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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Aug 05. 2023

열대야? 열대야!

대프리카 체험

에어컨이 있어도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니!




우리 집 에어컨은 무풍이라 잘 때 아주 좋다. 밝은 불빛에 잠이 자주 깨는 나로서는 너무나 맘에 든다. 스피드로 빠르게 공기를 식힌 후, 무풍을 딱 눌러주면 열렸던 에어컨 창이 닫히면서 파란색 불빛이 꽤나 많이 차단되며 바람 소리도 훅 줄어 잠이 스르륵 든다.


올해는 대구로 이사 온 후 두 번째 맞는 여름이라 에어컨 온도설정도 몸에 맞게 할 줄 알게 되었다. 작년엔 너무 춥거나 더워서 자주 잠을 깼었다. 28도 무풍냉방이면 춥기도 하고 덥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올해는 무풍 25도면 딱 적당했다. 작년보다 밤엔 더 더워진 걸까?


그런데... 무풍으로 잘 수 없는 밤이 도래하고 말았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잠을 준비하러 들어가 부교감신경이 우위에 있도록 해준 보통의 밤에는 거의 통으로 8시간 정도를 잘 수 있는데 어제는 9시 좀 넘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10번은 깬 것 같다.


보통 왼쪽으로 돌아누워 잠을 청하면 그대로 잠들어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 척하면서 자는 편이다. 희한하게 어제는 잠든 후 정자세로 몸을 눕자 말자 깨어났다. 다른 편으로 돌아누워 잠을 청해도 다시 똑바로 누우면 깨는 것이다. 자세가 불편한가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새벽 1시쯤 완전히 깨버렸다. 남편도 더웠는지 거실로 나가는 것 같았다. 바로 스피드를 눌렀다. 심각하게 밝은 파란색이 눈을 자극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은 시간 좀 더 자기 위해 엎드려서 시원해지길 기다렸다. 이미 더워진 방은 평소보다 느리게 식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시 깨지 않을 거야 만족하며 무풍을 누르고 1도를 낮춘 후 잠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시 깬 것이다! 분명히 스피드를 돌렸고 1도나 낮췄는데도 아까와 별 다를 바 없이 나는 뜨거웠다. 만져보니 땀은 없는데 잠옷 밖으로 나온 부분은 시원하고 옷이 덮인 부분은 뜨거운 희한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입고 있던 잠옷을 벗고 다시 누워봤다. 바닥에 자는 걸 좋아하기에 두툼한 토퍼를 매트로 삼아 깔고 자는데 토퍼가 내 체온으로 달궈져 뜨끈뜨끈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스피드를 눌렀다. 너무 더웠던 걸까. 터보 냉방 기능이 안 되는 느낌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에어컨 바로 아래에 자고 있던 남편은 추웠는지 이불을 끌어 온몸을 감쌌다. 갱년기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더워서 방 밖에 나와보니 거실은 푹푹 찌고 있다. 거실 시계는 새벽 4시 17분. 온습도기엔 31도라고 표시되어 있다. 전화기 앱을 열어 바깥 기온을 확인해 보니 27도였다. 헉.


어제 저녁 남편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요즘 열대야가 심하대."

"그러게요. 거의 열대인 듯요."

"정말 열대네, 열대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갱년기 엄마의 여름밤 아이템을 드디어 떠올려냈다. 바로 애터미 고등어 아이스팩! 언젠가 너무 더운 날 쓸지도 모른다고 안방 어딘가에 둔 것이 생각났다. 어두운 방 안을 뒤적뒤적 더듬어 5줄짜리 아이스팩이 놀고 있던 그 장소에 도달했다. 매끈하고 시원한 팩이 손에 닿자 드디어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어깨 아래 견갑골이 닿는 부분에 아이스팩을 놓고 등을 대고 눕자 세상이 시원해진다.

아! 드디어 잠을 더 잘 수 있을 것 같아!


에어컨이 있어도 잘 수 없는 날이 오다니...

더 이상 4계절 뚜렷한 온대 지방이 아니게 된 걸까?

동남아에 던져진 기분으로 부족한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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