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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Jan 31. 2020

"기다려, 오빠 먼저."

비장애 형제 '무영'의 이야기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엄마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불쌍했다. 엄마는 늘 희생적이라고 생각했고, 엄마의 인생이 안쓰러웠다. 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의 어린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엄마의 인생을 객관적 입장에서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의 딸로 자라기엔 엄마가 너무 밉고 불편하다. 엄마는 장애인 아들의 훌륭하고 좋은 엄마가 되었지만, 비장애인 딸에게는 무정하고 무관심한 엄마가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항상 ‘기다려, 오빠 먼저.’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오빠를 챙기느라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오빠가 장애 진단을 받자, 나는 태어남과 동시에 멀리 살던 고모 집으로 맡겨졌다.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2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엄마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았고, 안부를 물어보지도 않았다. 내가 39도가 넘는 열이 나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오빠는 작은 기침만 해도 큰일이라도 난 듯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아파서 병원을 가면 엄살을 피우는 것이고 오빠가 아프면 큰 일이 난 것이라고 한다.


엄마를 생각하면 서러운 감정이 먼저 든다. 항상 엄마 앞에서는 오빠가 앞이고, 나는 철저하게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했고, 엄마의 관심이 절실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인정받는 딸이 되고 싶어서, 힘든 걸 티도 안 내는 속 깊은 딸인 척 자랐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오빠에게 밀렸고, 지금은 엄마가 돌보는 이용자에게 밀린다. 나는 모든 걸 이해하는 진짜 속 깊은 딸이어야 했다.


내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힘이 들어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는다고 말했다. 무슨 말을 들을까 걱정하며 몇 날을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그런 나에게 ‘의지도 약하고 근성도 없으면서 열등감만 가득한 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엄마에게 나는 의지도 약하고 근성도 없는데 열등감만 가득한 딸이었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당신이 못해준 게 무엇이 있는지 따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잘 자랐다. 배우고 싶다고 했던 건 다 배웠고, 하고 싶다고 했던 건 다 했다. 다만 그곳에는 부모님의 돈만 남고,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몰랐고, 사실 지금도 모른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싫어하고 못 먹는지도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학교 과제가 많아 일찍 집을 나와서 늦게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파인애플을 건넸다. 하지만 나는 파인애플 알레르기가 있어서 파인애플을 먹으면 온 몸이 부어서 하루 종일 고생한다. 내가 몇 번이고 말했는데 여전히 변화가 없는 엄마에게 문득 또 서러워졌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Written by 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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