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 달라져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달렸다.
하루에 5km씩 가능하면 매일매일 뛰어서 (비오거나 너무 추우면 쉬었다) 지난 11월달은 121km를 뛰었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로인한 변화는 앞으로의 나라는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해줄것이라 믿고 있다.
달리기의 시작은 계획과는 전혀 무관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장마가 지나고 날이 찌는 듯한 더위를 느낄 때 나도 어느샌가 찌고 있었다.
아니 이미 쪄 있었다. 체중이 어느덧 97킬로를 넘어버렸다.
그래도 키가 큰 편이라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심하게 뚱뚱해 보이진 않는다.
다만 발목에 이상이 생겨서 피 검사를 했을 때 나온 결과는 듣고 싶지 않았던 그 한마디를 듣게 해주었다.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고, 지방간만 살짝 위태로운 수준인데 지금부터 약 드시면 평생 약 드셔야해요. 일단 처방은 안 해드릴껀데, 위험한 수준입니다”
라는 의사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비만선고’
술과 고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이른바 “삼식이”로 41년을 살아온 나에게,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하지만 나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여전히 밤마다 술을 마시고 끼니를 거르지 않고 운동을 멀리했다. 사실 다이어트를 안해본것도 아니고 성공(이미 다시 체중이 늘었으니 실패지만)도 했었다.
92kg ->75kg 두달만에 감량,
88kg ->77kg 3주만에 감량,
93kg ->73kg 두달만에 감량
91kg ->78kg 한달만에 감량
네번의 성공이 있었다(네번의 실패가 뒤따라 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했던 방식은 극단적이라고 생각 할 만큼의 음식량 조절. 하루 3000칼로리정도 먹던 식사량을 500칼로리로 줄여서 다이어트를 했다. 어렵지 않았다. 어렵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안 먹으면 되니까. 그저 버티면 되는 것이 였으니까.
그래서 다시한번 다이어트를 해보자 생각을 했을 때도 당연히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내 몸은 다이어트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식사량이 부족하자 평소보다 심하게 허기가지고 일상생활이 안될정도로 먹을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한끼라도 굶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행동하고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위험수치라는 비만경고에 최소한의 자각은 갖고 있었기에 먹다가도 ‘아차!’하는 생각을 하고 그만 먹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다이어트도 아닌, 그렇다고 비만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상태도 아닌 의지없는 다이어트를 이어갈 무렵 평소처럼 연수원에 일을 하러 가게 되었다.
이번 일에서는 영상을 제작해야해서 무슨 테마로 할지 고민하던 중 연수원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을 보게 되었다.
‘아! 저거다! 취준생이라는 안개 속을 해치고 이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여러분들의 모습!’
이라는 주제를 생각하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으면서 ‘그래도 걷는 것 보단 뛰는게 열심히 달려온 모습같아 보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고 뛰기 시작했다.
뛰다 보니 나름 괜찮은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루만 찍기에는 너무 안개만 낀 영상이여서 그 다음날 새벽에 다시한번, 그리고 저녁에 다시 한번 뛰면서 영상을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주말에 가족들과 강원도로 캠핑을 갔을 때 아침에 일어나서 인근을 뛰면서 동영상을 찍었다.
여기서 최대의 걸림돌은 날씨도 카메라에 찍히는 풍경도 아닌 나의 체력이었다. 그렇다 난 운동을 하지 않고 앉아서 운전 만하고 일만하던 흔한 대한민국 아저씨였다.
체력이 어느 정도냐면, 쉬지 않고 1분이상 뛰지 못했다. 거리로 치면 300미터정도 뛰면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어제 뭘 먹었는지 금방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돈은 벌어야하니까 이왕 찍기로 한 영상이라도 완성할 겸, 와이프에게는 운동한다는 핑계도 댈 겸 계속 뛰었다.
계속 뛰다보니 의외로 재미도 있고 살도 빠지는 것 같아서 영상이 완성 될 때 즈음에는 주객이 전도가 되어서 영상이 아닌 달리기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체력은 쉽게 붙는 것 같지도 않고 붙지 말아야 할 체중은 떨어지질 않고 계속 붙어 있었다. 실제로 매일매일 달리기를 했는데 체중은 2~3키로 정도만 줄어들어서 달리기에 재미도 점점 줄어들었다.
점차 왜 달리기를 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품고 흥미도 잃어 갈 때, 강의 중에 한 강사님을 뵙게 되었다.
“과장님, 요즘 뭐해요? 얼굴에 생기가 도는데요?”
강사님이 인사처럼 가볍게 건낸 한마디가 지금까지 달리기를 하게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 인사말에 혼자 신나서, 강사님께 요즘 달리기를 시작해서 하고 있고, 왜 시작했고, 얼마나 뛸 수 있고, 하루에 얼마나 뛰고, 앞으로의 달리기 목표가 어떻고(사실 목표도 없었지만 갑자기 생겼다)...
엄청 주절주절 읊어 댔다.
그러고 나니 괜히 달리기로 인해 긍정적으로 외형이 변한것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 일 이후로 달리기 하루 한번만 뛰다가 새벽, 저녁 2회로 바꾸고 한달 목표도 설정하고 달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친한 동생에게 조언도 들으면서 페이스 조절이나 뛰는 방법 등도 배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런닝화를 구매하고 헬스 어플을 설치하고 마리톤 대회 일정을 확인하는 등의 변화가 생겼다.
변화는 체력의 변화를 가져왔고 쉬지 않고 30분정도는 거뜬히 뛸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생각의 변화인 것 같다. 체력이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 무엇을 생각하던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많이 라기보다는 자주라는 부분이 맞는 것 같지만 말이다.
요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재미를 떠나서 갑작스럽게 글을 쓰는 작가가 된 계기가 내가 갑자기 달리기에 빠진 것과 사뭇 다르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계획한 일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데, 그 반대로 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긍정적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들도 얼마든지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순간이 너무 짧았고 그로 인한 변화를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의 변화는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다. 다만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은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