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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Jan 03. 2020

엄마에게

비장애 형제 '디노'의 이야기

“엄마는 내일 뭐해?”
“넌 왜 맨날 뭐하냐고 물어봐?”


언젠가 버릇처럼 물어본 내 질문에 엄마가 되물은 적이 있었지. 그때는 나도 그 이유를 잘 몰라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좀 더 알 것 같아. 난 늘 엄마가 궁금해. 엄마가 뭘 하는지 궁금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엄마랑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싶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엄마랑 나는 평소에 이렇다 할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니까.


어릴 땐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하곤 했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걸까? 아마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 초등학교 1학년 때,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 옆에서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엄마가 그리워서 온 몸을 치대면서 말이야. 그런데 엄마는 짜증을 버럭 내면서 시끄럽다고 했었지. 내가 하는 이야기는 듣고 있지도 않았는지 조금 전에 내가 한 이야기도 기억하지 못했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게.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엄마 세상은 오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던 것 같아. 한때는 그게 무척 서럽고 서운하고 슬펐어. 사실은 여전히 그게 무척 서운할 때가 있지만, 이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


얼마 전 엄마가 예전으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 말이 기억나. 그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서 박혔어. 이십 년 전의 엄마에게 나와 오빠가 얼마나 무겁고, 버겁고, 힘든 짐이었는지 알아. 지금의 나와 열 살 남짓 차이가 나는,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에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아빠와 아무것도 모르는 천덕꾸러기 둘을 업고 직장까지 그만둬야 했을 엄마는 어땠을까. 오롯이 혼자 짊어졌을 그 무게를 나였다면 버텨낼 수 있었을까?


단언하자면 절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해. 엄마처럼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 될 자신이 없어. 그래서 그런 엄마가 내게 거는 기대가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빠에게 기대할 수 없으니 나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다는 것도 알아. 나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데. 이럴 땐 오빠까지 원망스러울 정도라니까. 너무 못난 생각이지.


나는 엄마라는 별 주변을 맴도는 행성 같아. 바라보기만 하고 곁을 맴돌지만 결코 만날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존재.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과 엄마가 내게 바라는 건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 위에 있지만 이제는 그냥 이 상태로 만족하려고 해. 엄마에게 충분히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힘든 시간을 단단하게 버텨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서로 바라보면서 지냈으면 좋겠어. 사랑해요.




Written by 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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