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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r 29. 2021

앗! 내 상상력, 어디 갔지?!

3월부터 지역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평생교육 강좌를 신청하여 듣고 있다. 지난주 그림책 지도사 강의 중에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그림책의 효과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글자가 거의 없어 그림만으로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그림책들(데이비드 위즈너와 에런 베커의 책들)을 보면서 수강생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세대이든 자기 삶이 그림책에서 발견되는 것에 신기해했고, 상상력을 사용하고 있지 못한 어른들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강사님이 갑자기 질문을 하셨다.

'만약 상상을 한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요?'

머리를 망치로 맞는 것 같이 충격을 받았다. 최근에 상상력을 사용한 적이 없는 것이다. 상상력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거다. 지갑에 잘 넣어뒀던 것 같은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맛집 쿠폰처럼.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화석이 된 내 상상력


가까운 것부터 조금 먼 과거까지 얼른 돌아보았다. 상상력이 20살에 멈춰 있었다. 대학 입학 후로 상상력이란 것을 사용해보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된 거지? 진학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내 인생이 실패했다, 이번 생은 끝났다'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상상력이 정지해버린 모양이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물티슈로 닦아보니 내 상상력은 오래된 컴퓨터가 되어 있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보니 운영 체재가 Windows 95 상태로 멈춰져 있었다.


마지막 상상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모니터는 넓고 예쁜 캠퍼스를 보여 주었다. 도서관에서 법전들을 쌓아놓고 공부하는 내가 보였다. 쉬는 시간에 학생식당 앞에서 과 동기들이랑 앉아 이런저런 논쟁을 벌이고 있는 내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이런 상상을 고3, 수능 전날까지는 했다. 그러다가 수능 시험을 치른 후, 결과를 보고 상상하는 일을 멈췄던 것이다. 서울 안에 있는 괜찮은 법학과를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게 저렇게 나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지방 교대에 가 있게 된 것이다.


오래된 컴퓨터는 대학교 컴퓨터실에 있던 것과 동일했다. 놀 사람도 없고 할 것도 없으면 한글 타자 연습을 했다. 그렇게 내 상상력은 숨쉬기를 멈춰버렸다.



굳어진 상상력에 인공호흡을!


강의를 들어보니 상상하는 것에는 이런 효과가 있었다. 상상을 통해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는다. 그리고 실제로 할 수 없는 일을 간접 경험해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현실을 벗어난다는 해방감도 맛볼 수 있다. 그러면서 상상의 과정 중에 어떤 것을 배울 수도 있다. 다시 상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학문 기관으로 유명한 대학교 법학과 2학년이다. 수능 성적이 모의고사보다 더 높게 나와서 기분 좋게 입학할 수 있었다. IMF로 아빠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오히려 경기도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집에서 학교가 가까워서 주말에 가기에 엄청 편하다. 광역버스 50분이면 갈 수 있다.

우리 과엔 괴짜 같은 학생들이 많다. 걔들은 나름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강의 시간에 교수님들을 골려먹을 이상한 질문을 해댔다. 교수님들은 호통을 치셨지만, 뒷덜미로 흘리시는 식은땀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점심 먹고 나서 학생 식당 앞 잔디밭은 개똥이 굴러다니는 동산이 된다. 괴짜 녀석들이 다 몰려와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면서 만담을 늘어놓는다. 개콘이나 웃찾사보다 더 웃긴다.

법학과이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장래가 좀 정해진 느낌이다. 사법 고시나 행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가끔은 공시나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1학년 2학기 때부터는 도서관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내 자리는 1 열람실 가장 안쪽에서 두 번째 줄에 있는데, 내 왼쪽에 한 자리가 더 있고 그 옆에 창이 있어 적당히 따사롭고 조용해서 아주 좋다. 내 앞에 앉는 선배는 맨날 공부는 안 하고 잠만 자서 올 때마다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

기숙사 룸메이트는 다른 과 학생이다. 발레를 전공하는 무용과 학생인데 스스로가 즐거운 날라리란다. 나는 걔랑 함께 있는 것이 참 좋다. 뭔가 내 삶과 다른 결을 가진 룸메는 나를 즐거운 세상으로 안내해준다. 같이 옷도 사러 가고 화장품도 사 와서 둘이 화장법도 연구하고 하는 시간이 참 재밌다.


아! 이런! 이거 너무 재밌다! 한번 쓰고 말 내용이 아니다. 그냥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금방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창작계에 유명한 말이 있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없으면 직접 쓰라는. 내가 읽을 용으로라도 써야겠다.


가난한 시절 종이 접기로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만들어 놀았다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상상력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 녀석은 나보다 더 어렵게 살았는데도 상상력을 잘 활용해서 즐겁게 살고 있었다. 심지어 꿈에서도 상상을 한다나?


일단 인공호흡해서 살려놨으니 이제 상상력을 사용해서 글을 써보도록 해야겠다. 아.. 이거 너무 재밌는 걸...



(Pixabay로부터 입수된 SarahRichterArt님의 이미지 입니다.)


<아래 부분은 작가의 퇴고 공부를 위해 남겨둔 부분입니다.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제목: 화석이   상상력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야기를 쓰고 싶다


지난주부터 지역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평생교육 강좌를 신청하여 듣고 있다. 그중 그림책 지도사 과정 중에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그림책의 효과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글자가 거의 없어 그림만으로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그림책들(데이비드 위즈너와 에런 베커의 책들)을 보면서 수강생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나이 때이든 자신의 삶이 그림책에서 발견되는 것이 신기했고, 상상력을 사용하고 있지 못한 어른들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강의 중 머리를 망치로 맞는 것 같이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상상력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거다. 지갑에 잘 넣어뒀던 것 같은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맛집 쿠폰처럼.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로 갔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가까운 과거로부터 조금 먼 과거까지 얼른 돌아보았다. 상상력이 20살에 멈춰 있었다. 나는 대학 입학 후로 상상력이란 것을 사용해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격이었다. 왜 그렇게 된 거지? 진학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내 인생이 실패했다, 이번 생은 끝났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상상력이 정지해버린 모양이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물티슈로 닦아보니 내 상상력은 오래된 컴퓨터가 되어 있었다. 구동을 시켜보니 Windows 95 상태로 업그레이드 없이 멈춰져 있었다. 한글 타자연습 프로그램이 켜져 있었다.


마지막 상상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니 넓고 예쁜 캠퍼스가 보였다. 도서관에서 법학책을 쌓아놓고 공부하는 내가 보였다. 쉬는 시간에는 학생식당 앞에서 과 동기들이랑 앉아 이런저런 논쟁을 벌이고 있는 내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이런 상상을 고3, 수능 전날까지는 했다. 그러다가 수능 시험을 치른 후, 결과를 보고 상상하는 일을 멈췄던 것이다. 당시 수능은 약간 어렵게 출제되었고, 전체 학생들의 성적이 직전 모의고사에 비해 조금씩 하향세를 보였다. 한참 성적이 오르고 있던 나로서는 수능 결과가 더 좋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나 역시 큰 흐름에서 튀어나오지 못했다. 서울 안에 있는 괜찮은 법학과를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게 저렇게 나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지방 교대에 가 있게 된 것이다.


오래된 컴퓨터(화석이 된 내 상상력)는 대학 때 컴퓨터실에 있던 것과 동일했다. 놀 사람도 없고 할 것도 없으면 나는 컴실에 가서 한글 타자 연습을 했다. 그렇게 내 상상력은 숨쉬기를 멈춰버렸다. 그림책 지도사 과정 중에 '상상력'이 주는 효과에 대해 알아보았다. 상상을 통해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는다. 그리고 실제로 할 수 없는 일을 간접 경험해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현실을 벗어난다는 해방감도 맛볼 수 있다. 그러면서 상상의 과정 중에 어떤 것을 배울 수도 있다. 나는 상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상상은 이것이다. 내가 원하던 법대에 진학하여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법관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돈만 있으면 로스쿨에 도전해보고 싶을 정도로 나의 '법조인'이 되고 싶은 열망을 아주 큰 편이다. 그래서 상상으로 법관이 되어보기로 했다.

수능 성적이 좀 더 좋게 나와서 인 서울 괜찮은 법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IMF로 아빠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오히려 경기도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그래서 집에서 학교가 가까워서 너무 좋다.

학교에 가보니 괴짜 같은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나름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강의 시간에 교수님들을 골려먹을 이상한 질문을 해댔다. 교수님들은 호통을 치셨지만, 뒷덜미로 흐르는 식은땀을 다 느낄 지경이었다. 점심 먹고 나서 학생 식당 앞 잔디밭은 개똥이 굴러다니는 동산이 된다. 괴짜들이 다 몰려와서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면서 만담을 늘어놓는다. 개콘이나 웃찾사보다 더 웃긴다.

법학과이다 보니 장래가 좀 정해진 바가 있어 대부분이 1학년 2학기 때부터는 도서관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내 자리는 가장 안쪽에서 두 번째 줄에 있는데, 내 왼쪽에 한 자리가 더 있고 그 옆에 창이 있어 적당히 따사롭고 조용해서 아주 좋다. 내 앞에 오는 선배는 맨날 공부는 안 하고 잠만 자서 올 때마다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

기숙사 룸메이트는 다른 과 학생이다. 발레를 전공하는 무용과 학생인데 스스로가 즐거운 날라리란다. 나는 걔랑 함께 있는 것이 참 좋다. 뭔가 내 삶과 다른 결을 가진 룸메는 나를 즐거운 세상으로 안내해준다. 같이 옷도 사러 가고 화장품도 사 와서 둘이 화장법도 연구하고 하는 시간이 참 재밌다.

아! 이런! 이거 너무 재밌다! 한번 쓰고 말 내용이 아니다. 그런 말이 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없으면 써서 읽으라는. 내가 읽을 용으로라도 써야겠다.


가난한 시절 종이 접기로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만들어 놀았다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상상력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 녀석은 나보다 더 어렵게 살았는데도 상상력을 잘 활용해서 즐겁게 살고 있었다. 심지어 꿈에서도 상상을 한다나? 일단 인공호흡해서 살려놨으니 이제 상상력을 사용해서 글을 써보도록 해야겠다. 아.. 이거 너무 재밌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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