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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Jan 10. 2020

가까우면서도 먼,

비장애 형제 '캐서린'의 이야기

학창 시절, 엄마와 아빠는 내가 동생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길 바라는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 살았던 소꿉친구는 같은 중학교에서 전교 2등이었던 반면, 나는 그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의 윽박지름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단순한 실망감의 표현을 넘어서 온갖 짜증, 수치스러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나에게 퍼부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엄마의 태도는 난 최고에 도달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1등이 아니면 소용없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성적을 받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사설 모의고사를 치를 때 OMR 카드를 백지로 제출한 적이 있다. 담임 선생님은 해당 사실을 엄마께 전화로 말씀드렸고, 엄마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부터 나에게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아도 좋으니 네 실력을 점검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고 부담 없이 시험에 임하렴” 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에 대한 기대감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아빠와는 달리 엄마와는 소소한 일상들에 대해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나의 친한 친구가 누군지, 내가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엄마는 사색과 기도를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지혜 등을 나에게 많이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온전히 기댈 수는 없었다. 엄마에겐 동생 하나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엄마가 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는 내가 공부하는 게 힘들다고 푸념을 하면 격려와 지지를 해 주었지만,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황에서는 “언제까지 내가 위로를 해 주어야 하니. 그걸 나한테 얘기하면 무슨 소용이 있니” 라는 식으로 내쳤다. 이성적으로는 ‘아, 지금 동생 때문에 힘든 상황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엄마 품에 안기고 싶은 나의 자아가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너무나도 외로워졌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동생이었으면, 엄마가 지금 나에게 한 것과 똑같은 태도를 보였을까?’


학창시절 내내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압박감과 그에 도달하지 못하는 좌절감,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숨 막힌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나의 물리적·심리적인 독립과 엄마와 함께하는 삶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충돌이 계속되었다. 엄마는 내가 직장인이 되어서도 대구에서 계속 가족과 함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나는 이를 거부했다. 물론 독립을 선택하기까지 수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었고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혼자 살 수 있을까?’와 같은 자신감의 문제가 아닌, 나의 부재로 인해 부모님의 겪어야 할 고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물리적인 독립이 확실해지는 그 순간부터 엄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타지에 가서도 한 달에 최소 1번, 많으면 2번까지 대구에 내려오기를 은근히 바랐다. 네 인생을 살아라, 네 선택을 존중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서운한 마음이 더 큰 엄마의 속마음이 너무나도 훤하게 보였다. 게다가 그 바람의 근원에는 동생을 돌보는 것의 어려움을 반으로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외면하기가 참 어려웠다. 쉽게 말해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선택을 하면, 엄마를 향한 죄책감이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에는 직장생활로 인해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엄마와 동생을 위한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내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던 간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나를 가장 중심에 두고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지 생각한 후 결정을 내린다. 그 선택은 엄마의 바람과는 늘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당연히 엄마의 서운함이 느껴지지만 이제는 눈 질끈 감고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한다.





Written by 캐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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