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매일 성장하는 사람
https://youtu.be/1vWNR40yxcA?si=86rqrTD2TVlK-TSX
몸은 위스콘신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지만,
정신은 깊은 잠과 깨어남 사이를 떠다니며 아득한 곳을 유영하고 있었다.
미국 시골길 운전은 따분했다.
얼핏 눈을 뜨면 아까 봤던 똑같은 풍경,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명암으로만 구분되는 나무들,
아무도 없는 하이웨이에 간간히 발견되는 웬디스나, 하디스 같은 너무나도 미국적인 패스트푸드 가게들.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을 때쯤, 우리는 캠프장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곳은 결혼 1년 차인 우리 부부의 신혼집이자, 나에게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지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가 탄 밴에는 여덟 명의 친구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기나긴 여행에 지쳐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하이웨이에 몸을 맡기고,
나처럼 별수 없이 깊은 잠의 호수로 침전하다
공기 한 줌 마시러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며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그 밤, 깊은 겨울 하이웨이에서의 충돌은 예상하지 못했다.
둔탁한 충돌음, 반쯤 깨어 있던 사람들의 동시다발적인 몸의 쏠림,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다.
운전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남아있던 마지막 잠의 조각까지 떠나보냈다.
“We hit a deer”
사슴.
사슴은 어린 시절부터 지나가는 길냥이처럼 자주 보던 동물이었다.
결혼 후 1년을 보낸 캠프장은, 내가 어린 시절을 부모님과 함께 보낸 곳이기도 했다.
겨울, 성애 낀 유리창 넘어 두꺼운 커튼을 걷으면 수십 마리의 사슴 떼가
눈 쌓인 들판과 얼어붙은 호수 위를 줄지어 달려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겨울이면 견과류 한 줌을 새 모이통에 넣어 나무에 걸거나, 집 앞 야트막한 접시에 담아 두었다.
종종 너구리나, 귀엽다고 하기엔 너무 크고 거친 털은 가진 청설모가 모이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모이통이 비면 너구리가 밥 달라고 우리 집 현관 방충망을 긁는 경우도 있었다.
그 시절 아빠에겐 늘 불냄새가 났다.
내겐 익숙한 아빠의 냄새. 수염으로 까끌까끌한 얼굴, 잘 마른나무토막처럼 건조한 손은 두툼하고 거칠었다.
사포 같은 느낌의 손은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캠프장에서 목공을 담당했던 아빠의 몸에서는 움직일 때마다 톱밥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그런 아빠가 무턱대고 좋았다.
아빠 몸에 딸려오는 그 나무 부스러기들은 아빠는 꿈 조각들이었다.
늘 뭔가를 창조하고, 늘 꿈에 부풀어 있는 아빠를 나는 많이 닮았다.
나는 아빠의 그 부스러기들을 이해한다.
(아빠가 어린 나를 그린 그림)
아빠가 밖에서 며칠씩 불을 피워 야영을 하고, 미국 캠프들에게 목공을 가르치고,
카누를 타고 나가 딸 생각에 호수 밑바닥에서 까맣게 빛나는 흑운모 조각을 휴지에 싸서 가져오면,
나는 그것을 진귀한 보석을 받듯 보석함에 고이고이 간직했다.
행복이란 나에게 불냄새고, 나무 부스러기였고, 호수 바닥에서 발견한 검은 돌이었다.
나는 불과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