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주쌤이 되기 위해
나오미는 10년이나
떨어야 했다
내가 참 부끄러웠다.
'좀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지 그랬니?',
'그때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라는 외침이 마음속에 가득했기에 지나간 시간들이 후회스러웠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걸 매일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냈다.
해서 닉네임에 감히 내 이름을 쓰지 못했다. 누가 알아볼까, 왜 도망갔냐고 추궁할까, 그때 왜 나한테 그렇게 했냐고 따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를 고문하는 일에 지칠 때쯤 인생에 큰 변화가 몇 가지 일어나게 되었다. 학창 시절 꿈꾸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하던 사람들로부터 갑자기 떠나게 되자 견고한 생각의 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과연 나만 잘못하고 그들에겐 문제가 없었는가?
상대방이 별일 아니라며 넘어갈 일을 기억하며 혼자 괴로워할 필요가 있는가?
만일 사과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과를 하면 되지 않을까?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결국 나는 나인 것을.
나오미라는 닉에 숨고 싶어도 나는 김효주인 것을.
학교는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주는 걸 좋아하는 인간인 것을.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내가 나인 것으로 만족하게 되자 그냥 원래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씩 쉬워졌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고 3 때까지 정말 공부 자체를 좋아했던 학생이었다는 것, 그랬기에 공부라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버리고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공부하는 인간', '공부하는 것에 흥미를 크게 느끼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자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이건 꼭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우울증과 심리학에 관련된 연구를 하며 '나오미'가 되어 보려 했지만 오히려 그 시간은 나를 더 '김효주'가 되게 해 주었다. '교육'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더욱 그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결국 내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극적으로 더 멀리 나에게서 도망을 가보는 것이다. 도망가려는 이유도 찾아보고 왜 그렇게 무서워하는지도 알아보면서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내서 최대한 멀리 가보는 것이다. 그러면 허리에 거대한 고무밴드를 차고 도망가는 사람처럼 극한에 다다랐을 때 탄성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내 고무줄은 한계에 다다랐고 도착한 곳은 나다.
내 이름은 김효주,
세상에서 공부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 아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