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스먼트 게임
"리더님,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합니다."
"아! 집에서도 잔소리 듣는데 그만 좀 하세요. 잔소리하는 게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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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러니까 코드를 떡이 되게 만들어놓고 엉망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때는 요구사항이 그래서..."
"그럼 유지보수가 잘 되게 만들어놨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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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내가 왜 설득을 시켜야 합니까? 큰 회사 리더를 우습게 아는 거 아닙니까? 재계약을 연장하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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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대 피고 하시지요." (우르르 몰려나간다)
(임산부 혼자 남아 회의실을 지킨다.)
"그럼 담배 피우면서 얘기한 대로 결론은..."
(비흡연자) "전 못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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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업무 스트레스(28.2%)보다 인간관계 스트레스(71.8%)가 더 심하다고 한다. 이유를 보면 해러스먼트 관련 항목이 꽤 있다.
1위 - 업무 분장 등에서 자기에게만 유리한 비합리적인 결정이 잦음(44%, 복수응답)
2위 - 자기 경험만을 내세우는 권위적인 태도’(40.4%)
3위 - 업무를 나에게 미룸’(37.6%)
4위 - 사적인 일 부탁, 잔심부름 등 지위를 이용한 갑질’(28.1%)
5위 - 인격모독 발언 빈번’(19.9%)
6위 - 업무 성과를 가로챔’(15.9%)
(출처: 머니투데이 기사 https://bit.ly/3cxAnBf)
찾아보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제76조)'가 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되었다고 한다.
직장 내 관계 또는 지위의 '우위'를 이용했는지, 업무 상 적정 범위를 넘었는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켰는지를 따져봤을 때 모두 해당이 된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
피해자가 회사에 신고하면 회사는 즉시 조사에 착수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신고자는 근무지 변경, 유급휴가 등 조치를 취하고, 가해자는 징계해야 한다. 회사가 만일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고용노동부가 정리한 괴롭힘 유형에는 개인사 소문 내기, 음주·흡연·회식 강요, 욕설·폭언, 다른 사람 앞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 정당한 이유 없이 연차 못쓰게 하기, 지나친 감시 등이 있다. 특히 상시 노동자 10인 이상 사업장은 이런 행위를 예방하고 이에 대해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내용을 취업규칙에 반드시 넣어야 한다. (출처: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9003786)
나 또한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한동안 소화불량 및 불면에 시달렸다. 한두 번 심한 말을 듣는 것은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번 그것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시당하는 말을 반복해서 듣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같이 일하는 몇몇의 사람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예전에는 스트레스 강도가 너무 심해서 우울증도 왔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상황이 해러스먼트에 해당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회사를 가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읽어보고 싶었다.
캠브리지 사전 정의에 따르면 해러스먼트는 '사람에게 하는 비합법적 행동으로, 합리적인 목적이 없이 반복적으로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모욕, 협박, 접촉 혹은 공격적인 말로 정신적 또는 감정적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말한다.
illegal behaviour towards a person that causes mental or emotional suffering, which includes repeated unwanted contacts without a reasonable purpose, insults, threats, touching, or offensive language: (https://dictionary.cambridge.org/)
그렇다면 왜 제목에 게임이 들어갔을까? 상황이 주어지고, 컴플라이언스 실에 보고가 되면 원인을 파악하다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는 그 과정을 이른 것이라 해석해본다. 게임이기 때문에 내가 혹은 상대가 얼마든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해러스먼트라는 주제가 무거워서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했다. 소설은 총 5장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존재한다. 꽤 흡입력 있다. 사건이 생기고 숨겨진 갈등 상황이 드러나고, 위기가 생긴다. 긴장감으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 넘기다 보면 소설의 끝이다. 스토리 전개가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작가가 이노우에 유미코로 <하얀 거탑>의 각본가이다.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아키쓰 와타루: 마루오 슈퍼 도야마 추오점에서 점장. 과거 도쿄 본사의 중추였던 점포 개발부에 몸담고 있었고 잘 나갔지만 7년 전 어떤 사건으로 본사에서 쫓겨남. 갑자기 본사에서 컴플라이언스 실(컴플라이언스 compliance는 법률, 명령 준수라는 뜻이며, 보통 기업 내의 부서일 때는 법령 준수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 옮긴이) 실장으로 발령 받음
마루오 다카후미: 재벌 3세. 경영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 아키쓰를 갑자기 컴플라이언스 실 실장으로 발령
와키타 하루오: 실세 상무, 7년 전 아키쓰 와타루와 콤비로 일함. 가까운 부하직원이었으나 마루오 다카후미에게 아키쓰를 컴플라이언스 위반으로 신고. 깔끔하고 신중한 일처리로 마루오 다카후미의 부족함과 대비됨
다카무라 마코토: 컴플라이언스 실 직원. 원래 모시던 상사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그만두어 새로 온 아키쓰와 컴플라이언스 실 업무를 수행. 컴플라이언스실에서 다루는 다양한 해러스먼트에 대한 정의 및 규정을 잘 알고 있음.
각 장마다 여러 가지 해러스먼트 사례가 나온다. 1장은 파워 하라(파워 해러스먼트 power harassment의 일본식 준말, 직장 내 상사의 괴롭힘을 뜻한다- 옮긴이)에 대한 내용이다. 부하직원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것도 '파워 하라'에 속한다고 한다. 고객 센터에 다섯 살 아들이 먹던 크림빵에서 1엔짜리 동전이 나왔다고 접수된다. 동시에 신원 미상의 여성이 회사로 전화해서 '파워 하라'를 중단하지 않으면 모든 마루오 슈퍼 점포에 제제를 가하겠다고 협박한다.
약간 스포를 하자면 (더 반전인 스토리들이 많으니...) 사건의 가해자는 슈퍼에서 일하는 사원이었다. 열심히 일하라는, 떨어진 1엔도 있으면 주우라는 점장의 말에 화가 나서 악의를 품고 일부러 빵에 1엔을 넣은 것이었다. 피해자일 거라 생각한 직원이 알고 보니 가해자라는 사실은 반전이다. 또한 주인공인 아키쓰는 이 일을 대표 및 당사자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해결책을 마련하고, 회사 이미지를 위해 전량 빵을 회수한다. 또한 피해를 입은 고객에겐 돈이 아닌 계속 이용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슈퍼 상품권을 준다.
개인 입장에서 해러스먼트도 심각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그렇다. 여러 구성원의 보호뿐만 아니라 회사 법적 이슈, 브랜드 가치 등 다양한 맥락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컴플라이언스 실은 개인의 편만 들 수도 회사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 만도 없다. 이런 다차원적 어려움을 주인공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간다. 해결하는 방식이 정답은 아니다. 다양한 이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정답이 있을까 싶다.
아키쓰와 마코토의 부서에서 첫 만남은 예사롭지 않다.
"데이트 약속 취소?"
"네......?"
"사적인 전화는 컴플라이언스 위반 아닌가?"
(중략)
"왜 아무 말 못 하는 거지? 인사과에 물어봤는데 자네는 4년 차인 모양이던데, 스물다섯이 넘어서도 요령 있게 대답 못하는 여자는 필요 없어."
(중략)
"마코토 짱, 잘 부탁해요."
아키쓰는 진지하게 손을 내밀었지만 마코토는 악수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 호칭은 컴플라이언스 실 실장으로서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금 하신 실장님 말씀, 스물다섯을 넘어서도 운운하신 것은 연령차별, 그리고 여자라는 표현은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또한 필요 없다는 말은 협박, 악수를 강요하는 행위는 인사권을 가진 상급자의 파워 해러스먼트에 해당합니다. 컴플라이언스실에 신고했을 경우 감봉, 견책에 해당하는 처분을 받을 겁니다."
이 장면에서 마코토의 발언에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느낀 건 나뿐일까?
작가가 일반적인 해러스먼트 사례를 약간 비틀어서 새로운 각도에서 보여주고자 한 점은 좋다. 하지만 자칫하면 해러스먼트 가해자가 이를 역으로 이용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생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해러스먼트는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수 있으며 (악의적으로 의도했든 아니든)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강조하려는 것이리라 추측해본다. 또한 내용 전개 방식이 재미있어서 추천하고 싶다.
나도 이 작가처럼 내가 겪었던 상황을 이렇게 스토리로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
p.s 서두에 적은 사례가 모두 해러스먼트일까?
* 이 책은 성장판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내용에는 제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는 명시하였으며, 그 외 이미지는 제가 depositphotos에서 구매한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