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보가 터져버렸다.. #day16

2018.03.05 Key West, Florida

by 오미

#어마무시한하루 #폭풍같은하루


오늘은 오전 6시 출근. 이 시간엔 조용하고 일도 별로 없다. 고객들로 정신팔릴 일이 없어서인지, 메니저가 (4명중 한명) 유난히 사소한 지적질을 많이했다. ‘응 오케이 알겠어’라고 잘 받아들이다가 말도 안되게 자꾸 반복하니, 지난 2주간 여러 이유로 속에서 닳아 오르다 식었다 하던 물이, 끓는 포인트인 100도의 마지막 1도를 닳아 올렸나보다. 싫은 소리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늘 삭히고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 앞에서 만 23년 인생 처음으로 대폭팔을 해버렸다. 짝짝짝.

감정이 도저히 삭혀지지가 않았다. 깊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숨쉴 수 있게 해줄 무언가를 간절히 찾는 마냥 30초만에 엉엉 울면서 방으로 뛰어와서 큐티책을 허겁지겁 찾았다. 오늘의 날짜를 펼쳤다. “Make friends with the problems in your life”. 정말 너무 어렵고 또 어렵다. 아직 오전 8시라니.


Key west, Florida에 정박했다. 점심때 스스로를 위로해줄겸, 육지공기 마시면서 식사하고 싶어 나왔다.

기빨린 몸을 이끌고 혼자 탐험 하려는데, 누군가 부른다. 배에서는 다들 유니폼 입고있어서 사람들을 유니폼으로 인식 했나보다. 나를 부르는 저 사람 누군지 모르겠다. 엄청 반갑게 다가와서 맛있는 중국식당 아는데 있다고 같이 점심먹으러 가잔다. 오전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버렸는지, 누군지 확인도 안하고 흔쾌히 오케이했다. 오케이하고 멍때리면서 골목 요리조리 따라가다 정신차리니 인도네시아 아저씨 5명이다. 쫄보 겁쟁이 나오미는 긴장 상태 200프로 상승. 망했다. 지금이라도 일이있다 할까, 몸이 안좋다 할까, 배로 돌아간다 할까 고민하다보니 도착했다.

간만에 쌀밥을 먹어서인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통성명은 뒷전, 다들 공짜 와이파이로 가족, 친구, 애인과 폭풍폰질이다. 괜히 겁먹었네 싶었다. 심지어 더 미안하게시리, 식사 마치고는 오늘은 우리가 대접하겠다며 우리와 함께 해줘서 고맙단다. 뭐지 이 친절 감히 내가 받아도 되는건가...ㅠㅠ

오후 근무를 위해 배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도 들리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들려서 당 충전도 만땅 해버렸다. 그나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거 같았다.


그리고 배로 올라와서 같이 점심 먹은 동료들과 각자 캐빈으로 갈려져 헤어지기 직전의 마지막 복도를 지나며 봉지를 하나 건낸다. 아까 마트에서 초콜릿 이빠이 사는거 보고 얘네 초콜릿 엄청 좋아하나보다 했는데, 프론트에서 사람 상대로 일하면 당 떨어진다고 초콜릿 꼭 챙겨 먹어란다. 너무 고맙다고 하니, ‘If my friend is happy, I am happy’라며 떠났다. 뭐지 이 따뜻함.ㅠㅠ


덕분에 힘입어 오후 출근을 했다. 그 사이에 메니저들끼리 신입이 미쳐 날뛴다는 긴급 미팅을 했나보다. 다들 갑자기 엄청 젠틀하고 스윗하다. 오히려 더 무섭고 소름끼친다. 오후 근무 및 부서 주간 미팅까지 무사히 마치고 (넷중 제일 도움주는) 메니저가 저녁을 같이 먹으러 가잔다. 너 고향 음식 그리워할 타이밍 된거 같다며 나름 비슷한 스시를 먹으러 가잔다. (배안의 스시 식당이 있다) 맛있게 먹고 오늘은 자기가 쏜단다. 뭐지... 졸지에 점심 저녁 다 얻어 먹었네.ㅠㅠ

아무래도 이런 따뜻한 사람들 마음 덕에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거 같다. 사실 따뜻한 스토리들도 종종 있는데, 오늘은 내 삶에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꺼 같아서 기록하고 싶었다. 괴로운 하루의 시작이 다행이도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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