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들
본 글은 글쓴이가 서른 중반의 나이에 퇴사한 후 느낀 바에 대해 공유하는 내용입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론 이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달릴 때는 모르는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와 닿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퇴사를 하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과정 속에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벽한 선택을 하려고 아등바등했던 때가 있었다.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에서의 선택은 100:0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100, 잃는 것이 0일 수는 없다. 51:49 중 51을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 인생은 지금보다 조금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퇴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퇴사를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처럼 꿈에 부풀었다. 이때는 회사의 단점이 100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퇴사 직전, 급격하게 불안감이 밀려오면서 회사의 장점이 100으로 보이던 시기가 있었다. 100:0으로 생각하니 내가 가진 것들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탕이 가득 들어있는 유리병 속에 손을 넣어 사탕을 한 움큼 쥐었는데, 사탕을 꼭 쥐는 바람에 손이 잘록한 병 입구에 막혀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안정성, 사회적 지위 등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을 모두 유지하면서 꿈까지 찾겠다는 건 욕심이었다. 손에서 사탕을 놓고서 다시 생각해 봤다. 회사의 장점과 단점, 퇴사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보고, 나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 ‘조금 나은’ 선택을 했다. 49를 버리고 51을 얻었다.
이직을 고민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회사와 이직하는 회사를 비교하면서 완벽한 선택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도, 이직하는 회사도 장단점이 있다. 기준은 외부 요인이 아닌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먼저 정해야 한다. 연봉이 우선이라면 연봉이 높은 회사로, 사람이 우선이라면 좋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나머지 조건들은 과감히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기 때문이다. 장점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일에서도 얻을 게 있다. 좋다고만 생각했던 일이 나중에 화살이 되어 나를 공격하기도 한다. 완전무결한 선택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만 선택이 어려워진다.
인생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나 빼고 다 잘 살고 있다는 착각 때문인 경우가 많다. 단언컨대, 다른 사람들도 다 고통스럽다. 인생에는 기복이 있다. 누구든 ‘업’과 ‘다운’이 있다. 상승장에 있는 사람을 보고 하락장에 있는 내가 실의에 빠질 필요 없는 이유다. 다음에는 내가 상승장, 쟤가 하락장이다.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인생이 하락장일 땐 나 자신을 다지는 시간으로 쓰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 무언가에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채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대 때는 인생에 기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늘 좋기만 하고 싶었다. 슬럼프가 두려웠고, 실패가 무서웠다. 고통은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고서 인생은 대체로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통을 인정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고통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자,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할 수 있게 됐다.
일상에서의 기분도 그렇다. 인간이라면 처지는 기분을 자주 느끼는 게 정상이다. 예전에는 기분이 처지면 억지로 올리려고 했다. 우울한 건 나쁜 것이라 생각했다. 술을 마셔서라도 ‘업’되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기분이 좋은 사람은 “약 빤 것”이라는 한 선배의 말을 듣고 편안해졌다. 이제는 하루하루의 기분에 휘둘리지 않게 됐다.
한국은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다.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는 하나의 노선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교를 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고, 취업을 하면 결혼, 그다음에는 양육 등 정해진 인생 노선이 있다. 한 지점을 통과하면 다음 지점이 나타나는, 직선적이고 병렬적인 노선이다. 이 노선을 타는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길일뿐이다. 일반적으로는 나의 선택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평범함을 유독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이 노선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인생이기에 무언가 잘못됐을 경우 남 탓을 할 수 있다. 사회 탓, 나라 탓을 해도 된다.
문제는 이 노선 외에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발생한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면 비난이 날아온다. "뭣하러 그런 걸 하느냐", "그렇게 해서 잘 될 리 없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안 된다"면서 돌을 던진다. 주체적인 선택에 따른 반작용이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점은 이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책임은 내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할 정도로 클 수 있다. 불이익과 갖은 수모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패라도 하는 경우에는 위축되어 앞으로 더 나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이 무거워 나를 짓누른다는 것을 알지만, 오늘도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간다.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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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도 계속 업로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