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절친이 건네준 손편지

by 라미루이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는 한 시 즈음, 바쁜 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서니 한 여자아이가 날 손짓하여 부른다.

첫째 '솔'의 둘도 없는 절친이자 베프인 Y에게 다가간다.


Y는 아까부터 날 기다린 듯 망설임 없이 하얀 우편 봉투를 불쑥 내민다.

"이건 뭐니?"

"솔이 아빠, 이거 제가 쓴 편지인데요. 솔이 수업 마치고 나오면 꼬옥 전해 주세요.

제가 전해 주려 했는데 다른 반이라 마주칠 일이 없어서요."

빨간 안경 뒤에 반짝이는 두 눈동자가 솔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얼굴 생김새도 동글동글한 게 비슷하고, 키도 비스무리하다. 둘이 나란히 서 있으면 친구를 넘어 자매간이라고 누군가는 얼핏 착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 아저씨가 전해줄게. 요즘 잘 지내지?"

"네, 주말에 좀 심심하긴 한데 괜찮아요. 솔도 잘 지내죠?"

"응, 솔이 너 보고 싶어 해."

"저도 보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그래, 20분 정도 지나면 솔도 나올 텐데 기다리지 그러니?"

Y 옆에 선 아이의 엄마가 하얀 마스크를 코 끝으로 올리며 슬쩍 채근한다.

"아, 음. 나중에 봐야 될 거 같아요. 솔이 아빠, 저 가볼게요."


공손히 인사를 마친 Y는 엄마와 함께 교문을 나서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솔과 Y는 1학년 때부터 2년 동안 같은 반 친구로 지내며 방과 후에도 운동장에서, 도서관에서 붙어 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큰 다툼이나 트러블 없이 사이좋게 잘 지내왔는데, 올해 초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전염병이 퍼지며 얼굴을 못 본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라 핸드폰을 사 주지 않았고, 디지털 기기와 친숙하지 않은 공통점을 가진 아이들.

그런 탓에 둘은 또래 친구들이나 언니들처럼 카톡이나 영상 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신,

예전 아날로그 스타일로 손편지를 쓰거나 쪽지를 건네주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간 우체국을 통해 서로의 집을 오간 손편지만도 열 통 가까이 된다. 걸어서 10분 정도면 닿을 가까운 거리인데도 솔과 Y는 정성 들여 손편지를 쓰고 인스(인쇄 스티커)와 몰랑이 인형 같은 간단한 선물을 동봉해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수고를 들여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우체국에 들리는 것이 번거로울 때는 가끔씩 서로의 집에 직접 찾아가 우편함에 각자의 편지를 두고 오기도 한다. 코로나의 유행이 잠시 소강상태일 때는 각자의 집 앞에서 만나 편지를 직접 전해주거나 맞교환한 적도 있다. 예전 같았으면 집에 초대해서 놀게 하거나, 가까운 놀이터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맘껏 뛰놀게 했을 텐데 이제는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을 나누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곤 한다.


멀어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은 우울함, 외로움, 착잡함, 슬픔 등이 뒤섞여 소용돌이친다.

'예전처럼 친구들이랑 운동장이랑 놀이터에서 해가 지도록 놀고 싶은데.. 그렇게 놀던 때가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해.'

'이제는 학교에서 눈만 마주치고 긴 대화는 나누지도 못하고 방과 후에도 빨리 집에 가야 하니..

계속 우린 이렇게 손편지로 안부를 전해야만 하는 걸까?'

'언제쯤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마음껏 소리 지르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을는지..'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하고, 밖으로 나가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내년에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코로나가 물러가고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올 거라는 희망적인 미래를 설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한껏 밝아지지 않는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에 가한 충격파가 워낙 강력했고, 이미 아이들은 송두리째 바뀐 하루하루에 빠르게 적응해 버렸기에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20분쯤 지났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수업을 마친 솔이 내 손을 잡아당긴다.

"아빠, 손에 쥔 그 봉투 뭐야?"

"아, 이거. 아까 Y가 너 전해주라고 건네주더라."

"오! 얼마 만에 답장이야."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아이의 표정이 환해진다. 편지를 빼앗다시피 가져간 아이는 봉투 입구를 벌려 안을 살펴본다.

"안에 플라스틱 통도 들어있네. 편지도 한 장이 아닌데?"

"Y는 엄마랑 집에 갔어. 아빠가 편지 전해줘서 고맙다고 말은 전했다."

"..."

솔은 교문 너머 Y의 집 방향을 멍하니 바라본다. 얼굴이라도 보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엉긴 표정.


"빨리 집에 가서 편지 읽어봐야지."

이내 아이는 양손에 쥔 편지를 가슴에 감싸 안고는 활짝 웃는 표정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봉투를 기울여 안의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 확인한다.

먼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동생 '연'도 언니 앞에 마주 앉아 편지를 읽어본다.


"언니, 이건 암호문으로 쓰인 편지래. 암호 클럽 무전 신호를 확인하라는데?"

주의 깊게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아이들도 갸우뚱한 표정이다.

"이거 빼빼로 아니야?"

종이를 기다랗게 잘라서 크레파스로 색칠한 빼빼로가 눈에 띈다.

"선물로 새알 초콜릿도 같이 담았네."

어쩐지 봉투의 허리께가 불룩하다 했더니..


편지지 4장을 빼곡히 써 내려간 장문의 손편지(게다가 편지 내용은 그럴듯한 암호문이다.)와

직접 만든 종이 빼빼로에 솔이 좋아할 만한 초콜릿까지 담은 Y의 정성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아이들도 감동했는지 알 수 없는 암호문으로 가득한 편지지를 바라보며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곤 한다.

"아빠, 이건 아무리 읽어봐도 말이 안 돼. 세로로 읽어보라는데 도무지 모르겠네."

"어디 한번 아빠가 읽어볼까."


피라미드 모양으로 써 내려간 편지는 마지막에 "세로로 읽어"라는 추신이 쓰여 있다.

"세로로 읽어보라고? 그럼 피라미드 꼭대기부터 한자씩 읽어 내려오면 되겠네."

보다 못한 솔이 보채어 독촉한다.

"아빠, 어서 읽어봐."


"솔아, 빨리 너랑.."

"아, 알았다!"

솔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아챘는지, 내 손에서 편지지를 뺏어 들고는 나머지 내용을 소리 내어 말한다.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


마침내 암호문을 해독한 아이가 편지지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이 접어 입을 벌린 봉투에 다시 넣는다.

그리고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초콜릿이 담긴 원형 통의 비닐을 벗기더니

한알씩 한알씩, 입에 천천히 털어 넣는다.


"Y가 너 보고 싶은가 보다. 얼굴 보고 대화하고 싶은 가봐."

"응, 나도 Y 만나서 신나게 수다 떨고 싶어."

"그러면 솔아. 너도 답장 쓸 때 하고 싶은 얘기 다 써봐. 그동안 읽은 책이며 동생이랑 놀다가 싸운 일, 나중에 만나면 뭐하고 싶은지.."

"그러려고."


아이는 단답으로 내 말을 끊는다.

솔은 Y에게 보낼 답장의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자신도 암호문으로 써야 하는지,

시크릿한 선물은 뭘 담을지 등에 대해 고민하느라 머리가 지끈해온다.

한 손으로 귓가를 감싼 채, 새알만 한 초콜릿을 녹여먹는 솔은 곁으로 다가온 연을 바라본다.

"너도 이거 같이 먹을래?"

"응, 언니!"

연은 기다렸다는 듯 옆에 앉아 언니가 건네준 초콜릿 몇 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입에 하나씩 넣는다.

"맛있다, 언니."

"응, 지금까지 먹은 초콜릿 중에 제일 달콤해."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 가득 달달한 웃음이 번진다.


고개를 돌려 희붐한 창 밖을 바라보는 솔의 눈동자에

어렴풋한 Y의 얼굴이 맺히더니 잠시 머무른다.



부디 내년에는 아이들이 예전처럼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마주치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운동장과 놀이터에 어스름한 땅거미가 질 때까지 뛰놀 수 있는 그런 일상이 돌아왔으면 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정성이 가득 담긴 손편지 꾸러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