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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Jun 23. 2019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는 인생과 같은 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죽음




베르나르의 책을 한동안 즐겨 읽었다. 나에게 그의 소설은 잘 읽히면서도 동시에 어둡지도 밝지도 않다. 아주 재미있지도 않지만 재미있다. 그럼에도 한동안 읽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의 소설 패턴과 자만심 가득 찬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가 좀 짜증나서였던 것 같다.


이번에 베르나르의 신작을 예약 판매한다는 알람을 받았을 땐 좀 달랐다. 제목에서 끌렸다. 아마 어린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아마 작년에 오래 키우던 개가 저세상으로 가지 않았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내 품에서 14년 넘게 키워온 개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울면서 안고 있던 기억은 죽음이란 단어를 내 바로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긴 세월의 함께하는 일상이 죽음이라는 단어 후에는 기억이 되어버렸다. 죽음이 지나간 옆엔 천진한 어린 딸이 무럭무럭 이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생명의 찬란함에 명암이 짙은 죽음이란 단어가 더 명료하게 눈에 들어온 것 같다.


책의 주제이자 제목은 죽음이다.


베르나르는 사후 세계에 큰 관심이 있다고 한다.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베르나르는 삶과 죽음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면 삶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현대 문명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죽음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미신과 관련된 주제로 인식되는데, 우리 삶의 마지막 챕터라는 의미로 차분하게 내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나라를 개척한다는 심정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갔다"라고 했다. (참고 기사: https://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051540001)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질문을 할 새도 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도대체 왜 바쁜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밴 베일런의 '새로운 진화 법칙'에 따라 진화 속도에 맞추기 위해 바쁜 것일까? 그래서 우린 책도 읽을 시간이 없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니 생각하고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그래서 악순환에 빠진다.


"그 많은 페이지를 계속 넘기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인내심이 정말 대단해. (중략) 자네는 책을 읽긴 읽어?"

"피곤해서 못 읽어. 퇴근하면 TV 앞에서도 잠들어 버리는걸. 책은 오죽하겠어....."

"TV는 뭘 보는데?"

"<ER>, <그레이 아나토미>, <하우스> 같은 의학 드라마를 즐겨봐. 자네는?"

"난 <CSI> 같은 수사물을 좋아해."

"그런 드라마들이야 우리가 매일 겪는 일을 거의 비슷하게 보여 주잖아. 사람 죽는 얘기니까. 평범하지 않은 죽음을 다룬다는 면에서 드라마가 현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지."

1권 p. 44


소설은 현실과 사후 세계, 삶과 죽음, 남자와 여자, 산자와 죽은 자, 대중 문학과 순수 문학이 서로 충돌한다. 질문을 통해 고요하던 세계가 흔들리고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고 대립한다. 그 과정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간다. 베르나르는 책을 통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우리도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게 유도한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이 책은 "누가 날 죽였지"라는 인시피트로 시작하고, "나는 왜 태어났지"라는 엑스플리시트로 끝난다. 단 순서가 삶에서 죽음의 순이 아닌 죽음에서 삶 순이다.

그에게 소설은 문인들의 직업어로 <인시피트>라 불리는 첫 문장과, 이것이 닦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지막 문장인 <엑스플리시트>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권 p.17


죽으면 끝일까?


큰 테마인 죽음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죽음은 끝이다. 언제나 우리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후회를 하고 더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마지막 순간엔 혼돈스러웠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우선순위가 명료해진다.


<젊어서 지혜가 있다면, 늙어서 힘이 있다면>이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 순간에 얻은 깨달음을 가지고 죽은 자들이 조금 더 살 수 있다면...>

1권 p.58


이 육신이 전부인 줄 알았으니.......

산 자들에게 소리쳐 경고해 주고 싶다. <당신들은 정신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정신이다>

(중략)

<지금 내가 <<단지>> 가브리엘 웰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1권 p.265


정말 죽음이 끝일까? 베르나르는 질문을 던진다. 사후 세계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진위는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모른다고 없다고 단정하는 것, 자신의 논리만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존재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니까.


소설에는 죽음이라는 Gate를 통과한 이후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현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육체를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에 대한 미련으로 현실의 삶을 방해하고, 현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현실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몸을 가져가기 위해 집착한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고 떠돌기도 한다. 작가는 죽음이 끝이 아니며 현실의 생각이 사후까지, 나아가서 환생할 자신의 또 다른 삶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어 한다.


"당신은 내게 고통을 가할 수 없어요. 난 순수한 영혼이거든요"

"정말 그럴까? 별 볼 일 없는 작가 선생? 잘 생각해보게 어렸을 때 제일 아파하고 두려웠던 게 몸의 상처였는지 마음의 상처였는지"

2권 p.82


"우리는 산 자들의 법정들에서 저지르는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죽은 자들의 법정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중략)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면 그건 대단한 오만이에요. 인간은 자신의 어두운 면과 맞부닥뜨려 봐야 비로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질러 봐야 고칠 수 있는 거예요. 단시간에 변혁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작은 변화화 성과를 소중히 여겨요. 진화는 덜컹거리고 요동치면서 서서히 이루어지는 거니까."

2권 p.198


작가는 어떻게 책을 쓰는가?


책 쓰는 과정과 작가로서의 고민들도 언급된다. '죽음' 소설과, 소설 속의 소설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인 가브리엘은 소설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한다. 가브리엘의 모습과 베르나르의 모습이 교차한다. 베르나르가 죽은건가? 우리는 살아있는건가? 삶과 죽음,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책 중간중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인용된다. 전체 내용이 궁금해져서 베르나르의 '상상력 사전'을 구매했다.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베르나르의 글감 창고인 '상상력 사전'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내용의 확장판이자 결정판이라고 한다. 작가는 글감을 모으느라 늘 메모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차곡차곡 모아둔다고 한다. 베르나르는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글감을 모두 공개한다. 그리고 이 사전을 기반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베르나르의 방식은 매우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다. 회사에서 조직이 처음 셋업 되면 용어집부터 정리한다. 서로의 경험과 지식, 업무 도메인에 따라 같은 용어도 다른 정의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는 자신만의 사전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둔다.


책을 쓰고 난 이후의 고민 등 다양한 고민들이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독자로 인해 힘을 얻는다. 영매로 나오는 뤼시의 한마디가 이를 대변한다.


"말했잖아요. 당신 책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

"'죽은 자들' 말이에요? 상업적으로는 내 책 중에 최대 실패작이었어요! 남은 책들은 전량 파쇄됬어요."

"하지만 그 책은 날 만난걸요."

p.50


순수문학만 진짜 문학인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대립도 소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이다. 베르나르는 순수니 아니니 논란을 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장 자체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일침 한다.


"나는 고전만이 유일한 가치를 지닌 수준 있는 문학이라고 믿고 그것만을 옹호할 뿐이에요. 이것들은 상상의 소산이지 <진짜> 문학이 아니에요. 좋은 소설이라면 응당 지금 여기를 현실과 현재를 말해야죠. 작가의 앎과 경험에서 나와야 좋은 소설이지, 환성의 결과물은 좋은 소설이 될 수 없어요"

(순수문학 옹호자 장의 의견)

(중략)


"제가 인정하는 비평가는 단 하나뿐이에요. 바로 시간이죠"

"내 책의 유통 방식은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작가들의 목표는 전체 독자 수를 최대한 늘리는 것. 이것 한 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가브리엘의 의견)

2권 p. 38-40


나도 가브리엘의 의견에 동의한다. 어떤 것이든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에 비해 하대를 받는다. 변하지 않는 고전도 필요하지만 시대에 맞는 시대를 반영한 문학이 우리는 필요하다. 그리고 많이 소비되어야 한다.


AI 시대에 작가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작가의 위치에 대한 고민도 나온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기사를 쓰고 이들이 쓴 음악이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시대이다. 점점 예술 또는 창작 영역이나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주장조차 무색해지고 있다. 베르나르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인공지능의 글에 대해 아직까진 보수적인 입장을 내비친다. 인공지능보다는 차라리 죽은 작가의 영혼을 빌려서 책을 쓰는 편이 더 창의적이라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GWV 소프트웨어가 완성한 원고를 읽어 봤는데, 솔직히 형편없었어요.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뭐랄까 웰즈 소설만이 지닌 매력의 비밀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았어요

2권 p. 304


작가는 이외의 여러 질문을 계속 던진다. 수많은 질문을 고리타분하지 않게 사후 세계라는 낯선 장소에서 죽은 자의 입을 통해 던지기 때문에 오히려 읽는 독자는 더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이 책을 집필 중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그의 질문이 더 큰 울림이 있다.



재미와 의미 모두 다 담으려고 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충실히 읽다 보면 수동적으로 시키는대로만 살고, 질문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사는 우리의 머릿속에 작은 혼동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혼동을 지내고 나면 어느 순간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작은 마지막들을 대할 때 이전과는 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환생을 다룰 그의 다음 작품 <판도라의 상자>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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