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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21. 2021

세계 최고 높은 산은 몇 m?

세계 최고봉을 정복하는 방법

A: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은 뭐게?

B: 에베레스트?

A: 땡.

B: 그러면?

A: 바로바로, 자기 자신!


마음속에 밀푀유처럼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 폭발하는 감정과 넘치는 생각을 감당하지 못해 글로만 저장해둔 사연들. 발행하지 못하고 작가의 서랍에만 담아둔 글들.


이게 옳은가 그른가 생각만 하다 마무리가 안된다. 쓰고 싶었던 것이 생겨도 시작하지 못한다. 비슷한 주제의 글이 올라온 것을 볼 때엔 내가 늦었네 하며 후회한다. '이런 건 쓰면 안 돼!'라며 마음의 필터가 작동한다. 떠올랐던 소재들이 부끄럽고 초라해진다. 커피를 내린 후 필터째 버려지는 찌꺼기처럼 글감들이 버려진다.


글쓰기가 대체 뭔데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가. 서랍 속 글들은 퇴고를 기다리고 있지만, 쓰다만 글들을 꺼내는 건 초라한 나를 보는 것 같아 싫다.


며칠 전부터 마구 먹어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잠이 늘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학교 꿈에 시달렸다. 종합 결론은 이렇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근심할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러니 모를 수가 없다.


편하고 넓은 길을 가고 싶다.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해서. 그러나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하라는 소리가 자꾸만 들려온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은 즐겁고 가볍다. 그러나 세상을 위해, 타인을 위해 나를 내주는 길은 재미없고 무겁다. 가장 큰 방해 요소는 바로 '나'다. 갑자기 나타난 큰 산처럼 막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안락함을 포기하기 싫다. 내 연약함과 아픔을 꺼내 보여주는 일도 싫다. 이제껏 쌓아왔던 이미지, 번지르하게 꾸며둔 평판들을 벗어던지는 건 정말 괴롭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가 8848m라고 하는데, '나'라는 산은 5만 m는 족히 될 것 같다. 인간으로서는 정복할 수 없는 높이다. 그러나 이 산을 넘어가는 비결이 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온전히 포기할 때, 이 산은 내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를 사랑하심으로 자기 자신을 내놓으신 아버지가 계신다. 그분을 믿고 움켜쥔 손을 편다. 꾸미고 치장했던 것들을 지우고 맨얼굴로 선다. 초라하고 볼품없어도 거짓 없이 내 전부를 내보인다. 있는 그대로 용납받고, 나도 받아들인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가뿐히 넘어가는 방법이다.


며칠간 산을 만나 잠과 먹을 것으로 도피하는 나를 지켜보았다. 예전엔 아버지의 사랑을 믿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 사랑 안에 살기에, 쉽게 나의 만족과 유익을 포기하기로 결단할 수 있었다. 감사했다.


당신의 삶을 막아선 '당신'이라는 산은 몇 m인가? 당신은 그 산을 어떻게 넘어가고 있는가?


(표지는 Pixabay로부터 입수된 Free-Photos님의 이미지입니다. )


<아래 부분은 작가의 퇴고 공부를 위해 남겨둔 부분입니다.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나 자신이 가장 넘기 힘든 산이구나. 마음 속에 밀푀유처럼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있다. 폭발할 것 같은 감정과 넘치는 생각을 주체하지 못해 한 글자 한 글자, 글로 적어 일단 저장해둔 사연들이 있다. 브런치에 접속하고서 그렇게 많은 글을 쓰면서도 감히 발행하지 못하고 서랍에만 넣어둔 이유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 저것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만 하다보면 쓰던 글도 마무리가 안되고, 쓰고 싶었던 것이 있어도 감히 쓰지를 못한다. 나중에 비슷한 주제로 글이 올라온 것을 볼 때엔 내가 늦었네 하며 후회하지만, 그 많은 글감들이 글이 되지 못하는 건 이런 걸 써도 되나 하는 자기 나름의 거름망에 내가 쓰고 싶어하는 소재들이 걸러져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쓰려고 하는 글, 내가 써야하는 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해야하는 일 이런 저런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쓰려고 했던 것들, 쓰고 싶던 것들이 부끄럽고 초라해진다. 글쓰기가 대체 뭔데 이렇게 힘들어야하는 걸까.


발행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내가 쓰고 싶어하는 글들을 제한시킨다. 작가의 서랍에 가득한 글들은 발행버튼 기다리고 있지만 쓰다만 글들을 바라보는 일은, 초라한 나를 직면하는 것 같아 싫다.


1월 초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기에,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고 물을 많이 먹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마구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 일어나다말고 갑자기 잠이 늘었다. 1년 넘게 집에서 주부로 살다보니 이런 나의 패턴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 만에 학교 꿈을 꾸었다. 종합결론은 이렇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아주 고민할 거리가 있을 때, 학교 꿈을 꾸고 잠으로 도피하고 마구 먹기 때문이다.


편하고 넓은 길을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자꾸만 찾으라는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은 쉽고 즐겁고 가볍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위해, 타인을 이위해 썩어지고 낮아지는 길은 어렵고 쓰리고 무겁다. 그 길을 가는 데 가장 큰 방해 요소는 바로 나다. 갑자기 나타난 큰 산처럼 나를 막아서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계신다. 죄 많은 나를 용서하시고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아버지. 그 분이 너무 좋아서 아버지처럼 살아가려고 결심했다. 내가 만든 '나'라는 우상을 깨부시고, 남을 위해 나를 내어주기로 작정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그 사랑이 나를 살아나게 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죽어주고, 그들을 살리고 싶어서다. 그게 나를 정말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Noel Bauza님의 이미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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