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하고도 소박한(부제:엄마의 밥상)
살다 보면 가끔씩 괜스레 우울하고 슬퍼지는 그런 날들이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습관적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 나 우울해. 맛있는 거 해 줘. 금방 갈게요’라고 주문을 하면 엄마는 항상 냉동고에 잘 보관해 놓았던 초록색 올갱이를 꺼내 뭉근하게 끓여낸 국을 내주곤 했다. 엄마의 큰 수고와 사랑으로 만들어진 따뜻하고 깊은 맛의 올갱이 국을 먹으면 금세 슬픔은 사라지고 다시금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시원한 장대비가 내리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되면 엄마는 마치 16분 음표처럼 생긴 초록빛 올갱이로 끓인 국을 상에 자주 올리곤 했다.
내가 어렸던 7-80년대는 고기가 귀하던 시대였다. 올갱이는 뜨거운 여름에 고기 대신 우리 식구들의 허한 기력을 보충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고마운 음식 재료 중의 하나였다.
한참 바쁜 농번기가 되는 7월이 되면 엄마는 짬이 날 때마다 동네 근처 개울이나 멀지 않은 하천에 가서 올갱이를 붉은 양파망에 한가득 잡아오곤 했다.
잡아온 올갱이를 큰 양푼에 풀어놓고 그것들이 해캄을 토해낼 때 쯤이면 우리 남매들은 양푼 주위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신기한 듯 양푼 속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엄마의 억센 손으로 만들어지는 경쾌한 음률을 따라 올갱이들은 깨끗이 세척되어 매끄럽고 윤기가 났다. 그렇게 잘 씻어낸 올갱이들을 멀겋게 푼 된장 물에 한소끔 끓여내면 특유의 민물 비린내는 빠지고 꼬들꼬들한 식감이 났다.
삶아낸 올갱이를 딱딱한 껍데기에서 꺼내야 맛있는 국을 끓일 수 있기 때문에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눈을 부라리며 올갱이 알맹이들을 빼내야 했다. 뾰족한 쇠바늘을 하나씩 손에 쥐고 잔뜩 꼬부라진 것들을 말짱히 꺼내는 일은 어린 우리에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올갱이 알맹이들을 꺼내기보다는 엄마가 꺼내 놓은 짭조름하고 쫄깃한 속살들을 입 속으로 털어 넣기에 바빴다.
어지간히 알맹이들을 빼내고 나면 눈처럼 하얀 밀가루를 묻혀 펄펄 끓는 된장 물에 넣고 국물이 우러나도록 푹 끓인 후 푸릇한 정구지(부추) 그리고 아욱을 넣고 한번 더 끓여냈다. 재료들이 함께 어우러져 뭉근하게 익어 연한 녹색이 되면 우리 식구에게는 여름에 최고로 맛있는 엄마만의 특별식이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에게 올갱이 국은 흔한 다른 음식과는 달리 온 가족들이 함께 힘을 모아 정성을 다해 만들었던 아주 특별하고 뜻깊은 음식이었다. 아니 어쩌면 올갱이를 잡아 국을 끓여 내기까지 깊이 배어들어 간 가족을 향한 엄마의 순수하고도 조용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여름의 오늘, 엄마의 투박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는 올갱이 국이 올라간 남루하고도 소박한 밥상이 몹시 그리워진다.
* 올갱이: 다슬기의 방언(충북, 강원)
* 정구지: 부추의 방언(경남, 충북)
* 필자는 현재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어 늦여름의 계절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