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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16. 2023

자랑할 수 있는 것

 4: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같이 자랑하느냐



학창 시절 배웠던 '차마설'이란 작품이 생각난다. 말을 빌려 타면서 얻게 된 교훈을 수필 형식으로 적은 것이었다. 다른 이의 좋은 말을 빌려 타면서 기분이 한껏 좋아져 마치 세상에 군림하는 듯 우쭐대던 작가는 그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에 대해 깨달았던 것이다.


3년 전,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힘든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불행을 끝낼 수 있을까? 공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건 포기하기 싫고 당장은 쉬고 싶었기에 '임신'이라도 하길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다른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예전의 나는 자녀를 부모의 일부 또는 부모가 부릴 수 있는 어떤 존재로 여겼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으며 자녀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해 왔음을 반대로 알게 된 것이다. 그러자 희한하게도 '나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이 싹 없어져버렸다. 아기가 생겨 태어나고 자라는 건 축복할 일이고 매우 귀하다는 것에 200% 동감이다. 하지만 오로지 들어가는 것은 수고일뿐 내 것으로 남는 것이 없다고 하니 뭔가 김 빠진다고 할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대부분 알지 못하며, 맨손으로 와서 맨손이 되어 떠난다. 살아있는 동안에 '가졌다' 여겼던 모든 것은 타인에게서 얻었다가 죽음 앞에 내려놓으면 또다시 타인이 그걸 가져간다.


만약 아이가 생긴다고 할 때, 혹시라도 부모가 가질 수 있는 게 있을까? 가진 모든 것을 자녀들에게 내어주고 빈손으로 떠나면, 아이들도 그것을 사용하다 다 내려놓고 돌아간다. '소유'에 집중하면 삶은 허무하다.


하지만 '존재'에 주목해보면 어떨까? 아이가 생기고 태어날 때까지의 모든 시간과 경험, 분만하고 처음으로 만날 그 순간, 예쁜 옷을 입히고 젖을 먹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많은 시간들, 새벽에 함께 깨어 눈 마주칠 기회들, 기고 앉고 걷고 뛰는 첫 경험을 축하해 줄 일들, 함께 손잡고 고운 신을 신고 외출할 상상들.


자녀들에게 좋은 환경을 선물하기 위해 애쓰고 힘내고 노력하는 일은 참 귀하다.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일 테니. 하지만 부모도, 자식들도 결국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면 오히려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순간들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회하는 한 가지는 자신의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을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더 많이 벌어서 더 주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같이 했던 순간이 적어 아쉽다는 말.


짧은 생을 살며 '가진 것을 자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손에 쥔 것들 중 정말로 타인과 상관없이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으며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사실 앞에 진정 자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누림에 그저 감사하는 것 외에 달리 자랑할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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