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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12. 2021

명품백으로 가릴 수 없는 너의 3가지 비밀

탐욕, 빈곤, 소외 그리고 애널리스

식사는 편의점에서, 쇼핑은 명품관에서.

코로나가 만들어 낸 우스꽝스러운 모습. 그곳에서 애널리스와 너를 만나다.


How to get away with a murder에서 네가 떠오른 이유는 애널리스 때문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치장한.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서 변호사 및 로스쿨 교수로 살고 있다는 건 매우 대단한 일이다. 그러니 그의 의상은 당당한 전문직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준비 끝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네가 어떤 옷을 사 입든 그 역시 네 권리다.


그러나 때로 너무 과하다. 진노랑 원피스나 꽃분홍치마는 키팅에게 별로다. 보석 목걸이는 금빛이 강해 네 얼굴빛을 가린다. 게다가 자신이 하는 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국선변호인단의 시간 제약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들을 위한 집단소송을 하겠다 나서는 애널리스나 소외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한다고 늘 자랑하는 너는 하는 일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게 입고 다닌다.


그렇다면 키팅과 네가 명품백으로 숨기고픈 3가지 비밀은 무엇인가.


첫째, 자신에 대한 탐욕이다. 어느 곳이든 정복해야 하고, 왕좌를 차지해야 하니 두 사람에게는 명품백이 필요하다. 키팅에게 중요한 사람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거나, 이용가치가 있는 인간이다. 수임료가 높은 사건의 피고나 자신을 고용해 줄 권력자들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애인이나 상담자, 애제자도 위증을 하게 만든다. 법조인이면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친구 삼아준 이유는 동갑이거나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수능점수가 높았고, 실제로 더 똑똑하다고 생각해서겠지. 친구로 소개하기에 괜찮아서. 늘 '탁월함'에 대해 말하며 상관들을 깔아뭉개면서도 사랑과 인정을 독차지하려 무슨 짓이든 다 했다. 개인적인 일을 직장 전체의 일로 만들고, 교회에서 일어난 분쟁에 일부러 끼어들어 일을 확대시키는 건 네 특기다.


둘째, 타인에 대한 빈곤이다. 

"이제 나 퇴근해서 너네 집 근처 가면 6시쯤 될 것 같은데 만날 수 있어?"

수년간 매주 카톡으로 이렇게 약속을 잡았다. 그러나 6시가 되어도, 7시가 되어도 연락 한 번 없었다. 백화점에 옷을 사러, 수선을 맡긴 곳에 구두와 가방을 찾으러, 몇 달 동안 못 만난 친구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서. 늘 그런 이유로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 모습은 애널리스 키팅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신변에 관련된 일에 몰입하여 로스쿨 강의에 늦거나 취소를 하는 일은 기본이요, 재판이나 경찰 출두와 같이 공적인 일에도 지각을 했다. 아랫 사람들의 요청이나 권유는 듣지도 않는다.


절친이라는 거짓말은 해외여행에서 사온 선물에서 탄로났다. 얼굴만 아는 지인들과 베프인 내가 받은 선물이 다르지 않았다. 값싼 실팔찌와 다 부서진 비누를 하사하듯 건네며 너를 위해 사온 향수, 화장품, 명품백을 자랑했다. 더는 자랑할 사람이 없어 불러내놓고 '밥값은 니가 내.'라고도 했었지.


셋째, 외로움이다. 유산 후 결혼생활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던 애널리스. 곤경에 처할 땐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어 술과 약에 의지하는 모습, 불쌍하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잡지 못한다.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너.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다.


로펌에 고용되어 멋진 집과 차를 사게 된 애널리스. 열심히 저축하여 집을 사고 차를 바꾸는 너. 둘 다 참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오랜 세월 함께 한 프랭크와 보니는 왜 키팅을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게 되었을까? 상담사였던 아이작은 대체 왜 자살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네 주변의 시끌벅적한 친구들, 그중의 단 한 사람도 너에게서 온전한 사랑과 용납은 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몰래 좋아하던 어린 화가에게 너는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다. 상담사처럼 주변을 맴돌았지만 결혼하는 그를 울면서 보내야했다. 오랜 기간 희생하며 사랑을 갈구하던 녀석은 너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해 30장이 넘는 러브레터를 보냈지만, 의미조차 너는 깨닫지 못했다.


애널리스와 너는 외롭다. 자신에 대한 탐욕과 타인에 대한 빈곤이 그 원인이다. 결국 명품백으로 가장 가리고 싶었던 외로움이다. 고독함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발버둥 치는 것이다. 화려하고 좋은 것으로 치장하여 철저하게 숨긴다.


어쩌면 이 3가지 비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추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만을 위한 일에 몰두하고,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수고했다.', '최고다!' 이런 말 한마디 들어보자고 걸레짜듯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사람들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명품백은 정답이 아니다.


시즌 5 13화에 애널리스와 그의 어머니의 대화에 해답이 있다.

"남을 구하는 게 널 구하는 거란다. 내가 네 아빠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을 위한 게 아니란다. 사랑이 날 채워주니까. 널 사랑하는 마음이 날 채워주듯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건요? 그건 의미가 없나요?"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 알고 있잖아."


언제가 네가 사랑을 배우면 좋겠다. 짝사랑이든 외사랑이든 뭐든 한번 찐하게 하게 되는 걸 나는 소망한다. 사랑은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마음을 예쁘게 바꿔줄 것이라 믿는다. 배신을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명품백 따위 개나 줘버릴 수 있을 거다. 아버지 문제로 늘 타인을 믿지 못하는 애널리스에게도 불붙는 사랑이 찾아와, 그의 어두움을 불살라 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드라마가 끝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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