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5
#밀린일기2
#에피소드4
우리 크루즈 측에서는 다양한 관광투어 서비스가 제공된다. (승무원은 공짜). 정박하는 날이면 도시 투어들이 있지만, 종일 항해하는 ‘sea day’는 크루즈 내부 투어가 제공된다. 즉, 럭셔리하고 삐까번쩍한 크루즈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고 애쓰는 부서들을 빼꼼하는 투어. 주로 엔진룸, 식당부엌, 세탁소, 브릿지(크루즈 제일 꼭데기 선장실), 등을 구경한다.
Sea day는 우리에게 제일 바쁜 날 중 하나. 정박하는 날에는 다들 관광하러 배를 내리지만, 씨데이는 결국 3000명이 하루종일 배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사고치는 날이다. 뒷수습은 대부분 우리 몫.
그렇게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던 어느 씨데이. 갑자기 크루즈 전체에 승무원 전용 긴급 암호 방송이 울려 퍼진다. 전체 승무원 일동얼음. 브릿지에서 메디컬 이머젼시다. 메니저들은 방송된 위치로 달리고, 밑층 메디컬 팀에서도 장비들고 우르르 뛰어간다. 데스크에 남은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 질문하는 고객들에게 아무일 없다는 듯이 행동하기.
알고보니 내부 투어 마지막 장소인 브릿지 투어 중, 갑자기 한 할머니가 쓰러진 것. 그래도 다행이 메디컬 팀의 활약으로 병원 내려가서 링겔만 맞고 바로 퇴원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날, 투어를 함께 참여했던 고객 2명이 데스크로 오더니 그 할머니 땜에 불쾌했다고 화를내며 환불을 요청하는 것. 담당 부서랑 바로 연결 해줬지만,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나였다면 할머니 괜찮으신거에 마냥 감사했을꺼 같은데.. 그리고 심지어 너네 투어 거의 다 마치고 마지막 장소였자나...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의 다름에 정말 관대한 편이지만, 저 순간만큼은 완전 울컥해서 두 사람이 미웠던건 안비밀.
다음 날 한 할아버지가 씩씩거리며 데스크로 오신다. 어제 투어 환불 얘기를 하시길래, 이런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는 세상의 현실에 착잡해 하고 있는데.. 엥? 할머니 남편이란다. 심지어 링겔 값도 환불하란다. 잉? 사람을 살려내라고 한적도 없는데 왜 허락도 없이 비싼 링겔로 니네 마음대로 사람 살려내고 자기들한테 청구했냐더라. 너무 화난단다. 나 포함, 듣고 있던 동료들까지 단체로 황당. 너무 벙쪘다. 누가 내 현실에 정지모드 눌려 놓은줄. 사람 살리고 욕먹는 날이 올줄이얔ㅋㅋㅋ 오늘 하루도 역시나 신선했습니다.
이날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이, 어느 고객의 “내가 너 나이였다면 승무뭔했을꺼야”. 매순간 내가 미쳤지 나 여기 왜있지, 특히 이런 날엔 더 머리가 복잡해지고 답답하지만, 덕분에 나는 지금 청춘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구나 위로를 얻으며 하루를 마무리 해본다.
#에피소드5
노부부가 데스크로 다가온다. 평범한 업무를 도와드리다가 수다가 터졌다. 종종 노부부들과 데스크에서 수다 삼매경이 시작되는데, 다양한 이야기 덕에 재밌도 있고 시간도 잘가서 좋다.
오늘은 한 할머니가 본인이 키우시던 애완동물에 대해서 얘기한다. 뒷마당에서 풀어놓고 키웠는데 그렇게 귀엽고 순종적이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펫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고.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지금은 너무 보고싶을 뿐이라며 글썽거리기도 하신다.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다? 희안하다? 진짜?만 머릿속을 떠돈다. 그 애완 동물은 80키로짜리 늑대.
처음에는 강아지가 산속에 버려져있길래 데리고와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키워도 키워도 안 멈추고 계속 크길래 그제서야 늑대인걸 알았다곸ㅋㅋㅋ. 근데 공격적이지도 않고 너무 순하고 따뜻한 존재였단다. 손주들이 놀러오면 얼굴이 침범벅 될때까지 핥아대며 뽀뽀를 선사했던 스윗한 내 새끼였단다. 하핳.
옆에서 같이 호기심있게 조용히 듣고만 있던 다른 고객이 갑자기 나만 들리게 ‘I bet he was tasting her grandchildren, not kissing them’라며 후다닥 데스크를 떠난닼ㅋㅋㅋ 나만 저 할머니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게 아니였구나 싶어, 동지가 생긴 느낌이였닼ㅋㅋㅋㅋ 근데 저 말이 너무 웃겼닼ㅋㅋㅋ
세상은 정말 좁지만도 넓으며,
상상 이상의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스팩타클이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