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형제 '그린'의 이야기
내가 가진 가장 강렬한 부정적 감정은 열등감이다.
학창 시절, 장애인은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자극적인 놀림거리였다. 친구를 조롱할 때면 흔히 ‘(장)애자’ 같다는 말을 썼고, 장애인 앞에서 그의 말투와 행동을 흉내 내며 조롱했다. 행여 그 애와 짝꿍이 되면 불결하다는 듯 책상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기도 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친구들이 내 사정을 알게 되면 나를 무시할 것 같았다. 내게는 장애인 동생이 있었고 집안 사정도 여러모로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가족을 철저히 숨기기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배경만 지우면 꿀릴 게 없다고 생각하며 당당한 척 살았다.
그렇게 해야 자존심만이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친구들은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가 흠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내 안의 열등감은 더욱더 나를 몰아세웠다. 체면을 중시하느라 감정을 억누를 때가 많아졌고, 가족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면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그 결과, 겉은 그럴싸하지만 속은 분노로 가득 찬 인간이 되었다.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무시하는 사람을 증오했으며, 누군가 내 치부를 건드리면 가시로 곧장 찌를 태세로 살았다. 아이러니한 건 이토록 큰 분노를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온화하고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해왔다. 내가 무시받는 게 싫은 만큼 타인을 존중했으며,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늘 차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를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친구들과 따뜻한 인간관계를 이어 나감에 따라 열등감은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추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연애를 하며 열등감의 거센 암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는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나는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고민들이 그에게는 없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는 그의 삶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는 할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걸 그는 쉽게 이뤘다. 그가 누리는 자유와 여유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내가 삶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을 박탈당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가 내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를 안쓰러워할 때면 너무도 부끄럽고 비참했다.
그때마다 ‘가족만 아니면 내가 이렇게 힘들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분통이 터졌다.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며 내 열등감을 해소하려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 봤자 돌아오는 건 죄책감뿐이었다.
그와는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를 정리했다. 이별 후 나를 괴롭히던 많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가족에 대한 열등감은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심리상담 선생님과의 긴 대화 끝에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동생이 장애가 있는 것도,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내 탓이 아니기에, 내 잘못이 아닌 일로 괜히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수 천, 수 만 번 되뇌다 보면 가족에 대한 열등감과 원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Written by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