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들의 전쟁, 혓바닥이 길구나>
회사생활백서 005 : 아가리디렉터가 온다
설전(舌戰): 혀들의 전쟁 속, 아가리디렉터
말 그대로 '난장'이다.
회사라는 전장에서는 ‘품의서’를 통해 사업을 승인받고 실행한다. 기획하고, 분석하고, 기대 효과를 포장하는 치열한 과정이 뒤따른다. 이 모든 기록은 결국 문서 한 장으로 남지만, 그 문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수많은 말들이 난무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는데,
이 오래된 논쟁 속에서 '닭'도 아니고 '달걀'도 아닌, 오직 ‘먼저’만을 외치는 자들이 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책임지지 않는, 책임질 수 없는 제안을 하는 그를 ‘아가리디렉터’라 부른다.
1. 창의와 공허 사이: 아이디어를 ‘내는’ 자 vs ‘되게’ 하는 자
남들이 문제를 해결하려 정답을 고민할 때, 아가리디렉터는 문제를 이리저리 비틀어 새로운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얼핏 보면 창의적인 통찰력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모호한 창의성 덕분에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있다. 참으로 놀랍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아, 회사가 그렇다. 그러니까 '회사는 현실이다' 뭐 그런 거다.
하지만 회사는 본질적으로 ‘실행’하는 곳이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시작일 뿐, 진짜 실력은 아이디어를 ‘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날것의 아이디어를 두서없이 던져놓고, 실무자들이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면 슬그머니 다가온다. '거두절미' 하고, 그들은 머리(자신의 아이디어)와 꼬리(남들이 만든 성과)를 탁 잘라 놓고, 중간만 잇고는 혀를 놀린다.
“하하, 이거 제가 기획했던 그림이네요.”
아가리디렉터, 진짜 혀를 뽑아버리고 싶은데, 오늘도 상상만 한다.
2. 성자(聖者)인가 사기꾼인가: 말씀이 모래알이 되는 기적
일단 혓바닥이 길어서 그런지, 언행은 비단결 같다. 절대 화를 내지 않으며, 언제나 인자한 미소로 “우리 한번 새로운 걸 해볼까요?”라며 운을 뗀다. 그의 회의는 마치 부흥회와 같다. 화려한 언변으로 구성원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그러나 그 불은 회의가 끝나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성령처럼 우리에게 임하지만, 현실의 공기와 닿는 순간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뭔가 홀린 듯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회의록을 이리저리 다시 뒤져봐도, 없다. 신기루를 본 느낌이다.
전지전능한 임원이 ‘컨펌’으로 실무자를 죽인다면, 아가리디렉터는 끝없는 ‘발의’로 실무자를 공회전시킨다. 그는 어제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할 필요가 없다. 어제의 전략은 오늘의 새로운 영감으로 덮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거 정말 좋은데요? 그런데 혹시 이런 건 어때요?”
그의 머릿속에서는 매일 천지창조가 일어난다. “빛이 있으라” 하니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다음 날의 새로운 빛에 가려 소멸한다. 우리의 영혼은 맹렬하게 타오르지만, 프로젝트의 엔진은 제자리에서 헛돌 뿐이다.
그중에 간혹 깨어있는 용자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해도, 그의 혓바닥은 '일단'으로 드라이브를 걸어제낀다.
"그래도 일단 한번 해보시죠."
마법의 단어 '일단'을 쓰면 일단 그 순간은 넘어간다.
'안되더라고 일단 해보시죠'
'근데 지금 딱히 방법이 없으니 일단 이렇게 하시죠'
'뭐 일단 알겠습니다'
'아 그럼 일단 밥 먹고 하시죠'
수년간 회사 생활하면서 느낀 건 '일단'을 얘기하고 '이단'을 제안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혹 본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일단 알겠다.
3. 존재 증명을 위한 제물: 시간과 브레인스토밍
그는 ‘관리’에 관심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실행’과 그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다가, 결과가 긍정적일 때만 다시 달려든다.
그의 책상은 언제나 새로운 기획의 발원지다. 하지만 그 기획은 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존재 증명을 위한 것이다. 그의 창의성은 실무자의 실행 여부와 상관없이 ‘회의실’ 안에만 존재하며, 그의 존재감은 ‘얼마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냈느냐’는 발언 횟수로 증명된다.
이미 기획되었고, 진행 중인 일이라도 그는 몰라야 한다. 아니, 모른 척한다. 그래야 ‘브레인스토밍’이라는 이름의 제단에 실무자들의 시간을 제물로 바쳐 자신의 ‘새로움’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안한다, 고로 존재한다.
결과는 모르겠다.
4. 궁극의 생존법: 나도 리스너
그를 바꾸려 하지 마라.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한 신을 바꾸려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그에게 실행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 또한 그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이단적 행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법’은, 역설적이게도 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철저히 듣기만 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영혼 없는 순종’이다.
이러나 저라나 ‘How(어떻게)’가 없다. 그러니 대답은 하지 말고, 순종하고 고개만 끄덕여보자.
아가리디렉터에게는 구체적인 프롬프트가 없다. 그의 화려한 언변을 5W 1H로 잘게 쪼개어 들어보면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누가 = 네가,
언제=지금,
어디서=여기서,
무엇을=이것을,
왜=해야 돼
그러니까 '네가 지금 여기서 이것을 해야 돼.'
그래서 ‘어떻게?
그는 ‘How’에서 막힐 것이다. 그때 절대 공격해도, 일단 화법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대신 안타까운 표정으로 공감하자.
“아, 아이디어는 너무 좋은데, 구체적인 방법이 참 어렵네요.”
그는 '고민은 내가 실행은 네가' 이렇게 뇌가 굳어져있다. 그래서 성과가 나거든 내가 고민을 해서 힘들게 이뤘다로 포장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는 창조자가 아니다. 그저 흩뿌리는 자일뿐이다. 오늘도 어슬렁 거리며, 누구를 만나고, 여기저기 설을 털고 다닐 텐데, 가급적 대화를 줄이는 게 좋다. 조언과 첨언은 그를 다시 환생하게 만든다. 당신 뒤에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