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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미 Jan 28. 2021

본격적인 미국 간호대 편입 이야기

되면 정말 감사한 거고, 안돼도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지.


더 과감하게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편입할 대학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은 내 상황과 형편에 맞는 몇몇의 대학들로 간추린 이후, 각 대학마다 국제학생이 편입을 할 때 요구되는 구체적이 조건들 그리고 지원 마감 날짜를 꼼꼼히 정리했다. 하나씩 정리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이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SAT 점수, 토플 점수, 교수님 추천서 2개, 그리고 성적 증명서가 대부분의 대학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조건이었다. 토플은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쳤기 때문에 유효 기간이 한참 지난 상태였고, SAT는 쳐 본 적이 없어서 한편으로는 막막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투자라는 마음을 먹고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되는 데까지만 최선을 다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앞뒤 걱정은 잠시 묻어두고, 망설임 없이 곧바로 하나씩 차차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미국 간호대 준비, 그리고 그 와중에 마주한 기적들


일단은 SAT 그리고 TOEFL 중에 더 자신 있는 토플부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외국어 특기자로 대학 입학을 준비했던지라 낯설지는 않았는데, 6년 만에 다시 치려니 새삼 떨리기는 했다.


하지만 떨리는 것도 잠시, 대학 편입 지원 마감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바로 접수를 하려고 사이트에서 들어가는 순간 멘붕이었다. 그 당시 내가 거주하고 있었던 중남미 코스타리카에서는 그 달안에 토플 자리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싶었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코스타리카 바로 옆 나라인 파나마로 비행기를 타고 토플을 치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혼자 파나마까지 가기에는 무섭고, 그렇다고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아서 결국 중간 합의점을 찾은 것이 아빠랑 둘이 1박으로 파나마를 비행기 타고 가서 토플을 치고, 코스타리카로 다시 돌아올 때는 16시간 걸리는 국경 버스를 타기로 했다. (토플 하나 치는데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ㅠ).  


그렇게 나는 파나마로 토플을 접수하고, 공부할 시간도 없이 일주일 만에 바로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시험을 쳤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신으로 쳤는지 모르겠다.) 파나마에서 돌아오는 길 또한 스펙타클 했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 스펙타클 했기 때문에 다음에 따로 기록을 해보려 한다. 아무튼, 결과는 너무 다행히도 대학에서 요구되는 점수를 한 번에 넘을 만큼 받게 되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기적의 연속이 시작했지 않았나 싶다. 아니 사실 편입이 가능하다는 사실부터 나한텐 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토플 점수를 만들었으니, 그다음 스텝은 SAT였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제일 막막한 순서였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6년 만에 수능을, 그것도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미국 수능을 이 나이에 쳐야 한다니... 시험을 치기 싫다기 전에, 쳐야만 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믿기 싫었다. 그래도 이왕 해볼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먹은 거, 얼굴에 철판 제대로 깔아야지 싶었다.


일단, SAT 접수부터 하려고 사이트를 찾아 들어갔다. 회원 가입을 하고, 시험 접수를 하고 돈을 지불하는 형식이라는 것을 사전조사를 통해 머릿속에 정보를 미리 입력한 채로, 한 단계씩 차근차근 진행했다. 그런데 회원 가입하는 첫 과정부터 자꾸 막혔다. 같은 에러가 반복적으로 나길래 자세히 알아보니, 내 핸드폰 번호 그리고 내 이메일로 이미 존재하는 회원 정보가 있어서 계속 에러가 뜨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동생이 내 아이디로 접수를 했었나 짐작을 하며, 당황스러움은 잠깐 잠재우고 침착하게 아이디와 비번을 찾아내서 다시 시험 접수를 진행했다. (TMI: 동생은 한국 수능이 아니라 SAT로 대학을 간 케이스다).


시험 접수를 하려고 'My SAT'라는 창을 클릭하니 여러 창 중에 'My SAT Scores' 창이 있길래, "이거 눌렀을 때 점수가 뜨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뚱딴지같은 상상을 해보며 의미 없는 클릭을 하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엥? 내 이름으로 존재하는 SAT 점수가 있단다. "이게 뭐지? 헛것이 보이나? 왜지? 뭐야? 언제?!.." 시험 친 날짜 기록을 보고 계산을 해보니 내가 정확히 6년 전, 고3 때의 날짜로 시험 성적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기억도 안 나고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는 나의 학업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내 학년별 성적까지 기억하는 무서운 사람...)


아빠랑 통화하면서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을 하다가 어마 무시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또 TMI: 나는 외고 출신에, 외국어 특기자, 즉, 오로지 토플 성적 하나만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했었다.) 예전에 토플에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SAT의 리딩 부문이 토플 리딩 부문보다 훨씬 어려워서 SAT 리딩에 익숙해지면 토플은 껌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홀려, 정말 짧은 한동안 SAT를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토플 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 삼아 쳤던 SAT 시험 기록이 6년이 지난 시간까지 그대로 유효한 상태로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더 소름 돋고 놀라웠던 사실은, 그 당시 발로 쳤던 SAT 점수가 내가 지원하려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최저 점수의 마지막 1의 자리까지 정확히 일치했다는 것..!? 이건 '그분의 계획하심 속의 어마 무시한 빅픽쳐이자, 엄청난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예상치 못하게 SAT 점수까지 시원하게 체크 리스트에서 빠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와.. 다시 생각해도 소름 돋아.




이제 남은 건 교수님 추천서, 고등학교 및 대학교 영문 성적 증명서가 있었고, 최종 합격할 시 학생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기 때문에 바로 한국 가는 비행기표를 끊고 2주 내에 한국으로 출발했다. (당시 나는 본가인 중남미 코스타리카에서 지내고 있었다) 갑자기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한국 가서 본격적인 서류 준비를 하려고 가 주된 목적이긴 했지만, 사실 이 모든 결정을 가족 말고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대학교 교수님들, 친구들, 그리고 특히 내가 크루즈 승무원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던 대표님과 팀장님 (크루즈 승무원 선배님들)에게도 간호대를 편입할 거라는 소식을 직접 전하고, 그분들의 생각과 조언을 듣고 싶었던 이유도 컸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편입 추천서를 받고 싶었던 교수님께 꼭 만나 뵙고 싶다고 미리 연락을 드렸다. 하지만 여기서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줄이야.. 교수님께 한국 도착 날짜를 알려 드리고 만나 뵙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내가 귀국하는 그 주에 졸업생 특강을 오픈할 예정이라며, "아직 졸업생이 안 정해진 상태였는데 잘됐다, 나오미가 해라! 크루즈 승무원 이색 직업이니까 딱 됐네!"라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게 되었다. (새로운 길을 가게 됐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출국 전부터 부랴부랴 피피티를 만들고 입국하자마자 시차 적응도 못한 체 바로 포항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특강이라는 자리, 그것도 내가 너무 사랑하는 모교에서 후배들에게 특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절대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쁘기보다는 너무 긴장되고 두렵고 걱정이 되었다. 평소라면 걱정도 긴장도 잘 안 하는 내가 이 순간만큼은 너무 무서웠던 이유는 스스로 이미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예전에 언급했듯이, 나는 크루즈를 하선한 이후에 대인기피증 증세가 있었다. GRO 승무원은 '주로' 사람들의 불만들을 다뤘는데, 하선한 이후에도 본능적으로 사람이 다가오면, 그 사람이 나에게 내밀 불만을 온몸으로 대처할 경계심 가득한 방어 자세부터 취하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크루즈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베인 잔해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강의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다름이 아니라 한 자리에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대하는 자리여서. 물론 크루즈에서 만난 '프로 불평러 고객'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몸과 마음이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던 내가 이렇게 순식간에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게 슬프기도 했지만 당장은 강의를 진행해야 하는 현실이 정말 두려웠다.


하지만 너무 감사하게도 나는 이 기회를 통해 크루즈에서 얻었던 상처들이 아물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30-40명이 모인 자리에서 50분가량 강의를 하는 동안, 어느 단 하나의 비판과 불만의 눈초리는커녕, 오히려 집중, 존경, 관심 그리고 사랑이 담긴 따뜻한 눈망울로 강의실의 긴장감을 온기로 가득 채웠던 후배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계획에는 전혀 없었지만, 이 경험은 내가 새로운 걸음을 걸어 나가는 첫걸음이자, GRO 크루즈 승무원으로서의 막을 내리는 역할이 되었구나 싶었고,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엄청난 힘과 응원을 얻는 감사한 시간이 되었다.


강의를 마치고 나는 추천서를 부탁드릴 두 분의 교수님을 만나 뵀다. 사실 한 분은 원래 친분이 있던 교수님이셨고 (특강의 기회를 주셨던 A교수님), 한 분은 전혀 친분이 없는 교수님이시지만 (B교수님), 전공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엄청난 용기를 내어서 찾아뵙게 되었다. A교수님은 내가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고 말씀드렸을 때 너무너무 좋아하셨어서, 이걸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리기 두려웠고, B교수님은 친분이 없다는 단순하지만도 복잡한 이유 때문에 만나 뵙기 두려웠다.


먼저 A 교수님께 강의를 마치고 오피스에서 피드백을 하다가 지금이 기회다 싶어 바로 말씀을 드렸다. 구구절절 상황 설명을 드리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말씀드리니,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고 말씀드렸을 때보다 더 좋아하셔서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정말 놀랬다. 그리고 너무나도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시겠다며, 내가 이제까지 보았던 교수님의 모습 중에 가장 진심으로 기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모습에 자신감과 힘을 얻었다.


사실 나는 B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는 것이 더 두려웠다. 나는 학업으로는 꽝인 학생이었기 때문에, 추천서를 부탁할 면목이 없었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그리고 '잃을 게 없으니까'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쉴틈 없이 걸면서 나 자신에게 용기를 심고, B교수님을 만나 뵈러 갔다. 미리 연락을 드려서 잡았던 약속시간에 맞춰서 교수님 오피스로 긴장 가득한 상태로 찾아갔다. 워낙에 의욕 없는 학생이었어서 수업 도중에 교수님께 여러 번 찍혔던 과거가 있어서 혹시나 교수님이 나를 안 좋게 기억하실 생각이 가장 걱정이 되었지만, 정말 다행히도 교수님께서는 나를 기억을 못 하셨다.(휴-) 오히려 백지여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소개부터 천천히 그림을 그려 나갔다.


구구절절한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던 B교수님께서, 그동안 고생 많이 했겠다며, 그리고 앞으로의 길이 더 고생이겠지만 참 기대가 되는 미래라며 추천서를 써주시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셨다. 교수님 두 분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다.




서류적인 부분들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고 지원서도 다 제출하고 난 이후의 시기에, 마지막으로 크루즈 승무원을 준비하는 과정을 엄청나게 서포트해주셨던 대표님과 팀장님께 소식을 전해드리러 서울로 올라갔다. 이 또한 나에게는 참 긴장되는 여정이었다. 한국에 이런 회사가 있다니 싶을 정도로 대표님과 팀장님의 엄청난 서포트를 한 몸에 받아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기 때문에, 짧고도 길었던 한 컨트렉만에 많은 사람들의 꿈인 그 자리를 내려놓기로 결정했다는 말이 그분들 앞에서 쉽사리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꺼려진다는 이유로 전화나 문자로 달랑 통보드리기가 싫었고, 오히려 반대로 감사한 마음이 큰 만큼 꼭 직접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대표님과 팀장님 두 분을 서울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커피를 마시며 첫 컨트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나의 새로운 계획을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두 분 다 적잖이 당황하시는 듯하더니, 하시는 말씀이 '다른 승무원분이 이런 계획을 가지고 내렸다면 저희는 분명 반대했을 거예요. 그런데 나오미씨는 그 가능성이 충분해 보여서 진심으로 응원해드리고 싶어요."였다.


그리고 나의 준비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의 우연 같기도 기적 같기도 했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 내뱉으셨던 한마디는 잊을 수가 없다. "나오미씨 얘기를 듣다 보니, 하늘에 정말 누군가 존재하셔서 나오미씨의 삶을 대놓고 인도하는 거 같아요...".


두 분이 나와 같이 하늘에 계신 그분의 존재를 믿는 분이신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믿는 분이시든 안 믿는 분이시든, 내 삶을 바라보며 하늘에 계신 그분의 존재를 생각하셨다는 자체가 너무 감동이었다. 남이 봐도 내 인생은 그분이 주관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무한으로 감사했고, 두 분의 긍정적인 반응 또한 나에게는 엄청난 기적이었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의 '크루즈승무원' 챕터의 막을 깔끔하게 내릴 수 있게 되었고,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간호' 챕터의 시작을 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응원 속에서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야말로 복 받은 사람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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