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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Oct 15. 2019

질문 있으세요?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질문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난 질문을 잘하는 편이다. 궁금한 게 많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와는 다르게 항상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사례 1: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처음 뵌 어떤 분의 아내분에게 나도 어색하고 그분도 어색할까 질문을 했다. 아내분이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을 다니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정보를 시작으로 질문을 했다. "어떻게 그런 전공을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이 질문 외에도 전공 관련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놓은 것 같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면접 보는 것 같군요." 이런저런 질문을 한꺼번에 한 탓도 있겠지만 어색해서 무슨 말이라도 하려던 것이었는데, 서투른 나의 시도가 상대를 언짢게 했나 보다. 어색함을 없애려던 나는 더 어색해졌다.


사례 2:


일을 하다 문제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참고하기 위해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으신 분을 (나보다 높으신 분) 찾아뵙고,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신지, 유사 사례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 여쭤보았다. 그냥 그분은 항상 상식적인 모범 답안을 말씀하셨다. 모법 답안이 인사이트를 줄 때도 있었지만 큰 소득 없이 그냥 조언 구하러 간 것을 후회하고 나올 때도 있었다.   


사례 3:


작년에 사내 교육 신청을 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신청한 것이었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교육을 며칠 앞두고 급하게 취소해야 했다. 교육 시작 임박해서 취소할 경우 페널티를 10만 원 이상 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사내 교육은 무료인데, 회사일을 한다고 페널티를 사비로 내야 한다니 좀 억울하긴 했다. 페널티를 물지 않으려면 본인 사망 같은 진짜 아주 큰 일이어야 했다. 나는 담당자에게 바쁘신데 정말 죄송하다고 하면서 페널티를 내지 않는 방법이 정말 없는지 물었다. 없다고 했다. 1명이 공석이 발생해서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면 대타를 구하면 안 낼 수도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대타까지 구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협력업체 직원이라 어떤 융통성을 발휘할 짬이 되지 않았는지, 대타로 내 자리를 메꾸었지만 돈은 내야 한다고 아주 공손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안되더라도 물어는 봤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사례 4:


프로젝트에 이슈가 생겨서 회의가 소집되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상황, 원인 등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미리 언급하고 질문을 해도 질문을 받은 사람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문책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러 번 반복하면서 조심스럽고 겸손한 자세로 아주 오랜 시간 질문을 해야 했다.


사례 5:


회사에 나보다 윗분인 분과 회의를 했다. 이야기는 길고 장황했으며 핵심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름 눈치가 빠르고 핵심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라 자부했는데, 2시간 넘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아주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가 파악한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뜻이란 말씀이신가요?"라고 질문을 했다. 아니 사실 중간중간 질문을 했다. 쉼표가 없는 문장들이 계속되어서 중간 질문하지 않으면 맥락을 잃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질문을 하면 할수록 그분은 언짢아하셨다. 그분이 바란 것은 질문하지 않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는 것 같았다. "ooo의 생각은 어때?"라고 질문을 하시길래 거침없이 의견을 말했다. 그런 논평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이 관계는 원하는 답을 하지 않아서, 원하지 않은 질문을 해서 관계가 불편해졌다. 그다음부터는 그냥 듣고, 질문하지 않고, 원하는 대답만 하고 대화를 끝냈다.


사례 6:


남편은 질문이 많다. 조금만 맥락을 생각하면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했다. 안 그래도 피곤했고, 말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기 싫은 나는 답을 찾으려는 생각이나 노력 없이 그냥 질문을 쏟아내는 남편에게 좀 화가 났다. 그래서 질문에 답하지 않은 적이 있다. 대답을 안 하면 남편은 그제야 인과 관계와 정황 등을 생각해보고 스스로 답을 찾았다. 생각하면 나를 귀찮게 하는 질문을 안 해도 될 텐데라는 생각에 화가 날 때가 있었다.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살면서 질문을 통해 속 시원한 답을 들었다던가, 대화가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라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혹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호 작가는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의 커리어의 방향을 찾고 삶의 행복을 찾으며 살고 있다. 게다가 질문으로 돈까지 버신다니 질문 능력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쳤다.   


논리적인 사람은 항상 논리로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논리를 발휘해야 할 때와 감정을 발휘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해야 할 때와 들어야 할 때를 잘 구분하기 마련입니다. p.34


잘 묻는다는 것은 잘 듣는다는 것이다.

요청하지 않은 조언을 자주 하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릅니다... 다만 상대방이 말한 것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요약해서 정리하는 것은 매우 권장할 만한 경청 태도입니다. p.44


그런데 내 경우 항상 이 방법이 통하지는 않았다. 요약해서 정리하는 질문을 하면 말이 많은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제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상대가 속시원히 말할만한 시간을 주지 않은 것이 문제일까? 반성한 적도 있다. 변명하자면 워킹맘이며, 체력이 바닥이고, 말하는 것과 듣는 것에 쓸 에너지가 적고, 점심시간마저 혼자서 밥 먹으면서 쉬고 싶을 만큼 피곤한 내게 긴 말을 경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질문의 사전 조건은 경청이다. 경청하지 않으면 상대가 나에게 말하는 동안 속 시원하다던가, 통한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존중이다. 존중받았다고 느끼면 상대는 내 질문에 답하고 싶을 만큼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남편과의 일상 대화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남편의 긴 이야기, 스토리의 주인공들의 배경사까지 다 언급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참지 못하고 질문한다. "그래서 누가 어쨌는데, 어떻게 됐는데?" 결론부터 묻는다. 안 그래도 할 일도 많고 피곤한데, 그냥 빨리 결론만 말해주길 바래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질문으로 말을 끊으면 남편은 항상 김 빠진 표정을 지었다. 내게 경청의 걸림돌은 항상 시간이다.

피드백은 자동차의 거울에, 피드 포워드는 자동차에 앞 유리창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피드백은 과거의 내 행동이나 말에 대한 것입니다. 피드 포워드는 향후 나의 개선 방향에 대한 제안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왜 피드 포워드가 피드백보다 더 효과가 있을까요? 과거에 이미 한 행동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것은 다소 정치적 부담이 있습니다. 피드 포워드는 미래에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덜하지요. p.63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질문이 상대를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래 질문을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하라고 한다.

저는 이 조직에서 더 나은 ooo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떤 부분을 좀 더 신경 쓰면 좋을까요?
나는 자기에게 더 좋은 짝이 되고 싶은데... 내가 자기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p.67


내가 질문에 대해 성공 경험이 없어서 일까?? 위 질문은 원하는 답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그냥 상식적인 선에서 대답이 오거나, 이렇게까지 물어보는데 솔직하게 답하기 어려워서 그냥 지금 괜찮다는 답을 들을 게 뻔하다. 그래도 질문하면서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서 이미지는 좋아질 수 있겠다. 그렇다면 원하는 답을 얻은 것일까?


책에 나온 질문들, 한걸음 더 들어가는 진정성의 대화라던가, GROW 질문은 코칭을 받을 때 받아본 적이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 본 사람이어야 제대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코치가 초반에 이런저런 질문을 했을 때 그 질문을 통해서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스트레스가 되었다. 마치 어렸을 때 엄마가 답을 정해놓고 질문하는 것을 받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하는 답을 해주고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여러 번 세션을 진행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저자가 말한 질문의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때가 많았다. 생각해보니 질문을 할 때보다 받을 때 더 좋았던 것 같다.


이상하게 이 책의 서평은 쓰기 싫었다. 위에 쓴 사례처럼 제대로 질문하지 못해서 겪었던 당황스러운 기억들 때문이었다. 가짜 대화 뒤로 숨어 상황을 모면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제대로 질문해보라고 권유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책에 나온 것을 적용해본다. 질문에 대해 스스로에게 피드백이 아닌 피드 포워드를 해본다. 질문이 내게 좋은 경험을 주었던 사레가 있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스스로 질문한다. 리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경청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아래는 저자가 제시하는 질문의 기술 중 일부다. 저자가 말한 대로 질문을 통해 새로운 길이 활짝 열렸으면 한다.


 혹시 예외가 가능한지 물어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사람은 질문 여부에 따라 상대를 강력하게 기억한다.
뭐가 문제인지 보다 뭐가 가능한지를 긍정적으로 논의하라.
애매하게 말하는 상대에겐 한 걸음 더 들어가 질문해야 한다.
익숙해 보여도 지례 짐작하는 건 위험하다.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조언을 구해야 한다.
말해봐야 소용없어의 무기력을 깨는 도구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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