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2
#빡침주의
#심호흡한번하고
#오늘의일기시작
내가 속해있는 Guest Relations 부서는 직급 낮은 순서대로, 백오피스에서 전화받는 Junior Guest Relations Officer(JGRO) 그리고 나처럼 데스크에서 일하는 Guest Relations Officer(GRO)가 있다. 이 위에 Assistant Front Desk Manager(AFDM) 한명, 그 위에 Front Desk Manager(FDM) 한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부서에서 제일 높은 Guest Relations Manager(GRM)으로 구성 되어있다.
이 중에 프론트 데스크 메니저가 얼마전에, 내가 고객을 상대하고 있는데 내 뒤를 지나가면서 묵직한 서류 뭉탱이로 뒷통수를 후려쳤다. 와씨 뭐지? 완전 벙찌고, 너무 놀래고, 빡도 이빠이 치는데 고객 접대 중이여서 평정심을 가지려 노력했지만, 너무 무방비 상태였는지라, 고객은 내가 부들부들하는걸 눈치 쳈을꺼다. 아니, 그 순간에 나보다 더 놀랬을수도. 하아.
소심 쫄보 나오미는 싫은 소리를 잘 못한다. 원래라면 쭈뼛쭈뼛 하다가 주변 동료들한테 나 혹시 뭐 잘못했냐고 물었을 내가, 꼭지가 돌아버리니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내 모습을 마주했다. 메니저고 뭐고 바로 찾아가서 “너 방금 왜 후려친거냐?”라고 대들었다. 화가 가득한 내 표정을 보더니 당황했는지 어색해하다가 “장난이엿거든?!”라며 오히려 자기가 더 큰소리친다. 와 뭐지? 진짜 어이가 탈탈 털렸다. 솔직히 나는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면 충분히 마음이 풀렸을 쉬운 사람인데... 방귀뀐 놈이 성낸다더니 정말 옛말 하나 틀린게 없구나 싶었다.
화가 미친듯이 솟구쳐서 “너네 나라에서는 직원 뒤통수 후려치는게 장난일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세상 예의없고 사람 엄청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한창 따지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갑자기 고객들이 데스크로 우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남은 하루 온종일 나를 일부러 피해 다니는 그 사람 덕에 얼마나 약오르고 열받던지...
그날밤, 퇴근하고 방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분노도 가시지를 않아서, 그 다음날 평소에는 무섭기도 하고 여러모로 엮이기 싫어서 근처에 얼씬도 안하는 GRM 오피스에 들이 닥쳤다. 다 털어버리고 배내릴 각오로 당당히 들어가서 보고를 했다. 후아 대체 어디서 나온 용기였을까.
처음에는 내 말을 못 믿어서 벙쩌 있더니, 금방 사과를 하고 자기가 책임지고 처리하겠단다. 엥? 이렇게 빨리 사과할 사람이 아닐꺼라 생각했던지라, 사실 좀 놀랬다. 그러더니 나보고 너 디게 순하고 야무지게 눈치껏 할일만 하는 앤줄 알았는데 지금 이 나오미 처음 보는 나오미라 무섭다더라. 그러면서 나보고 “고요한 살인자” 같다고 했다. 욕이니 칭찬이니?
엄마는 이 얘기를 듣더니 남의 집 귀한 딸보고 살인자라 했다고 열 받아서 팔짝팔짝 뛰었닼ㅋㅋ 근데 아빠는 오히려 잘됬다고, 지금까지 나오미가 기분 나빠도 참고 표출하지 않아서 쟤는 막 대해도 되는 애구나 무시하다가 이까지 왔을텐데, 오늘 이후로 애들이 나오미 함부러 못 건들꺼라는 의미라고. 아빠가 하는 말은 왠지 다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걸... 아빠도 배 생활할때, 동료가 뒷통수 후려쳐서 나처럼 앞뒤 안가리고 다 엎어버린적이 있다더라. 부녀통수 바닷동네 장구설. 에헤라디야. @_@
근데 정말로 다음날, 온통 무시만하고 스페인어 필요할때만 나한테 와서 알랑방구 떨던 얄미운 인간들이 신기할 정도로 갑자기 젠틀해지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야 배 삶이 좀 쉬워질라나? 진작에 이런 강한 모습 보여줬어야하나? 모르겠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겐 약하려고 노력하는 나에게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 세상이 가끔은 얄밉다.
이 복잡한 감정을 알았는지 AFDM이 내가 쓰는 컴퓨터에 귀여운 그림을 그려놓고 도망갔다. 나 이거 보고 피식 했으니 성공하셨어요. 고마워.
이런 날엔 퇴근하고 바다 바라보며 동료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특별 커피를 마시면 그래도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는듯 하다. 모둔것이 한정적인 이 곳에서 그나마 찾은 힐링요소 중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