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주말에 동생과 함께 친정에 다녀왔다. 근처에 계신 이모도 오셨기에 함께 식사하러 갔다. 즐겁게 이야기하며 점심을 먹었다. 이모네 며느리, 그러니까 사촌 올케가 임신을 했기에 입덧에 관한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러면서 손자, 손녀를 봐주는 것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나누게 되었다.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맞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모가 말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생과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다'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이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가 너희들 키우느라 몰골이 어땠는지 아니? 결혼 전에는 예쁘고 날씬했던 언니가 너희들 키우느라 많이 고생해서 그렇게 된 거란다. 그렇게 아이들 키우는 게 어렵고 힘든 거야."
아기일 때 봤던 엄마는 '내 엄마의 디폴트 값'이었다. 엄마는 피부가 곱지만 화장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리 날씬하지 않았고, 예쁜 옷을 자주 사 입지 않았다. 그게엄마였다.
나는 보지 못했던 '예뻤던 엄마'.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아빠를 따라 시골로 들어가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자녀들을 기르느라 자신보다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던 엄마.
최근까지 내 맘이 아파서 엄마를 잘 돌보지 못한 것 같은데 요새 엄마가 많이 편찮으셔서 심란하다. 우리가 다녀 간 날 밤, 열이 자꾸 오르고 몸에는 붉은 반점 같은 것들이 있어 일요일인데 응급실에 혼자 다녀오셨다고 한다. 얼마 전 다녀 가셨다는 외삼촌 때문에 코로나에 걸리셔서 심신이 너무 많이 약해지신 것 같다.
한의원 가면 기가 약하다, 목욕탕 가니 피부가 약하다, 내과에 가도 기관지가 약하다. 약하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서일까 요새 엄마는 마음까지도 너무 연약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생전 처음 스스로 약해진 자신을 받아들인 엄마가 너무 안쓰럽다.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걸 무엇일까?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다가 갈 뿐인 것을. 나 역시 타인의 모든 만족을 채울 수는 없는 존재인데 부모님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닐까?
아빠가 돌아가시고도
내가 우울증에 걸리고도
당신이 신장암으로 콩팥을 하나 제거했을 때에도
엄마는 참 건강한 척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큰 일들을 겪으며 많이 힘들었을 거다.
그게 지금 엄마를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이제 두 딸도 결혼해서 잘 사는 것 같으니 힘을 더 쓰며 삶을 견뎌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그동안 고생만 하고 살았던 엄마도 남은 삶을 즐겁고 건강하게 살다 가셨으면 좋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글을 쓰면서 울고 읽다가 울고 한참을 울었다. 요즘엔 청개구리 심정이 왜 이리도 이해가 되는지 눈물이 강처럼 흘러내린다. 너무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해서 울고, 해드릴 게 없어서 어쩌지 하며 흐느낀다.
어제는 혼자 엄마집에 다녀왔다. 집에 있던 썰어 얼린 무, 마켓컬리에 주문한 불고기와 거기에 넣을 양파를 주섬주섬 챙겼다. 집에서 약 1시간 거리지만 자주 가보진 못했다. 엄마집에 도착해서 소고깃국을 끓여드리고 정월대보름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아파서 누워있던 엄마는 사람을 만나면 힘을 얻는지 내가 도착하자 목소리에 힘이 생기고 시간이 갈수록 활력이 넘쳤다.
엄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불효자는 운다던 어른들의 말씀을 들을 때 나는 절대 아닐 거라고 확신했었는데 이제는 세상에 효자가 있을까 싶다.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자주 가보고 맛난 것 함께 먹는 것 외에 별 수가 없다.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쪼금이라도 철이 들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