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로거다

일하기 전 커피 한잔을 마시며,

by 나는야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퇴근길, 형광등 불빛이 바랜 회의실에 혼자 남아 있던 날. 그날따라 상사는 유난히 날카로웠고, 팀 분위기는 냉랭했다. 화면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다 결국 손을 떼고는 조용히 웹 브라우저를 열었다. "블로그로 돈 벌기"라는 문장을 처음 검색했던 순간이다.


그때 나는 제품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을 병행하던 디자이너였다. 감각을 팔아야 했고, 매일 새롭고 세련된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 내 디자인은 누군가의 프레젠테이션 속 슬라이드에 담겼고, 또 누군가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갔다.


언제부턴가 이 일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내 아이디어인데, 내 것이 아닌 순간들. 내 노력이지만, 내 삶을 바꾸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느낌.


지쳐 있던 나는, 그저 '내 이름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취미 공간이겠지만, 내게는 탈출구였고 생존 전략이었으며,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다.


처음 쓴 글은 지금 보면 너무도 엉성하다. 문장 구조도 어색했고, 맞춤법도 틀렸다. 키워드도 몰랐고, 글을 어디에 어떻게 퍼트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그 글을 읽었다.


조회수가 1에서 10으로, 10에서 100으로 늘어나던 그 첫 경험은 내 안의 무언가를 흔들었다. '아, 이거다. 나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구나.'


그때부터 공부했다. 블로그 운영법, 키워드 선정, 검색 최적화, 썸네일 만들기, CTA 문구 작성까지. 그저 '글을 쓴다'는 단순한 행위에 이렇게 많은 기술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천천히 수익이 생겼고, 작은 댓가가 붙기 시작했다. 하루에 커피 한 잔 값을 벌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익은 단순한 금액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내가 해냈다’는 자존감의 씨앗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이제는 블로그를 본업으로 해보고 싶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고, 또 믿고 싶었다. 회사를 나와 처음 맞은 계절은 겨울이었다. 밖은 추웠지만 내 마음은 꽤 따뜻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늘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블로그가 갑자기 검색에서 누락되기 시작했다. 열심히 쌓은 글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고객센터에 문의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늘 똑같았다. ‘정상입니다. 운영 정책 위반 사항은 없습니다.’


하지만 명백히 비정상이었다. 조회수는 급감했고, 수익도 뚝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오프라인 일은 모두 끊겼고, 사람들은 삶에 지쳐 블로그를 떠났다.


나는 멘붕이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는 질문만 수백 번 되뇌었다. 그 시기엔 글을 쓰는 것도 두려웠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왜 써야 하나 싶었고, 매일매일 키워드를 찾아다니는 것도 허무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나는 블로거가 되기로 결심했고, 끝까지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방향을 바꿨다. 단순히 수익만을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 전하고 싶은 정보를 담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 진심 어린 후기, 실수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초보 블로거가 겪는 현실적인 고충까지.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블로그는 다시금 내게 의미를 갖기 시작했고, 나는 그 안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블로거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로직은 매번 바뀌고, 글 하나에 담긴 단어 하나로 누락을 겪을 수도 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지만, 누구나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AI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고, 언젠가는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을 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의 언어를 믿는다. 감정이 녹아든 단어, 맥락이 살아있는 문장,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드는 이야기.


그건 AI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아직은 그렇게 믿고 싶다.


수익은 여전히 일정하지 않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찍히지 않고, 어떤 날은 예기치 않게 큰 유입이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을 알고 있고, 조금 느리더라도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힌트를 얻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처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매일 글을 쓸 이유가 충분하다.

오늘도 블로그에 로그인한다.


빈 화면 위에 첫 문장을 적는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는 블로거다. 지금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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