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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Feb 07. 2020

어떤 자매들

비장애 형제 '어피치'의 이야기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세 자매이다. 중학교 일반교사인 언니, 초등학교 특수교사인 나, 그리고 발달 장애를 가진 동생. 


나와 언니는 같은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고, 어릴 적부터 쭉 많은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가치관이 굉장히 비슷하다. 내가 하는 소소한 가치 판단은 결과적으로 언니와 많이 닮았다. 그리고 나는 나보다 인생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언니의 판단을 항상 닮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렇게 사이가 좋고 서로의 가치관이 비슷해지기까지는 엄청난 싸움이 있었다.


이런 나와 언니는 둘 다 동생의 앞날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독립적인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


‘먼 미래에 언니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고, 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동생은?’


이런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죽어도 동생 혼자 생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우리 스스로 다짐한다. 그래서 나는 “언니가 결혼하고 싶다면 해. 나는 동생이랑 행복하게 살 거야”라고, 나의 결혼이나 나만의 가정을 당연하게 포기하는 선택을 이야기한다.


그 선택이 슬프거나 안타깝지 않다. 아직까지 언니와 나 둘 다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와 다짐이 건강한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동생을 너무 사랑하고, 동생이 장애가 있기 때문에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절차인 결혼을 쉽게 포기하는 것. 과연 우리 자매의 사고방식이 건강한 것일까?





동생에 대한 주된 감정은 사랑이다. 동생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사랑을 표현한다. 일어나서 바깥에 누군가 일어난 인기척이 들리면 “안아주세요” 하고 안아주면 “사랑해. 잘 잤어?”라고 물어보곤 한다. 가족들과 하는 모든 인사에는 ‘사랑해’가 시작이고 끝이다. 우리 가족들을 사랑으로 끈끈하게 묶어주는 동생에게 너무 고맙고,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동생은 하루하루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서 생활한다. 동생은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족들에게 카톡으로 자신의 하루 일과를 보내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혼자 셔틀버스를 타고 집에 온다. 잠옷을 갈아입은 후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고, 공책에 또박또박 글씨를 쓴다. 그리고는 영어 알파벳을 쓰고 읽고, 받아쓰기 공부, 숫자 공부, 동물 공부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그 후 컴퓨터를 켜서 유튜브를 보거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서 여가시간을 보내다가 10시 30분에 컴퓨터를 끈다. 그리고 침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인형 두 개를 가장자리에 두고 이불을 덮어준다. 그리고 자신은 가운데에 누워 잠을 잔다.


하루도 허투루 보내는 날이 없는 동생이다. 그리고 하루도 사랑을 표현하지 않은 적이 없는 동생이다. 그런 동생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 다음에 오는 동생에 대한 감정은 안쓰러움과 답답함이다. 이렇게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생활하는 동생은, 자신의 인지적 수준보다 높은, 도전적인 과제를 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동생은 덧셈과 뺄셈을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외운다. 구구단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2*4 = 2+2+2+2 = 8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답을 외운다. 동생이 이런 걸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동생이 안쓰럽다. 동생을 가르치려고 해 봤는데 잘 안되어서 너무 답답했다.


자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또 답답할 수밖에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Written by 어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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