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세월은 아름답다(2010년 6월 어느 날에 쓰다)
버스만 타면 한 시간 남짓밖에 안 걸리는 고향 집에 자주 다녀오지 못했었다. 직장인이라는 감투를 뒤집어쓴지도 벌써 7년여, 이제는 마음적으로 많은 여유가 생겼다.
지난주 토요일,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 사십 분 정도 갔었을까? 고향의 싱그러운 바람이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향의 숨결은 내가 어렸을 적에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벚나무가 심긴 쭉 뻗은 신작로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가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 어린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보리미 동네의 묘들 그리고 화전리 동네 방앗간의 왕왕 돌아가는 정미 기계도 여전히 건재했다.
정겨운 고향 길을 지르밟고 가는 동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솔솔 떠올랐다.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을 한답시고 울퉁불퉁한 길을 내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음보를 터트렸던 일이며,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봄나물을 캐러 이 산 저 산 헤매다 길을 잃을 뻔했던 일 등… 이런 추억에 아련히 젖어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이르렀다.
한참 농번기라 그런지 집 앞에는 농기계들이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었다. “엄마 저 왔어요.” 엄마를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짐을 풀고 어지럽혀진 집을 치웠다. 모처럼 가족들을 위해 저녁도 지어놨다. 오후 6시가 돼서야 엄마가 들어왔다. 하루 내리 일을 한 탓일까? 엄마는 몸이 축 쳐져서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보는 딸의 모습을 보고는 배시시 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피곤할 때면 항상 목욕탕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때를 밀고, 잠을 곤히 자고 나면 피로가 확 풀렸었다. “엄마 우리 저녁 먹고 목욕탕에 갈래요.”라고 말했더니 엄마도 좋다고 했다.
늦은 저녁나절 엄마와 나는 면내에 하나밖에 없는 대중목욕탕에 갔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서려는데 엄마의 수척해진 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늘 당신 자신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시는 엄마의 수고와 사랑에 가슴이 울컥했다.
한창 꽃다운 19살 시절, 엄마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중매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와 결혼했다. 용모가 단정하고 잘생겼던 아버지는 결혼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꾸미고 사람들을 만나 즐기는 것을 더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희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덕에 엄마는 여덟이나 되는 자식들의 육아와 함께 아버지의 몫까지 짊어지고 그들이 커 나갈 때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한마디 불평 없이 정성스레 진심을 다했던 엄마의 세월로 우리 남매는 무고하고 착하게 잘 성장했다. 그동안 고생만 했으니 하고 싶은 것 많이 하면서 즐겁게 지내라는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몸에 익숙해진 그 일을 지금껏 놓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일생을 고스란히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바친 엄마는 지금 수척해진 모습으로 내 눈앞에 서 있다. 비록 몸은 예전보다 야위고 햇빛에 그을려 여기저기 거뭇거뭇한 주근깨와 밭고랑 같은 굵은 주름으로 그득하여 볼품없지만 그의 딸인 나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 이리라.
습하고 뜨거운 공기 탓인지 숨이 턱턱 막혀서 우선은 찬물로 샤워를 하고 온탕에 몸을 담갔다. 힘이 빠져 숨 고르기가 버거워졌을 때 우리는 욕탕 밖으로 나왔다. 목욕탕의 열기로 얼굴이 벌겋게 되고 힘이 소진되어 기운은 없었지만 콧등이 유난히 반짝거리고 머리카락이 차지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는 목욕탕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간간히 이런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엄마의 그 사랑을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무심히 넘겨버렸을지도 모른다. 무던한 성격으로 항상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엄마 덕분에 나는 그동안 묵혀두었던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풀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도 받고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목욕탕에서 두 시간여의 대장정을 마치고 우리는 집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어느새 달이 우리 머리 위에서 웃고 있었고 잔별들도 몸을 흔들거리며 빛을 내고 있었다.
버릇처럼 엄마 팔을 힘껏 끌어안아 팔짱을 꼈다. 부끄러워 말로는 감사함을 전하지 못하는 나 만의 방법이었다. 그런 내 맘을 눈치챘는지 엄마는 애창곡 ‘홍도야 우지 마라’를 즐겁게 흥얼거렸다.
목욕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랬는지 노곤함이 밀려오고 하품이 절로 나왔다. 집 안방 아랫목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다행히도 어느새 이르렀는지 저 멀리서 낯익은 우리 집 백열등이 엄마와 나의 귀가를 반기는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