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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Jan 17. 2020

세상의 질타와 마주하다

비장애형제 '어피치'의 이야기

나는 발달 장애를 가진 동생과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동생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겪는 따돌림과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가족인 나에게 날 것으로 노출된다는 것이었다. 과거를 찬찬히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하기 싫고 떠올리면 가장 괴로운 기억이 바로 나와 동생이 함께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나와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의 체육시간이 겹쳐서 운동장을 함께 썼던 적이 있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들은 그저 아이들을 운동장에 두고 전혀 돌보지 않으셨다. 나는 그 체육시간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동생을 포함한 1학년 아이들은 줄넘기를 하고 나를 포함한 4학년 학생들은 피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동생네 반 아이들이 줄넘기로 동생을 때렸던 것이 기억이 난다. 또 동생이 나를 보고 싶어서 우리 반 근처로 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심하게 싫은 티를 내며 '저리 가라'는 말과 함께 욕설을 했다.


정말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는 동생이 교문 밖을 나갔던 날이었다. 체육 시간에 교문 밖으로 동생이 혼자 나가는 것을 본 나는 동생이 너무나 걱정되어 동생을 따라 뛰쳐나갔다. 그 나이의 평범한 학생이었던 나는 당연히 선생님께 혼나는 것이 두려웠고, 수업시간에 학교 밖을 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때였다. 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무도 동생을 아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도 교문 밖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동생 뒤를 쫓아 들어간 곳은 신발가게였다. 그때 동생은 캐릭터 신발에 집착을 했는데, 신발가게 사장님과 캐릭터 신발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신발가게 앞에서 동생을 잡고 울었다. 신발을 지금 살 수 없고 돌려줘야만 한다고. 하지만 그때 동생은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신발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신발을 놓지 않았다. 나는 막막한 마음에 동생과 신발을 잡고 엉엉 울었다.


시간이 지난 후 신발가게 사장님이 나와 "다음에 계산해도 되니 그냥 신발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초조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동생과 함께 학교로 돌아갔다. 교문 앞에서 동생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마주쳤다. 더 서러워져서 엉엉 울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반으로 돌아갔는데 담임 선생님이 모든 아이들 사이에 나를 세워놓고 공개적으로 나를 비난했다.


“왜 체육시간에 밖에 나가냐? 동생이 어디를 가든 말든 너가 무슨 상관이냐?” 


겨우 열한 살이었던 나와 여덟 살 동생에게는 너무 가혹한 세상의 질타였다. 나는 동생을 따라 교문 밖으로 나간다는 과거의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그 순간으로 100번 돌아간다고 하여도 나는 동생을 따라서 나갔을 것이다. 그 때 동생이 사고를 당하거나 심지어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동생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다만 슬픈 것은 그 당시의, 고작 열 한살이었던 내가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수치, 불안, 슬픔, 분노, 초조함... 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Written by 어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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