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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20. 2023

헛똑똑이

고전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똑똑하다. 상식이 풍부하다. 모르는 게 없다.' 이런 말 듣는 것을 참 좋아했다. 책을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을 즐기며 머리가 꽤 괜찮은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실제로도 '지식'을 습득하고 사용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두뇌를 잘 활용하고 있는 축에 속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공부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하듯 일에 몰입한다고 칭찬을 해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업무 능력은 별 볼일 없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노는 게 더 쉬운 사람이기에, 나와 여러 모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환경에 던져져 매우 힘들었다.


일에 적응하고, 학생 때와 다른 환경에 흡수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알맹이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수업준비 하고 싶은데 동학년 교사들이 콜하면 억지로 다과시간에 참여해야 해서 피해를 본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학교 일보다 그게 더 하고 싶어 시간이 없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혼자 일하는 시간'을 학교일보다 늘 우선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지금보면 직장인으로 살아갈 마인드 세팅이 전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때엔 내가 맞다는 신념이 강했던 것 같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학습자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하기 위해 집중했던 시간은 충분히 좋았다. 학생이나 학부모들도 무척 만족했었다. 하지만 공립학교 교사에게는 그런 것을 즐기기 위한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학교 업무나 학년 일을 함께 해야 하는데 그 양이 만만치가 않다. 내가 틀릴 수 있고, 잘 모를 수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보람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우울증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돌아보니 삶의 방식이 나를 괴롭히는 스타일임을 알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어떻게 했으면 더 좋았을까 고민했고 결론적으로 '내가 헛똑똑이였구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한 법칙이 사실 몇 가진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 직장인의 공부는 학창 시절과 달라질 필요가 있다.

2. 직장 생활의 키는 '인간관계'에 있다.

3. 일터에서는 '나'보다 '직장인'인 것이 바람직하다.

4. 업무 우선순위를 관리자와 맞추는 것이 일하기에 편하다.


대학 졸업 후, 학교라는 대규모 조직에 들어가는 일은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라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은 게 당연했건만 '직장 생활'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공부만 잘하면 칭찬받던 학생 시절처럼 살면 되겠거니 짐작하며 쉽게 적응하려던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늘 학교가 원하는 '나오미 선생님'과 내가 되고 싶은 '나오미'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살았던 것이다.


'잘 모른다'라는 마음가짐은 겸손한 자세를 취하게 도와주고 어떤 돌발 상황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준다. 지금 학교에 돌아간다면 '나오미 선생님'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예전보다 덜 힘들겠지만 여전히 '나오미'로만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조절하느라 꽤 애를 먹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틀릴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 배우면서 하면 된다.'라는 마음가짐이 생겼으니 하나하나 해보면서 알아가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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