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이유!
와장창 깨부수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떴더니 누군가가 '미란다 원칙'을 줄줄 읊고 있다. 열중쉬어 자세로 양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있어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당신이 어젯밤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용의자란다. 절대 당신은 아니다. 그 시간에 당신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어젯밤, 혼자 집에 있었고, 일찍 자버려서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사람이 없다. 당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이럴 때 재판을 받고 단 며칠, 세상의 이목을 끌다 재판을 받고 교도소로 끌려가 몇십 년이고 복역하게 될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부자 친구 하나, 변호사 친구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갑자기 그런 친구들이 생기지는 않을 테니 그야말로 큰일이 난 거다.
만일 당신이 드라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누구에게 사건 해결을 맡기고 싶은가? (단, 당신이 처한 상황과 당신이라는 사람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제한다.)
여기 협상과 문제 해결의 귀재 2인이 있다. 한 사람은 로맨틱한 난봉꾼으로 나이트클럽 사장이요, 다른 사람은 자칭 범죄 수사 컨설턴트인 흥신소 사장이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당신의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을 확률이 크다는 점. 나이트클럽 사장인 루시퍼는 개인적인 이유로 흥미를 끄는 사건이 아닌 이상 웃으며 무시할 것이기 때문이고, 흥신소 소장인 탐정 셜록은 이야기를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당신 행색을 관찰하다 추리할 거리도 없다며 쫓아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두 사람이어야 하는가?
첫째, 그들이 가진 능력치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미드 루시퍼의 주인공 루시퍼 모닝스타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악마로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몇 가지 신적 파워를 가지고 있다. 영드 셜록의 주인공 셜록 홈즈는 대단한 추리력 및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뛰어난 관찰력과 지적 능력, 과학적 사고 능력 및 검증방법을 가지고 있다.
둘째, 협상의 기술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루시퍼가 가진 협상 기술은 아주 간단하면서 자극적이다. 그는 사람들이 대부분 근원적인 자기 욕망을 깨닫지 못하며, 표면적으로 밝히는 각자의 소원과는 다를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루시퍼의 'What is it that you truly desire?'라는 질문에 자신도 모르는 자기 욕구를 말해버리고 만다. 이 능력은 함께 수사를 하는 클로이에게 무척 큰 도움이 된다. 드라마의 배경이 LA이며 할리우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주를 이루다 보니 이러한 간단한 능력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셜록이 협상하는 모습은 매우 다르다. 그는 인간의 본심이 나올 때까지 관찰하고 독설을 퍼붓고 무시하면서 버티는 기술을 사용한다. 다소 불리한 상황이 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데 선수이며, 심지어 자기 정보를 조금씩 흘려가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셜록이 사랑에 빠졌던 아이린 애들러가 납치된 후, 그가 남긴 전화기 비밀번호를 끝까지 풀려고 하던 장면은 명품이다. 셜록은 아이린으로 인해 불리한 협상 자리에서도 끝까지 버티며, 확인 가능 횟수가 1번밖에 남지 않은 8자리 비번을 극적으로 풀고 처형 직전의 아이린을 구출해낸다.
셋째,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 이용하고 싶은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루시퍼는 드라마 안에서 재력가이며 매우 잘 생기고 몸도 매우 섹시하다고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사용한다. 그에게 진심이나 깊은 사랑 이런 것은 귀찮은 것이므로 소유한 것들을 이용하여 알아내고 싶은 정보를 빼낸다. 돈으로 구슬리고, 몸으로 유혹하고 술로 꼬신다.
셜록에게는 거리의 아이들이라는 정보원이 있다. 런던 지하 터널에 사는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물질을 제공하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한다. 셜록 홈즈의 형(마이크로포트)은 국가의 높으신 관리로 세상의 웬만한 모든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셜록의 입담에 속아 자신이 가진 경찰 내부의 정보를 술술 뱉는다. 또한 영안실의 몰리 박사는 셜록을 연모하기에 그가 원하는 대로 시체를 내주고 실험을 하게 해 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에게 어떻게 사건을 맡도록 할 수 있겠는가?
먼저, 루시퍼와 셜록의 관계를 이용하자. 루시퍼에게 갈 때에는 그에게 직행하기보다, 사적인 관계의 흥미를 끌기 위해 그의 형 아메나디엘에게 호소하는 편이 좋다. 아메나디엘은 매우 친절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므로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루시퍼에게 이끌어 줄 것이다. 루시퍼는 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아메나디엘의 말은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셜록에게 갈 때에도 왓슨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셜록의 이상함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준 왓슨을 셜록은 의지하고 신뢰하는 편이다. 따라서 왓슨의 제안이나 부탁은 나중에라도 들어주게 되어있다.
다음으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루시퍼와 셜록에게도 아프고 괴로운 기억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루시퍼에게는 자신을 지옥으로 보내버린 아버지(하나님)에 대한 이해하지 못할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에게 용납받길 원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신감이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잠적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셜록에게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 기억의 궁전엔 비극적인 우물 사건이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감옥에서 때때로 신음한다. 따라서 사건을 의뢰하려면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이 두 사람의 아픔과 동일할 정도로 괴로운 것이란 사실을 그들이 납득하도록 해주면 된다.
어떠한가?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당신에게 씐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마스크를 벗게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들이 약자들을 착취하고, 따스하게 보듬어야 할 부모들이 폭력으로 자녀들을 대한다. 또한 자신의 범행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도 많이 발생한다.
나 역시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이라는 상상을 많이 했다. 내가 부잣집 아이였다면, 내가 남자였다면, 아빠에게 막강한 권력이 있었다면 과연 내게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그래서일까 미드 루시퍼와 영드 셜록을 보면서 꼭 한 번은 그들에게 그 억울했던 사건들을 맡아 달라 부탁하고 싶었다. 루시퍼라면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알게 해 줄 것 같아서, 셜록이라면 사건의 전체를 보며 어떤 방식으로든 사건의 가해자가 나에게 사과를 하도록 해줄 것 같아서.
당신에게는 사건을 의뢰하고 도움을 구할 친구가 있는가? 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도움을 구하고 싶은 히어로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