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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Dec 27. 2019

비장애 형제로 살아간다는 것

비장애 형제 '디노'의 이야기


한 가지 더 이야기해도 된다면 죄책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오빠를 떠올릴 때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아니지만, 모든 감정에 죄책감이 조금씩 서려있어요. 아마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대부분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모두 투명도 30퍼센트 정도로, 모든 감정에 죄책감이 레이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비단 형제자매뿐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부모님에게도요.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가 ‘대단한 일’ 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엄마가,


“너는 그래도 혼자 그런 것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너희 오빠는 혼자 그런 거 못하니까.”


라고 할 때. 그럴 때마다 정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럴 때 떠오르는 건 죄책감뿐이에요. ‘내가 장애가 없는 게 잘못인가?' 싶을 정도라니까요.


모든 가족들이 그렇듯이 늘 좋을 수는 없잖아요. 얄미울 때도 있고 정말 너무 미워 죽겠을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는데, 밉고 화를 내다가도 '이래도 되나' 싶을 때가 많아요. '내가 이 감정을 오빠에게 느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자아성찰을 하게 돼요. 만약 오빠에게 장애가 없었다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나 혼자 하는 생각도, 말 한마디도 다 검열하고 성찰하게 되고 돌아보게 돼요. 죄책감 때문에요. 비장애 형제로서 비장애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의 무게가 다가와요.


왜 그런 걸까요? 왜 우리는 항상 모든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성찰을 하게 될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에 왜 그렇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요? 미워도 가족을 미워하는 나에게 자괴감을 느끼고, 너무너무 좋은 순간에도 오빠를 떠올리면 ‘오빠는 이런 거 못 해볼 텐데’ 하면서 막연한 죄책감이 들어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장애를 가진 가족에게 잘해주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감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요? 외부인들이 어느새 내면으로 침투해서 생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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