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주 Dec 21. 2020

쉼터를 잃어버리다

엘사가 띄웁니다. Let it go~!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쉼터가 필요하다. 마음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편안히 쉴 수 있는 그런 곳. 실수할까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멋진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 방청소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곳. 자신의 무력감으로 인해 일어난 분노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


당신에게는 있는가? 그런 마음의 안식처가?

지금 당신의 마음에 떠오른 그런 곳이 정말로 당신 자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엘사가 주인공인 '겨울 왕국'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에 당신도 그가 지은 '얼음성'을 쉽게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그 성을 짓기 전에 불렀던 노래 'Let it go~!'를 1번 이상을 들어봤다면 아마 성을 짓는 모습도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였던 나는 영화를 보고 와서 매일 성을 짓는 남학생(?)들로 인해 매우 놀랐었다. 여자 아이들은 동영상을 틀어달라고만 하고 보기만 했지 학교에서는 따라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계속 적으로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녔고, 운동장 조회대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며 성을 만드는 몸짓을 하며 그 겨울이 다 가기까지 매일 불렀다. 그 모습이 볼 때마다 신기했던 이유는 얼음성 짓기 놀이를 하고 있던 남학생이 키가 170cm넘는 친구였기 때문도 아니고, 그 친구가 변성기인 목소리로 꺼이꺼이 노래를 불렀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겨울왕국을 보던 내내 '한없는 눈물'을 흘리다가 영화관을 나와 몇 개월 동안이나 엘사앓이를 했던 나와 당시 어린이들이 느낀 감정의 깊이와 다름의 위화감 때문이다.


영화를 무척 좋아하기에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영화를 즐기는 나는 아이들이 주로 보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굳이 영화관으로 보러갔다가 이렇게 펑펑 울면서 나오게 될지 진짜 몰랐다. 게다가 애니 주인공인 여자애한테 동일시가 되어서 그렇게 슬퍼지다니. 같이 영화를 보러 갔던 동생이 정말 황당해했다.


그 이유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왜 그렇게 슬프고 괴로웠는지 왜 그리도 엘사가 불쌍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엘사처럼 대단히 특이하고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데, 뭐랄까 늘 부모님으로부터 조심해라, 잘 해라,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면서 자란 것 같다. 돌아보면 내가 되게 큰 사고를 칠 타입은 아닌데 말이다. 큰 소리를 뻥뻥 치지만 겁이 많아서 사고날 일을 잘 하지는 않는 성격이라서. 그런데도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과보호가 심한 부모님 밑에서 늘 새장에 갇힌 앵무새같다. 부모님이 하는 말과 행동을 다 따라해야하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살아야했던 나는 궁전의 한 구석 자기 방에 갇혀 밖에도 못나오고 동생이 놀자고 노래를 불러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엘사같은 사람이었다. 그 방에 갇혀 나는 부모님과 나의 꿈(?)을 위해 늘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다. 밖에 나가고 싶어도 창문만 열어놓고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할 뿐, 그 아이들과 함께 놀지는 못했다.


결국 엘사는 부모님의 급작스런 사망소식으로 황당하게 국왕의 자리에 올라야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많았던 엘사에게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 형성이나 국왕으로서의 모습을 지켜내는 일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엘사에게는 국왕으로서 그런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으나, 훈련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엄청 버거웠을 것 같다. 게다가 그런 상태가 되니 자신의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에너지도 바닥이 나고 말이다.


자신 만의 공간으로 도피를 시도한 엘사. 부모님의 성 안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살던 땅에서 먼 곳으로 피해 깊은 산으로 가서 인생의 짐과도 같은 압박감들을 던져버린다. 사실 여기까지는 참 멋진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 엘사는 몇 시간 전까지 머물던 부모님 집의 얼음방을 집 밖에다가 만든 것 뿐이다. 그의 능력으로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한 것처럼 꾸며낼 수 있어도 엘사는 방금 전에 자기 삶에서 도망쳐 나온 그일 뿐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Let it go 노래가 끝나고 얼음성 문이 쾅 닫혔다. 그 시간 이후에 그는 그 안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가 지은 성은 반짝반짝 거리고 화려하고 아름답고 찬란하다. 그러나 얼음으로 지어진 성 안에서, 아무 것도, 누구도 없는 그 안이 정말 행복했을까? 잠시간 조용해진 틈이 주는 고요함은 약간의 만족감을 줄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춥고 딱딱한 성 안에서 엘사는 쉴 수 없었을 것임이 확실하다.


다시 돌아보자. 당신의 쉼터. 그곳은 정말 시골 외갓집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인가? 아니면 엘사의 얼음궁전인가? 어린 시절부터 '해야한다'는 중압감에 눌려 살던 나는 가끔 가족들로부터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베란다로 도망갔었다. 화가 너무 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볼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감추기 위해 거실창으로 베란다와의 공간을 차단했다. 그리고 혼자 흐느껴 울었다. 너무 크게 울면 우리 가족은 몰라도 다른 집에서 알까봐. 


  너는 안동 사람이니까 예의바르게 행동해야해. 안동 출신이 참 괜찮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너는 아빠의 딸이니까, 너의 아빠처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너는 딸이지만 다른 집 열 아들 부럽지 않게 키울거야. 너는 내 자랑이 되어야 해.

  너는 우리집 맏이니까 엄마 아빠가 없을 땐 우리집의 주인이야. 집 잘 지키고 동생 잘 돌봐야해.

  너는 언니니까 니가 하는 모든 행동을 동생이 따라할 거야. 나쁜 행동하지 않도록 주의하렴.

  너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욕 먹지 않도록 바르게 행동하도록 해.

  너는 교사니까 교사처럼 입고 교사처럼 말하고 교사처럼 행동하렴.


이런 압박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내가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들, 주위 어른들의 틈에서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큰 짐이 되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늘 어깨를 내리라고, 무슨 큰 일이 있냐고 하면서 다그쳤다. 그러나 긴장과 불안으로 늘 올라가있던 어깨는 부모님이 아무리 핀잔을 주셔도 내려올 수 없었다. 나는 실수를 하면 안되고 부모님을 실망시키면 안되니까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처해야했다. 늘 불안하고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는 그런 어린이아이였다.


그러기에 나는 엘사가 너무 불쌍했고, 나도 너무 불쌍했나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엘사의 이상행동이 어찌나 나와 비슷한지 깜짝 놀랐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 잘 되라고 하는 말인 것은 뻔하다. 그러나 그러한 부모님은 엘사나 나에게 절대로 쉴만한 물가도 시원한 원두막도 되어주지 못한다. 그렇게 엘사와 나는 마음의 쉼터를 잃어버리고 자신 만의 안전지대를 건축한다. 그게 바로 나와 그의 얼음성이다. 그러기에 나의 Let it go~!s는 슬프고 아픈 노래이자, 괴로운 삶을 떨쳐내고픈 영혼의 작은 신음이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Leonhard Niederwimmer님의 이미지 입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는 신나는 것이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