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딱히 취미를 대기 어려워 '영화 감상'이라고 하면 항상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난 이제 취미를 발레라고 한다. 그다음은 전혀 발레 할 것처럼 보이지 않은 몸을 위아래로 보는 시선과 함께 '발레요?'라는 질문을 다시 받는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코로나로 영화관을 못 가다 보니 요즘엔 주로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 처음 무료로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다 유료로 전환했고, 가족도 함께 보려고 업그레이드까지 했다. 찾아보니 넷플릭스 한국 유료 구독자 수는 3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올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신규 유료 구독자 수가 220만 명이 늘 정도다. (참고 기사: https://www.ajunews.com/view/20201021081724502). 영화관에서 보는 관객수는 줄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주인공은 왜 저런 건지, 설정은 왜 저랬는지, 꼭 저런 결말이 나야 했는지, 메시지는 무엇인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2019)를 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냄새와 선, 그리고 물 등이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영화는 재미와 의미 모두 다 있다.
영화 마니아들은 영화에 대해 나누고 싶어 영화 유튜버들과 함께 한다. 브런치가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작가를 모집하는 이유도 영화 마니아들이 글로 소통할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유투버와 소통하거나 영화 유투버의 채널을 찾아볼 만큼 열성적인 편은 아니었다. 남편이 '홍 시네마' 채널을 추천해줘서 가끔 보곤 했다. 김시선 채널은 <<오늘의 시선>>(김시선, 자음과 모음, 2020)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김시선은 1세대 영화 유튜버로 2014년 9월 영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해 지금은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다. 채널을 보면서 책을 읽으니 짧은 영상에서 압축해서 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서 듣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유튜브 채널의 이야기보다 그의 글이 더 감동적이고 재미있다.
영화 마니아인 그에게 사람들은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는지?'를 가장 많이 묻는다. 그는 우문현답을 한다. '우연히 좋아했고, 우연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p.12)고, '언제부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 지금 좋아하는 게 있다면, 자신을 받고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고 나면, 두려울 게 없어진다.'라고 대답한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명확히 아는 그가 부럽다. 그의 말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를 떠오르게 한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을 통해 영화를 본다. 그의 시선은 늘 반대쪽을 향해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작 <인셉션 Inception>(2010)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토템'이라 불리는 팽이가 돈다. 멈추면 현실이고 계속 돌면 꿈인데, 감독의 최종 선택은 어느 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중략) 그렇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라는 말은 영화에도 적용된다."(p.29)
"<#살아있다>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특별해진다'라고 말했다. (중략) 생사의 기로에 선 유빈은 화초에 물을 주고, 좀비들 틈으로 뛰어간다. (중략) 상훈이 형은 우리가 좀비가 아니라 인간일 수 있는 건 생존 앞에서도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 그런 행동들 때문이라고 말했다."(p.102)
좋은 영화를 알아봐 주고 싶은 그 마음으로 김시선은 영화를 본다.
"영화는 영감을 심어둔 바이러스다. 관객이 없다면 영화는 그저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에 불과할 것이다. (중략) 영화에게는 좋은 영화를 알아봐 주는 관객이 필요하다." (p.99)
사랑만 하면 다 좋을 것 같지만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는 같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힘을 얻는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분명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성과도 없을 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자책하기도 하고, 어쩌면 여기서 그만하는 게 나와 가족에게 더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내가 믿고 가는 길에 대한 의심이 솟는 그 순간이 가장 힘들다. 그럴 때, 상훈이 형이 보낸 메시지를 읽으면 신기하게도 다시 영화가 좋아진다."(p.105)
영화 속 시선과 세상 속 시선이 무수히 교차하여 짜인 또 다른 세계에 그는 살고 있다. 그의 용감한 사랑이 부럽다.
연말이 다가온다. 올해 마지막 날 김시선이 12월 31일에 보라고 추천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및 주연의 <라스트 미션(The Mule)>(2018)을 보고 싶다. 꽃을 키우던 할아버지가 마약 밀거래상이 된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고 김시선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나도 꿈을 키우느라 바쁜 상태다. 꿈은 지금 당장 관리하지 않으면 시들어버린지만, 가족은 영원하다는 생각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근데 요즘 들어 내가 뭔가 잊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혹시 나도 얼처럼 죽은 상태가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p.213)
영화 주인공인 얼이 우리에게 던지는 말, "중요한 건 그거예요. 기억해요."처럼 중요한 그것을 찾고 깨닫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제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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