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버텨준, 고통의 밤
그 날 아침, 작은 아이는 배를 움켜잡고 웅크린 채 아침을 맞이했다. 이불 위에서 이따금씩 바람이 불면 달싹이는 종이 뭉치처럼 아이는 몸을 뭉치고 엎드려 있었다.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짜리 집에 네 식구가 사는 우리 집은 아침마다 복닥복닥 난리다. 현관 밖을 나서기 위해 저마다 만들어 낸 움직임. 그것들이 기가 막히게 교차하며 큰 소용돌이가 되었다.
아픈 아이는 거기에 휘말린 작은 조각이었다. 언제나처럼 나는 눈을 뜨자마자 아침밥을 차렸고, 태양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해나갔다. 동시에 혜성이를 멀리서 부르며 몇 번씩 깨웠다.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네가 준비할 차례는 아직이니까 괜찮아'와 같은 생각으로 찜찜함을 덮었다.
이따금씩 작은 신음 소리, 배가 아프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긴 했다. 그러나 '응~엄마 얼른 갈게~'라는 대답만 반복할 뿐, 마지막 채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학교에 싸 보낼 보리차를 물병에 따르는데, 태양이가 화를 냈다.
태양 : 엄마! 왜 대답만 해? 혜성이한테 안 가?! 쟤가 지금 몇 번을 엄마를 불렀는데! 물 그만 따라~ 물 따를 때가 아니야! 빨리 가! 혜성이한테 가!!!
나머지는 태양이에게 맡겼다. 그제서야 본 혜성이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사실, 똥이 마려워 저러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 늦게 아이를 변기 앞으로 데려다 준 정도의 실수를 한 게 아니었다. 크게 잘못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보자마자 폭풍처럼 몰아치던 아침의 소용돌이가 일순간 정지했다. 그날따라 남편은 대학병원 진료 시간에 맞춰 새벽같이 외출을 했다. 보호자는 나 하나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체온을 확인하고, 토하고 싶지는 않은지, 혹시 화장실에 가고 싶지는 않은지 등을 확인하는 사이 태양이는 벌써 학교 갈 채비를 마쳤다. 때 되어 현관에 선 아이는 잠시 멈춰 우리를 돌아봤다. 그리곤 '엄마, 병원 잘 다녀와요' 응원 한 마디를 남기고 문 밖을 나섰다. 주방 조리대 위에는 책가방 속에 담기지 못한 보리차 물병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혼자서 해야 해. 앞으로 남편이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잖아. 남편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다 해보는거야. 일단 다 해결하고 나서 남편에게 전화로 말해주는 거야. 일단 거기까지만. 할 수 있지 너?'
남편이 대학병원 진료를 받기 시작한 뒤로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나 혼자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하게 세뇌시켰다.
응급실로 바로 튀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혼자 운전해서 응급실까지 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뒷좌석에 아이를 눕혔다가 뒤에서 혼자 토하거나, 굴러 떨어졌을 때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급한대로 유모차를 펼쳤다. 집 근처 병원에서 먼저 해결해 볼 작정이었다. 현재 시간은 오전 8시30분. 십분만에 준비하면 이 계획은 성공적이다. 9시 전에 병원에 가면 많이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힘든 아이를 위한 최선은 빨리 병원에 도착해서 빨리 약을 먹이는 것.
그러기 위해선 옷 입을 시간도 아껴야지. 아이는 내복 차림에 겉옷만 걸치고 간다. 신발과 겉옷은 현관 앞에 미리 가져다 두었다. 내 외출 준비는 생략하고. 혹시 가는 길에 토할지 모르니 위생백 두 개를 겉옷 주머니에 두 개 찔러 넣는다. 이만하면 바로 출발하면 되겠다.
아이를 유모차에 눕힌 뒤, 재빨리 현관에 둔 겉옷을 덮어 양쪽을 싸매 겉옷을 빠지지 않게 끼워 넣었다. 양말 없이 신발을 신겼다. 그리고 달렸다.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진료 대기는 우리 앞에 3명 밖에 되지 않았다. 혜성이 차례가 왔을 때쯤, 집에 가자고 힘들어하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에 가까스로 맞추긴 한 것 같았다.
병원에서 나는 '엄마가 널 지켜주겠다고, 엄마는 널 절대 오래 아프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거라고' 말했다. 말은 진통에 아무 소용이 없지만, 믿을 구석이 되어 주고 싶었다. 남편에게 메시지도 남겼다. 혜성이가 배가 아파서 병원에 왔다고. 내가 잘 챙기고 있으니 걱정 말고 이따 집에서 보자고.
그런데 나의 그런 말들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이자마자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모두 왈칵 토해버렸다. 먹은 약을 다 토하고도 모자라 연거푸 6번의 구토가 이어졌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세숫대야를 깨끗이 씻어다 계속 받쳐주는 일 밖에 없었다.
한참의 구역질 끝에 진하고 노란 액체를 내 손가락 두 마디만큼 토했을 때, 더이상 집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응급실에 가야 한다.
'띠디디디디디딧' 반갑게 울리는 도어락 소리.
새벽같이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기다리던 은인이 나타났다. 남편이 혜성이를 살피는 동안 나는 입원 가방을 쌌다. 장염 때문에 입원하는 게 처음이 아니라서 아이 슬리퍼도 잊지 않고 챙겼다. 뒷좌석에 내가 혜성이를 안고 타고, 남편이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한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고 있자니, 환상의 짝꿍이 좋으면서도 언제 그를 잃을까봐 겁이 났다.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서의 상황은 익숙하게 흘러갔다. 시작은 언제나 장 관련 소아질환의 끝판왕 '장중첩증'을 의심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엑스레이 상에서는 역시나 정상. 피검사 상에서도 정상. 원인은 늘 변비. 그러나 관장은 노노. 수액에 항구토제를 섞어 맞고 푹 잠들었다가 40분만에 깬 아이의 눈에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휴.
한숨 돌리고나니 아주 감사할만한 일이 하나 떠올랐다.
'와, 다행이다. 밤에 안 아프고 낮에 아팠네. 밤이었으면 지금쯤 집에 돌아가는 시간은 새벽 세 네 시 정도일거고, 집에 가서 쪽잠 자고 다음 날 큰 애 학교까지 보내려면 진짜 피곤했겠다. 와, 아침부터 아프면 이런게 좋구나. 완전 다행이네!'
응급실 퇴원 수속을 밟고, 아이를 안아 들고 나왔다. 매번 새벽에 급하게 찾던 응급실을 낮에 와본 건 처음이라 집에 가는 발걸음이 괜히 더 가뿐했다. 혜성이는 내 품에 안겨 나오면서 천장에 가득한 형광등을 보더니 말했다.
혜성 : 어우...지금이 낮이야 밤이야?
"낮이지"
혜성 : 이번엔 밤이 아니네? 해가 나를 버텨 줬나봐.
아이는 응급실에서 푹 자고 일어났던 터라 하루가 지난 줄 알고 있었다.
"그래, 해가 우리 혜성이를 버텨줬구나. 혜성이가 버티니 해가 응원해주고 싶었나봐. 그동안 밤에 응급실 와서 고생만 하고가서 안타까웠나? 이번엔 낮에 집에 가라고 기다려 줬나보네~"
혜성 : 맞아! 해가 버텨준거야!
"그런데, 이번에 엄마가 혜성이 침대 옆에 같이 있었잖아. 아빠 같이 못 들어와서 보고싶지 않았어?"
혜성 : 엄마는 내 옆에 있고, 아빠는 (응급실)문 열면 (밖에) 앉아 있었잖아. 그래서 엄마 옆에 꼭 아빠가 같이 앉아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눈물이 안 났어!
아빠 : 아,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는 당신이 새벽에 태양이랑 있어줘야 해서 나랑 혜성이만 왔잖아. 그때 입원하기 전에 당신 보고 싶다고 많이 울었거든. 이번에는 우리가 병원에 다 같이 있어서 안 울었나봐. 그때 엄마 보고 싶다고 울던거 생각하면 아주 짠해.
"응급실 문만 열고 나가면 당신이 있다는 걸 아니까. 꼭 눈 앞에 없어도 다 함께 병원에 있는 느낌만으로도 혜성이는 위로가 된거구나. 든든했겠구나"
혜성 : 나는 (그때) 엄마도 보고 싶고, 형아도 보고 싶었어. 그래서 울은거야!
아픈 아이를 위해 필요한 건, 수액뿐만 아니라 가족이 어디있든지 함께 한다는 믿음, 그리고 버텨주는 햇빛까지인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