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글방 3기 18일 차 나의 인생 영화 추천
이 영화를 만나기 전까지 인생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글레디에이터라고 말해 왔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야만인들과 싸우는 막시무스의 모습, 멋진 나무들이 빽빽이 나 있는 숲, 검투 경기가 있던 콜로세움, 음모 이런 것들이 지금도 기억이 날 만큼 글레디에이터를 좋아했지요.
그러나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 저는 '인생 영화'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겨울 왕국>입니다. 아이들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영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어른들도 많이 본다기에 보러 갔던 그 영화.
저는 평소에도 드라마나 영화 속 배우들의 감정에 공명하여 눈물이 잘 흘리는 편입니다. 겨울 왕국을 보러 가서는 꺼이꺼이 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같이 갔던 친구가 창피해서 먼저 나가고 싶었다고 할 정도였죠. 영화관 앞쪽에 엄마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이 재밌다고 시끌벅적 떠들어주어서 우는 소리가 가려진 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렇게 울 줄도 몰랐고, 어린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스스로도 되게 당황스러웠지만, 그 날부터 제 인생 영화는 겨울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저는 왜 그렇게도 울었을까요? 당시 제가 바로 엘사와도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해 그 무엇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된 엘사에게 무척 공감이 되었습니다. 방 문 앞에서 같이 놀자고 노래 부르는 동생 안나의 모습에도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 왜 그리도 오래 제 자신을 힘들게 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엘사를 보니 너무 불쌍하고 가엾어 보였습니다. 그 유명한 노래 'Let it go'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살짝 느낄 수 있었지만, 마지막엔 혼자만의 성에 갇히게 버리는 엘사를 보니 씁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엘사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중에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처음에는 엘사를 '단순히 마녀'처럼 그리려고 했다고 해요. 그러나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소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것이 엘사를 탄생시킨 배경이라고 하더라고요. '우울증'을 앓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기만 하는 제가 참 싫었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지금의 내가 이런 모습일지라도 엘사가 안나의 사랑으로 나아진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지금의 나는 아픈 상태일 뿐이야.'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어린 시절의 무력했던 저를 용납하고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수많은 '나'들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겨울 왕국>을 관람하고 난 뒤, 저는 이 영화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애니메이션이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라 할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생 영화라 말할 수 있는 건 '나'라는 사람에 대한 혐오를 벗고, 폭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버티게 해 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처럼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라나가는 정신적인 성장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