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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14. 2021

풍산 장날

온 가족이 함께 모여요

6.25 전쟁 때, 다리에 폭탄 파편이 박혀서 제대하신 할아버지는 능력 있는 남편은 아니었다.  자녀들은 할아버지가 경제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동원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다양한 시도들 중 성공한 것은 젓갈을 동이째 사 와서 파는 것이었다. 이걸 시작으로 몇 년 만에 자본을 마련하신 후,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 건어물 가게를 여셨다. 장터 근처에서 사셨기에 평소엔 가게에서 건어물을 파시고, 장날엔 장터에 천막을 치고 손님을 받으셨다.


어린 나와 엄마는 일을 도우러 매일 할아버지 댁에 출근했다. 평소에는 할아버지 댁에서 놀기도 하고, 동네에서 아이들과 뛰기도 하였다. 장날에는 사람이 많아 위험하니 할아버지의 가게 근처에서만 놀도록 하셨다. 여름이면 할머니께서 사주신 고무신을 신고 세 발 자전거를 타면서 천막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면 견이가 와서 나를 지켜주었다. 겨울이면 젓갈 파는 곳만 빼고 천막을 내려 방한을 했다. 안을 덥히려고 연탄난로를 놓는데, 진미채나 명엽채를 한 가닥씩 들고 연탄구멍 사이에 넣어서 구워 먹었다. 연탄불에 약간 그을어 탄내가 나면서도 따뜻하고 말랑거리던 식감이 지금도 기억난다. 너무 오래 구워 까맣게 되어 버린 적도 있고, 때로는 너무 빨리 꺼내서 딱딱한 걸 씹을 때도 있었다. 장날에는 장사가 잘 되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판매를 하시고, 할머니는 손님들과 인사하고 대화하셨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할머니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장터 근처의 작은 가게들도 장날에는 평소보다 크게 장사를 벌였다. 장터 입구에 있던 닭을 파는 가게가 기억난다. 가게 주변에 상을 깔고 생닭을 많이 늘어놓는데, 닭 비린내가 그 주변에 진동했다. 피 냄새와 고기 냄새가 무서웠다. 생닭을 씻느라 사용된 물이 장터 바닥으로 밀려내려 오면 아이들은 꺅꺅 소리지르며 그걸 피한다고 야단이었다. 미희 언니네 엄마는 뱀집 옆에서 채소가게를 하셨다. 장날에는 장터 안으로 옮겨 장사하셨는데, '무꾸 사소. 무꾸.'라고 하셨던 걸 듣고 아이들이 '무꾸 아줌마'라고 불렀다.


장날이 되어 아침부터 천막을 치고 건어물 가게의 물건을 내오는 건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에겐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아빠 출근 전, 막내 고모 등교 전에 미리 장날 준비를 했다.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하면 직장 갔던 아빠와 학교 갔던 고모가 돌아온다. 가끔 근처 사시는 삼촌들도 오셔서 물건들을 옮기고 천막 걷는 일을 돕는다. 모든 식구들이 건어물, 젓갈동이, 천막, 평상들을 군소리 없이 웃으며 씩씩하게 옮겨내는 건 어린 나에게 아주 멋져 보였다.


하루가 저물었다. 식구들은 할머니와 엄마가 준비한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어린 소녀는 엄마 품에 잠들었다. 어둑어둑 고요한 장터를 달이 홀로 비추인다.



(사진 제공: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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