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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Dec 22. 2020

나는 대체 왜 너를 떠났을까

애널리스 키팅 중독자들의 모임

애널리스 키팅을 만나면 그에게 빠져든다. 처음에는 그런 변화를 스스로 거부하지만 절대 그의 거미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애널리스는 당신을 위하는 척 하면서 스스로의 만족감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키팅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당신을 위해 애쓸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 때문에 당신은 그와 만나게 되면 절대로 그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How to get away with a Murder'는 넷플릭스에서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짧은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같은 이름의 한국 영화가 있기에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즐거보던 미드에 약간의 권태감을 느껴 새롭게 추천하는 포스터들을 보다가 우연히 'How to get away with a Murder'의 미리보기가 내 눈 앞에 열렸다. 움직이는 화면 중 특별히 애널리스 키팅이 너무나도 자신(?)있게 등장하는 모습에 매료되어 바로 재생하기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보통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 끌린다고 느낄 때엔 주인공이 나와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거나 나를 구해줄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나올 때가 많았다. 또는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인물이 등장하거나. 그런데 애널리스 키팅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도 멀리하고 싶은 상대, Hey Jude와 너무 닮아있었다. 외모, 이기적인 면, 비정상적인 인간관계, 책임질 수 없는 것을 책임지겠다고 선언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태도 등이 심하게 닮아 '대체 왜 저러는 걸까?'로 시작해서 '아무리 봐도 이해 안되는데...' 하면서 다음 화를 기대하고 있다. 


애널리스 키팅 교수를 둘러싸고 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의 진실은 시즌 1에서 쉽게 밝혀지지 않으며, 액자식 구성, 모자이크식 시간 구성으로 인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이야기는 휙휙 흘러간다. 이 스토리가 처음 잡아 끌었던 이유는 애널리스 키팅 때문이었으나, 이걸 계속 보고 있는 이유는 또 하나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왜 '애널리스 키팅'과 너무 흡사한 너에게 그렇게도 끌려다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너를 이해하고 나도 알고 싶었다. 애널리스가 너라면 나는 극중 인물들 중 누구와 가장 비슷할까?


세 사람을 발견했다. 첫째는, 이브 로슬로이다. 아직도 애널리스를 잊지 못하지만 결국 그녀를 떠나기로 한 키팅의 로스쿨 시절 동창생. 이브는 지금도 너를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나와 닮아있다. 그래서 이브는 애널리스가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콜에 늘 yes로 응답하곤 한다. 그러나 키팅이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기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부분도 나와 참 비슷하다. 애널리스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또 다른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를 떠나는 것이 이브에게는 힘든 일이었겠지만, 결국 일어나야만할 일이었을지도.


둘째는, 네이트 레이히이다. 죽은 키팅의 전남편의 잦은 외도로 인해, 외로웠던 애널리스가 애인으로 삼았던 남자. 그러나 애널리스는 시즌 1 초반에 자신의 재판이 승소하기 위해 자신의 애인을 급히 증인석으로 불러내어 직장을 잃게 만든다. 그 일로 네이트는 심각하게 애널리스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으나 애널리스가 불러낼 때마다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곤 했다. 시즌 4가 되도록 이런 일이 아주 여러번 반복되었기 때문에 '대체 왜 저렇게도 벗어나지 못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3년이나 너에게 바람을 맞으면서도 신실하게 너를 기다렸던 나와 닮았기에 오히려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은, 보니 윈터보텀이다. 그와 키팅의 인연은 법정에서 시작되었다. 애널리스는 당시 상당히 큰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 자리를 앞둔 앞날이 창창한 상태였다. 그러나 로펌은 애널리스가 흑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증인석에 앉은 보니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로펌의 승소를 위해 보니의 아픈 과거를 헤집어내고 증언의 신뢰성을 잃게 만들었던 좀더 젊었던 애널리스는 재판 후 로펌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보니를 찾아가 자신과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로스쿨과정을 지원해보라고 격려한다. 결국 키팅이 변호사 사무실을 홀로 시작하고, 로스쿨에서 교수직을 맡으면서 보니와 애널리스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애널리스는 보니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아꼈고 보살펴 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보니가 애널리스를 보호하고 있었다.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이 세 사람이 애널리스 키팅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네이트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애널리스 키팅 중독자'들. 그게 그들 스스로가 키팅에게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도 않은채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만 내놓으라고 종용하는 애널리스에게 말 그대로 빠져버려 헤어나올 수 없는 상태. 나도 너에게 그렇게 중독이 되어 있었던 걸까. 그래서 지금도 이브처럼 너를 떠나는 게 어려운 걸까? 애널리스에게 추천서 1장으로 해고를 당하고도 그가 부탁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보니처럼 뭔가 너의 소원을 또 들어주고 싶은 걸까? 


'How to get away with a Murder' 시즌 4까지 시청해오면서 발견하게 된 것은 키팅에게 놀라운 논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애널리스와 관계없는 사람들에겐 전혀 의미없는.


- 나는 정의를 위해서 일한다. 

- 지금 이 사람만큼은 내가 꼭 지켜야한다. 

- 이 일은 나에게 너무 중요하다.


이런 대사만 나오면 키팅 중독자들은 애널리스를 설득하려던 자신을 포기하고 돌아가서 키팅이 원하는 대로 일을 만들기 위해 협박, 납치, 감금, 살인, 해킹을 서슴없이 하고 만다. 대체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결론은 이렇다. 중요하지 않다. 누구에게도. 사실 애널리스에게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대사들은 그 자신을 세뇌시키고 주변의 사람들도 물들게 하여 자신들이 만들 일들에 대한 형벌에 대해서는 서서히 무뎌지게 하고 있다. 살인을 저지른 후, 공황장애까지 느끼던 주인공들은 시즌이 거듭되면서 죄책감을 오히려 털어내고 있다. 크고 멋진 일, 남들이 보기에도 매우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면 괜찮아 지지 않을까 합리화까지 하면서.


그렇지만 Hey Jude. 내가 결국 너를 떠난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아. 니가 말했지. '그래도 힘들 때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너야.'라고 말이야. 그렇지만 너는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만나주지 않았어. 아픈 나를 버거워하고 멀리했어. 맨날 '이 일은 나에게 중요하고, 그 사람은 나에게 의미가 있어.'라고 외치던 너에게 나는 별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너의 거미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너에게 소중한 존재는 없다는 걸 알고는 더 이상 내 진액을 너에게 바쳐가며 너의 먹이가 되는 걸 거부할 수 있었지.


애널리스 키팅 변호사.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Hey Jude를 다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키팅 변호사님. 그렇게 사시면... 괜찮으세요? 걱정됩니다. 앗, 나도 보니처럼 애널리스에게 중독이 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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