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해 Sep 30. 2019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는...

죽음의 에티켓

매일의 먹고사니즘은 삶에 매몰되게 만든다. 한동안 일이 너무 바빴고, 스스로의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더 나은 실력을 갖추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노력하고 있었으나 체력이 달려 힘들어하고 있었다. 동시에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출산 후 생긴 불안증은 점점 더 커졌다. 걱정의 파도가 오면 갑자기 심장이 빨라지고, 불안이 극도로 치달았다. 거대한 파도처럼 순식간에 찾아오는 불안의 생각을 빨리 잠재우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문득, 왜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가을 낮시간의

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늘을 보았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전형적인 말인데도 와 닿았다. 원래 진리는 식상한 말들 아닌가...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 지금을 누리고 싶었다. 두려움을 마주하면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죽음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다. 예전에 읽은 글에 따르면 타인의 죽음을 너무나 슬퍼하는 것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바로 다음에 죽는다면 잠깐 나보다 먼저 간 이의 죽음이 이렇게 슬프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일 내가 몇 달내로 죽는다면 그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죽음 이후까지 과정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 과정을 안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그 과정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의 과정 속에서 <<죽음의 에티켓>>(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스노우폭스북스) 책을 만났다. 저자인 롤란트 슐츠는 죽음에 대한 자료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나와 동갑 이어서일까? 그의 설명은 편안하게 와 닿는다. <<죽음의 에티켓>>은 죽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 이후까지의 전 과정을 따뜻한 어조로 차근히 설명해주는 책이다. 하지만 서평을 쓰기가 힘들었다. 결심과 다르게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지 않은 본능이 꿈틀거렸다. 겨우 기억해두어야 할 것 같은 문구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느낌만 정리했다.

 



죽음은 무엇인가 추상적인 것이 돼 버렸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죽음을 마치 미지의 우주처럼 대합니다. 죽음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내가 겪을 일은 절대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당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에 그토록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p.28


그랬다. 내 불안증은 내가 죽을 것이란 생각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삶 속에서 불청객처럼 죽음이 찾아온다. 다행히, 아직 내 죽음은 아니다. 나의 죽음은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사실 죽음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죽음일 뿐, 단 한 번도 당신의 죽음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확실한 죽음을 보지 않고 회피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p.12


내가 살 날이 몇 달 안 남았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이라고 가정해보면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몸은 어떤 변화를 겪을까? 죽음의 과정은 어떻까? 죽고 난 이후 살아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준비는 무엇일까? 수많은 질문이 생긴다.


그래요.
하지만 이것만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죽음 직전의 시간과 죽음 뒤의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요. p.37
어떤 길을 택하든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은 완전히 해결이 안 됩니다. 죽어간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으니까요. 죽어 간다는 것은 배울 수가 없거든요. p.45

임종을 생각하면 대부분 침대에 가족이 모두 모여 손을 잡고, 한 명씩 얼굴을 보며, 인사하고 조용히 눈을 감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런 전형적인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미디어의 영향도 있겠지만, 아마 우리 스스로가 통제 가능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슬프게도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죽음은 인간을 벌거벗깁니다.
내가 누구인지 다 드러날 때까지 말입니다. p.51


죽음이 가까워지면 자신의 몸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운행되던 신체 시스템들의 기능이 하나씩 꺼져간다. 사회적 역할은 종료된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롭다. 혼자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서둘러 급히 해야 할 일은,
무조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p97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출산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출산 과정 동안 나는 내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출산 과정 동안 개인의 프라이버시란 없었다. 출산을 겪기 전에 두려웠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전에 수많은 책과 영상을 보면서, 수많은 여자들이 겪은 일이라고 위안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의연히 그 과정을 여러 번 겪어내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없다고 생각되는) 상황과 육체의 고통은 두려움을 가져왔다.


물론 출산과 죽음은 다르다. 출산의 결과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다. 힘들어도 그 결과를, 그 기적을 매일 보고 누리는 기쁨이 크다. 반면 죽음의 결과는 알 수 없다. 살아있는 우리가 보는 것은 죽음의 과정이 끝난 낡고 허물어진 육체라는 껍데기뿐이다. 아름답지 않다.


사실 죽어간다는 것은 지식과 컨트롤의 반대이며, 죽음에서 지식은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p.250


하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이번 생이라는 여행을 마치고 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다음 여행지에 대한 가이드를 받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설명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Part 1.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 죽어가고 있습니다.
Part 2. 마침내 죽음이 왔습니다.
Part 3. 살아남은 사람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Part 4. 모두를 위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음의 에티켓 목차


여전히 죽음은 낯설고 두렵다. 나에게 내 가족에겐 가능한 (내가 준비될 때까진) 오지 않길 바란다. 죽음에 대해 더 깊은 철학적 고민을 하기엔 삶이 바쁘다. 그래도 하루에 한두 번이라도 아이의 얼굴을 한번 더 보고,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고, 친구들에게 전화 한 통 할 시간을 잠시나마 갖는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죽으면 할 수 없는 사소한 일들을 하는 여유를.. 죽음은 지금의 생을 더 빛나게 하는 그림자가 아닐까?


바깥세상은 눈부십니다.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꺼졌다 켜지고 17분마다 오는 버스도 정확히 도착합니다. 죽은 사람과 아무 상관도 없는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됩니다. (p.135)


지금, 내가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오늘의 찬란한 아침이 감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