육아’는 신비로운 육아서다. 우리 고정관념 속에 친숙한 외향적인 엄마들과 다른 모습으로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나는 엄마로서 가져야 할 두 가지 자질을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 엄마들에게 자기 이해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도 그리 염두에 두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황새를 따라가다가 다리가 찢어지는 뱁새와 같은 날도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내향인’으로서 외향인 엄마들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내향인들은 자극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자극에 더 빨리 지치게 되기 때문에 소모할 체력과 에너지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반대였다. 내가 지치는 이유를 그저 내가 정신력이 약하고 체력이 약해서라고만 자책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내가 그런 성향의 사람이라면 그에 맞게 살면 될 것을. 알지 못하니 나를 몰아부치며 살았던 것 같다. 엄마이기 이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되면 엄마로서 편안한 환경에 머물 수 있도록 스스로 조절이 가능해진다.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찬찬히 되돌아보며 받아들이면 어떨까. ‘안다’는 것은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둘째, 아이에게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로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면 이제는 아이의 목소리와 흥미에 귀를 열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무리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편안한 모습대로 아이가 하는 모든 말과 생각에는 눈과 귀를 열어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아이는 발산하고 나는 수렴한다’. 아이는 뚝딱뚝딱 거리며 세상을 탐색하고 싶어했고, 그녀는 아이가 마음껏 세상을 탐색하도록 허락했다. 선풍기가 필요하면 재활용장에서 주워다가 아이가 마음껏 분해해보게 했다. 때로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그와 관련된 책을 읽어주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서 해답을 찾는 건 아이 몫으로 남겨두었다.


한동안 나는 둘째에게 귀를 닫고 살고 있었다. 첫째가 방학 기간 동안 너무 게임에만 매달려서 졸라대는 통에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게임을 줄일까 고민이 가득했던 것 같다. 첫째 아이의 문제만 눈덩이처럼 커보여서 둘째 아이의 작은 이야기들이 내겐 들리지 않았다. 자기 말을 지나쳐가기만 하는 엄마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러다 한 번은 어린이집엣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주차장에서 뻗으며 대성통곡하는 다섯살 짜리 아이를 보고 뭔가 달라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그 시기에 나는 ‘내향 육아’라는 책을 보고있었고 마침 다 읽은 날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만나고 나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아이 손을 잡고 오늘은 엄마랑 도서관에 가자고 했다. 가서 네가 좋아하는 스포츠카 책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그동안 자기 전에 그렇게 스포츠카 이야기를 해달라던 아이였는데. 몇 개월 만이었다. 도서관에서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 여기는 어디야? 도서관에 ‘도서’는 뭐고 ‘관’은 뭐야? 반납이 뭐야? 엄마 이 책은 반납 중지하자!!(=대출해달라는 뜻)


스포츠카에 관한 책을 3권 정도 빌리고 그 옆에 있는 숲 산책로로 아이를 이끌었다. 입구에는 ‘다람쥐의 먹이인 도토리를 무단 채취하지 마시오’라는 현수막이 나무에 달려있었다. 아이에게 그 현수막을 읽어주자마자 아이는 다람쥐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사로잡혔다.


아가야, 오늘 다람쥐를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못 만나면 어떨 것 같아?”

많이 속상할 것 같아”

속상하면 우리 그럼 어떻게 할까?”

그럼 우리 도토리 주워서 다람쥐 먹으라고 던져보자 그럼 올거 아니야~”


혹시나 예전처럼 다람쥐가 없다고 짜증내면 어쩌나. 혹시나 그 흙바닥에 뒹굴며 드러누우면 어쩌나 조금은 걱정이 됐다.


숲길을 그렇게 한창 산책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붓처럼 생긴 열매가 달린 귀여운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엄마, 이것좀 봐. 너무 귀여워. 엄마도 이거 좋아해?”

와. 엄마도 이거 귀여워서 좋아. 아가도 좋아?”

그럼 이거 내가 엄마 줄게!”

엄마 주면 아가는 아쉬워서 어떡하지?”

괜찮아! 집에 두고 우리 같이 보면 되잖아~”


아이는 생각보다 쉽게 양보하는 마음을 내주었다.

집에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도 다람쥐는 볼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물었다.


오늘 다람쥐를 못봐서 어쩌지.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오늘 좋은 하루였으니까”


집에 가는 길에 걸어가면서 다리가 아프다고 했지만 예전처럼 길바닥에 드러눕지 않았다. 그 대신 인도 옆에 높이 올라와있는 돌 계단에 앉아있다가 가기로 했다. 계단에 같이 앉아서 아까 빌렸던 스포츠카 책을 꺼냈다.


앉아서 우리 이거나 잠깐 볼까? 읽어줘?”

응!!”


해맑게 웃는 아이였다. 그렇게 집에 오기까지 네 번 정도 길에서 주저앉아 다리도 주물러 주고, 엄마에게 선물해 준 붓을 닮은 나뭇가지 이야기도 하며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다가 아주 늦게 집에 도착했다. 그동안은 어린이집에서부터 안아서 집까지 가라고 생떼를 부리던 아이였지만 이날 만큼은 아이 스스로 걸으려 노력했다.


내향육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수렴하고 아이가 발산하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 책에는 아이가 과학 영재가 되지 않고는 못배길 저자의 수도 없이 섬세한 노력이 담겨있다. 그 면면들을 보고 어느 정도의 영감은 받았지만 모두 따라할 수는 없다. 나도 나만의 수렴과 우리 아이만의 발산이 있기를 고대하며 단순한 두 가지만 가슴에 새겨본다.


내가 어떤 유형의 엄마인지를 ‘알 것’. 다른 스타일의 엄마를 따라하려다가 나를 자책하지 말 것. 그 대신 나를 정확히 알고, 단점을 관리하며 장점을 이용할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에게만큼은 무한하게 눈과 귀를 열어둘 것.


 


 

매거진의 이전글 10년 경단녀에서 IT스타트업에 입사하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