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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y 02. 2022

이사 후유증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지인들이 말했다.

"한 두 달 정도는 힘들겠네. 이사는 여자일이잖아."

"이사하고 짐도 풀고 나서 좀 적응되면 만나요."


이사 관련 모든 연락을 남편이 할 거고, 이삿짐센터가 짐을 다 옮겨줄 건데 짐 풀고 적응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려나?


그런데... 이사 와서 보니 그 말이 정말 맞다는 걸 몸이 느끼고 있다. 이사 전후 주로 집에 있어보니 적응하는 일에는 정말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새 집에

적응하기


남편 직장에서 사택을 제공하기에 집의 크기나 인테리어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사는 곳이 전보다 2배 정도 크다. 짐이 모두 들어가고도 충분히 공간이 남으니 '이제 좀 집 같은 집에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지내보니 보기에는 좋은데 몸이 엄청 피곤했다. 발바닥이 계속 아파서 병원에도 다녔다. 미 밴드로 걷는 양을 측정해보니 집에만 있어도 하루 5000보를 걷고 있었다! 그 전 집은 좁고 구조가 특이해서 동선이 매우 짧아 하루에 1000 보도 걷지 않을 때도 있었기에, 이사 후 만성피로 상태가 되었다. 월세집이라 주인이 설치해둔 롤블라인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암막 효과가 적어 숙면을 하는 시간이 줄어든 탓도 있는 것 같다.


전혀 다른

기후에 길들여지기


전에 살던 영덕읍은 산, 들, 강, 바다가 어우러진 특이한 지역이었다. 강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셌고 공기가 매우 맑았으며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었다. 그런데 대구에 와보니 기후가 안정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대프리카'라고 하길래 3월 중반에 갑자기 더워졌을 때, 벌써 여름이 오는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봄에도 3한 4 온이 살아있는 희한한 기후 덕분에 실내에 있을 때에도 내복을 입고 있다. 대구에 먼저 이사 온 지인도 같은 이유로 계속 골골하고 있다며 적응하기 힘든 날씨라고 했다.


무너진 루틴

다시 세우기


이사 직전, 2년 정도 살았던 영덕의 삶에 완전히 적응되어 적당한 루틴에 따라 자동적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으로 와서는 푹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로 하루 종일 좀비 같이 돌아다니다가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너무 밝은 집에 있으니 낮잠도 충분히 자지 못했다. 몸이 쳐지니 마음도 우울하고 심란한 것 같아 상담도 받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음의 힘이 차오르자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 갈 용기가 생겨나고 있다. 아직 몇 시에는 뭘 하고, 아침 시간에는 어떻게 보낼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서서히 뼈대가 잡혀갈 것 같다.




아마도 이사 후유증은 바뀐 공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더 깊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매일 존재하던 공간의 냄새, 동선, 조도, 공기, 창 밖의 모습, 바람의 속도와 온도가 다 달라지니 몸도 마음도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았던 모양이다. 아직도 발은 조금 아프다. 하지만 이젠 아주 밝은 곳에서도 졸린 것을 보니 많이 편안해진 것 같다.

지금 여기가, 드디어 자연스러운 내가 좋다.


(이미지 출처: Pixabay@Vnuk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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