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쉬가 억울하지 않도록, 나는 다시 행복을 생각했다”
https://youtu.be/xit83Qka0ok?si=kZWkgqnO07VZH7_U
위스콘신 캠프장에 있는 다세대 주택.
그곳에서 신혼집을 꾸린 나는, 자연스레 함께 사는 이들의 요리사를 자처했다.
우리 집은 늘 친구들로 북적였고, 나는 그 활기찬 분위기에 취해 매번 다른 요리를 만들며 손님들의 배를 채우는 걸 즐겼다.
그 무렵, 요리에 대한 내 열정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음식에 도전했다.
그런 나를 멈칫하게 한 음식이 있었다.
러시아의 ‘보르쉬’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
사진과 재료만 보고 ‘이런 맛이겠지’ 상상하며 만들었지만 완성된 요리는 영 내 취향이 아니었다.
분명 정석대로 만들었는데, 이게 ’원래 맛‘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르쉬는 별로야”라고 단정 짓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혹시 보르쉬가 정말 끝내주는 음식인데, 내가 엉망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보르쉬가 억울하잖아.
하물며 음식도 그런데, 행복의 맛은 어떨까?
행복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남들이 말해준 ’행복의 조건’만 모아서 레시피대로 살았는데 원하는 맛이 안 난다면 -
얼마나 혼란스럽고 허탈할까.
어린 시절 -
위스콘신 작은 시골집 안까지도 들려오던 사슴의 발자국 소리,
친구처럼 마당을 찾던 청설모,
밤사이 쓰레기통을 뒤진 너구리의 흔적을 보물찾기 하듯 발견하던 아침.
모닥불 냄새나던 아빠,
아빠가 이번엔 뭘 만들었을까 기대하며 캠프장 모퉁이를 돌던 때의 설렘.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며 엄마의 품에서 스르르 잠들었던 오후.
허리까지 눈이 쌓여도
집 안은 늘 따뜻하고 포근했던 그 시절.
그곳은 나의
Home Sweet Home.이었다,
내가 느낀 행복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피부로 느꼈던 것들.
실체가 있고, 움켜쥘 수 있는 것이었다.
내게 행복은 어렵지 않았다.
지금도 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모닥불을 피운 뒤 남은 그 희미한 불냄새처럼
내가 기억하는 감각을 따라가면 행복은 다시 찾을 수 있는 걸.
감각으로 익힌 행복은, 잃을 수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