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4
#크루즈에피소드 #밀린일기
크루즈 승무원으로서, 특히 크루즈 프론트에서 일하다보면 내 정체성의 혼란이 자주 온다. 내가 승무원인지, 의사인지, 예능인인지, 경찰인지, 통역사인지, 상담사인지, 은행원인지... 그냥 만능인 요술램프 지니인거 같기도.
#에피소드1
유난히 조용한 저녁식사 시간쯤에 갑자기 한 아줌마가 프론트로 오더니 휴지 좀 달란다. 그래서 웃으면서 휴지를 건네 드리는데, 받으려고 드는 손이 완죠니 피범벅. 너무 놀래서 어쩌다 이렇게 되셨냐니까, 갑자기 분 바람으로 쎄게 닫힌 문 사이에 손가락이 찡겼다는 것. 그러면서 보여주시는데 손톱쪽 손가락 한 마디가 덜렁거리는 것. 충격스트. 바로 메디컬로 가자고 설득하는데, 죽어도 안가겠다고 때쓰는 우리 고갞님. 자기는 돈내고 휴가 와서 레스토랑 예약했기 때문에 저녁 먹으러 갈꺼라고, 자기가 간호사여서 괜찮다고, 끝까지 고집부리고 때쓰더니 결국에는 피줄줄 흐르는 손가락을 움켜잡고 떠나심. 하핳. 나는 메니저한테 보고 완료. 역시나 메니저는 내가 끝까지 설득해서 메디컬 안데려갔다고 난리. 망할 낑겨사는 샌드위치 인생. 그러더니 메니저가 직접 다시 고객 찾아가서 병원 가자고 했다가 욕먹음.ㅋㅋㅋㅋ 메디컬 안간다고 했좌놔!!!!하면서.ㅋㅋㅋ 사이다. 고갱님 나이스샷!><
#에피소드2
한 모녀가 데스크로 다급하게 오더니 남편/아버지가 사라졌다고 울상. 모녀가 객실에는 확실히 없다지만, 카드사용 내역 확인하고, 크루즈내 행사 예약건 입장권 뒤져보면서, 객실로 수시로 전화 연결 시도. 흔적도 없이 사라짐. 그래서 동료랑 상의해서 결국 시큐리티(크루즈경찰) 전화해서 missing guest로 신고를 하고 서류준비 작업 시작. 사라진 고객의 사진과 인적 사항이 적힌 페이퍼를 정리해서 여러장 프린트 해놓고, 시큐리티가 우르르 데스크로 도착하자마자 프린트 해뒀던 페이퍼와 함께 게스트를 넘겼더니 비장하게 2인1조로 크루즈 수색 시작. 두둥. 5분 뒤 시큐리티들이 우르르 다시 데스크로 무리지어 오더니 찾았단다. 어디서 찾았냐니까, 객실에서 문 잠구고 꿈나라 여행 중이셨다는 우리 잠자는 바닷속의 고갞님. 하핳.ㅠ
#에피소드3
하루는 오전 출근하자마자 큰 사건이 터져서 관련 부서들 전화 돌리랴, 고객한테 전화하랴, 로그(사사건건 레포트 기록지)기록하랴 난리부르스 정신 1도 없이 수습하는데 자꾸 메니저가 나와란다. 동료들도 나오미 지금 바빠서 안되, 내가 대신 하면 안될까?해도 자꾸 나오미 나와란다. 아놔 짜증 이빠이 나서 이 상황에 대체 뭔 급한 일이길래, 한국인 고객 문제라도 난거냐 하면서 투덜투덜 따라갔더니, 겡웨이 앞에 서서 나가는 고객들한테 Have a good day라고 인사하란다.? 이게 굳이 꼭 나만 할수있어서 나 말고는 아무도 할수없는 일인가?하고 어이털려서 멍하게 서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시키는대로 나가는 고객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동료 두세명 더 질질 끌려 나오더니, 땀뻘뻘 겨터파크까지 개장 하면서 완전 즐긴닼ㅋㅋㅋ 흘러나오는 쿵짝 음악에 춤추면서 햅어굿데이를 목터져라 외친닼ㅋㅋㅋ 나 얘네랑 이러니까 뭔가 가게 개업 축하 풍선 인형이된 기분이였다.ㅋㅋㅋ 그래도 얘네 덕에 기분은 쪼매 좋아졌다.
이렇게 춤 추면서 배웅 하는데, 고객들은 지나가며 우리가 웃긴지 ‘You get paid for this?! What a life!’란다. 어우 고갱님 저 비싼 몸이여서 아무때서나 춤 안춰요. 겁나 힘들어요. 그리고 진짜 웃겼던건 이렇게 승무원 두세명이 춤추면서 인사하면 고객들도 덩달아 흥이 올라서 같이 춤추는데, 종종 휠체어, 목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나오던 고객들이 갑자기 의존품들을 던지고 맨몸으로 우리랑 춤추기 시작하는데 그 상황들이 진짜 너무 놀랍고도 웃긴닼ㅋㅋㅋ 앉은뱅이가 걷게 되는 예수님의 기적을 내 두눈으로도 똑똑히 목격하게되는 순간ㅋㅋㅋㅋㅋ 암튼 이 날 결국 세시간을 춤추고 들어가서 오전사건 마무리하고, 어찌저찌 하루를 마무리 했다. 이날 이후, 거지체력 나오미씨는 삼일동안 엉덩이랑 다리 근육통 땜에 오지게 고생스트. 그리고 서비스직의 소유자들에게는 안면근육 마비는 일상.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