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형제 '캐서린'의 이야기
나와 자폐성 장애를 가진 내 동생은 둘 다 식탐이 많았다. 좋아하는 반찬을 두고 다투거나 간식을 더 먹기 위해 각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들이 빈번하였다. 다툼이 있을 때면 엄마는 항상
“중학생이 정신연령이 서너 살 밖에 안 되는 애랑 또 싸우니? 쟤랑 싸우는 건 네 정신연령이 서너 살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야.”
라며 비난하는 식으로 얘기했다. 이렇게 동생과 싸우면 그 비난의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엄마의 말에 화가 솟구치면서도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 이내 체념했다. 그리고는 그 화를 ‘왜 나는 너그럽지 못한 걸까?’라고 하면서 나에게 돌렸다.
내 동생은 소위 말하는 ‘중2병’을 극심하게 겪은 편이다. 그 당시에는 감정이 극도로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동생에게 부정적인 눈빛을 보이거나 비난하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면 유리컵을 깨거나 하는 난폭한 행동이 나왔다.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런 나날이 몇 년 동안 지속되었으니 그 누구보다도 엄마가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인정한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동생은 자식이기에, 포기하고 싶다가도 인내심을 가지고 일관된 목소리 톤으로 동생을 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게 잘 안 되었다. 매일매일 나의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너무 짜증이 났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아주 가끔씩, 동생이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나도 우쭈쭈 하면서 동생을 예뻐했다. 하지만 동생이 꼴 보기 싫을 때에는 180도 태도가 돌변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네가 동생을 대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좋을 때 좋다고 하고, 싫을 때 내팽개치는 게 무슨 사랑이니? 어디 가서 동생을 아낀다거나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마.”
라며 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도대체 동생을 어떻게 대해야만 하는 건지 무척 혼란스러웠다. 엄마는 엄마만큼의 인내심을 나에게도 요구하는 것 같아서 미웠다. ‘왜 맨날 나만 노력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방적으로 나만 참아야만 하는 관계가 너무 싫었다.
‘쟤는 정말 화가 나면 저런 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내 동생에게 장애만 없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지? 과연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을까?’
동생의 존재에 대해 계속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내 모습이 소스라치게 싫다가도 그런 생각들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나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학교와 집은 매우 가까웠지만 매일 동생과 부딪혔기 때문에 서로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짐을 싸서 기숙사로 데려다주는 길에 엄마는 차 안에서
“세상에, 코앞에 집이 있는데 동생이랑 싸워서 기숙사 들어가는 애가 어디에 있노. 부끄럽다, 부끄러워.”
라며 하소연했다. 이 모든 일들이 내가 너그럽지 못하고,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일들인 것 같았다.
동생과의 관계가 자꾸 틀어지는 것도 모두 다 나 때문인 것만 같아 기숙사에서 머무르는 동안 공부라도 잘해서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인 공부마저도 잘하지 못했다. 1등이 아니면 다 소용없다고 생각했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향해 공부를 못 하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자책하고 몰아세웠다.
자칭 ‘아웃사이더’가 되면서까지 공부에 미친 듯이 몰두해도, 나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고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때는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지금보다 더욱더 노력해서 언젠가는 나를 무시하고 깔보는 부모님에게 보란 듯이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어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고, 내가 사라지는 것으로 부모님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내 동생. 아무리 열심히 고군분투하면서 노력해도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온갖 비난을 다 받아야 하는 나. 우리는 너무나도 극심하게 비교가 되었다.
부모님의 기대와 그에 따른 압박감은 나 자신을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닌, 합당한 노력을 해야 그에 상응하는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열등의식과 무언가를 이뤄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완벽주의를 낳았다. 모든 면에서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은 세상이 설정한 성공의 법칙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는 성적뿐만 아니라 외모, 대인관계 등 모든 방면에서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준에 다다르지 못할 때면 그에 따른 좌절감을 폭식으로 풀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으로 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 년째 고치지 못한 폭식증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폭식의 근원은 ‘내면의 열등의식’이고, 폭식은 나 자신을 학대하는 수단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스스로에게 비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하며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 그 상처를 말미암아 나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었지만, 아픈 기억을 떠올릴 때면 솔직한 마음으로는 부모님께서 나를 낳아 주시고 키워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와 부모님을 철저히 분리하고 지금처럼 물리적, 심리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각자 본인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written by 캐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