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형제 '무영'의 이야기
나는 태어나서 지금껏 23년이라는 시간을 장애인의 동생으로 살아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선생님들은 나에게 이름 대신 ‘OO이 동생’이라고 불렀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나는 ‘OO이 동생’이었다. 사람들은 뭔가 심부름을 시키거나 그들이 생각할 때 무리한 부탁을 하려고 할 때마다
‘너에겐 장애인 형제가 있으니까’
라는 이유로 내가 ‘착한’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해주기를 바랐다. 장애를 가진 오빠는 꽤나 오랫동안 나에게 오랫동안 증오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은 오빠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 오빠를 잘 이해하셨고 누구보다 나를 괴롭게 하셨다. 선생님이 오빠를 이해하는 만큼 나는 이해받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담임 선생님이 일기장 검사를 했다. 오빠가 집에서 사고를 치고 내가 대신 혼난 날이면 나는 일기에 ‘오빠가 싫다. 오빠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썼다. 그 일기를 본 선생님은 나를 불러 혼냈고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다. 억울하고 분했다.
나는 적어도 담임 선생님 앞에서는 절대 오빠를 싫어해서는 안 됐다. 선생님은 종종 나에게 오빠의 안부를 묻고, 내가 오빠를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궁금해하셨다. 내가 집에서 어떻게 지내든 그 선생님은 별 관심이 없었다. 오빠를 대신해서 내가 혼나도, 선생님은 내가 장애 형제의 비장애 형제로 태어난 이상 내가 잘 챙겼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빠가 나를 괴롭힌다고 말해도, 그것은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오빠의 담임선생님인지, 내 담임선생님인지에 대해 계속 의심되었다. 나는 그 학급에서 선생님의 제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장애인의 동생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장애 형제를 가진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장애 형제 덕분에 내가 이해심이 많고 착한 어린이로 클 수 있다고 하셨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학급 친구들에게 내 장애 형제에 대해 소개하고, 나를 앞으로 불러내서 내가 장애 형제의 비장애 형제라는 사실을 알렸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이미 오빠에 대해 알고 있는 아이들이 절반이 넘었지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과 담임선생님이 알려주는 것은 달랐다. 나는 그 날 이후로 공식적으로 ‘바보 동생’이 되었고, 모든 활동에 철저히 배제당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렸고, 주변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이해를 바랐기 때문에 이게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님과 선생님을 비롯한 내 주변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나에게 부모님을 걱정시키지 않고 장애인 오빠를 잘 돌보는 착한 아이가 되기를 강요했다. 나는 항상 내 감정을 절제해야 하고, 나보다는 타인을 이해해야 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이제라도 어린 시절 나를 괴롭게 했던 주변 사람들과 그 기억에 대해 재정의할 시간을 가졌다.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내게 장애인 형제가 있으니까 내가 다 이해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힘들었다. 지금은
‘내게 장애인 형제가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는 없어’
라는 생각에 전보다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내 어린 시절과 지금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되새기는 말이 있다. ‘어차피 결국은 내 인생이니, 나라도 나를 아껴주자!’
Written by 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