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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즐겁고 신나는 조립 생활

by 라미루이






어려서부터 난 '공돌이'의 기질이 다분했다. 조립하고 해체할 수 있는 무언가에 유난히 집착했다.

멋모르던 시절, 또래 친구들과 야생의 논밭을 뛰어다니며 살아 움직이는 곰개미, 메뚜기, 잠자리 등 곤충을 산채로 잡아 몸통에서 날개와 다리를 하나씩 떼어내며 그들의 구조를 낱낱이 확인하는 게 낙이라면 낙이었다.


어느 날인가, 집에 놀러 온 아버지의 회사 동료들로부터 감히 넘볼 수 없는 가격대를 자랑하던 레고 시리즈를 선물 받았다. 난 기쁜 나머지 선 채로 이불장 상판을 작업대 삼아 블록을 늘어놓고 우주 전투기를 뚝딱 완성해 벼렸다. 거나하게 술이 취한 아버지 친구분이 비틀거리며 다가와 내가 만든 레고 전투기를 만져 보며 "이거 선물 안 했으면 평생 서운했겠네." 하시며 불콰한 숨을 내뿜었다. 지금은 아버지를 포함한 그들 중 몇몇은 저 세상에서 술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열변을 토하고, 애꿎은 술잔을 꽝 내리치고, 취기가 깰만하면 고스톱 한판만 쳐볼까 하며 밤을 꼴딱 지새우겠지.

레고 블록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들고, 흥미를 잃어갈 즈음 당시 유행하던 조립식(플라모델)의 세계에 완전히 빠졌다. 아버지와 외가 친척들이 군것질하라고 쥐어준 100원짜리 동전을 모아서는 동네 구멍가게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들러 그대로 갖다 바치는 나날이 이어졌다.

당시 동네 아이들의 동전을 쓸어가던 그 '호돌이 슈퍼'는 각종 군것질 거리와 함께 막 출시된 따끈따끈한 신상 조립식을 구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항상 활짝 열려 있는 슈퍼 입구를 지나쳐 수북한 봉지 과자와 사탕의 유혹을 떨쳐 내면 안쪽 벽면에 다양한 플라모델이 담긴 박스가 테트리스 블록이 들어찬 것처럼 빈틈없이 쌓여 개구쟁이들의 코 묻은 동전을 남김없이 털어 가는 것이었다.

그랜다이저, 메칸더 V, 아톰, 마징가 Z, 철인 28호 등 당시 유행하던 TV 만화의 로봇부터 1, 2차 세계대전에 등장하는 전차, 전투기, 전함, 보병 등을 그대로 축소 재현한 밀리터리 시리즈 그리고 당시 1000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야 만질 수 있는 건담 시리즈는 그야말로 생일 선물 후보 1순위로 꼽히는 로망 그 자체였다.

박스 크기가 거대할수록 손에 닿지 않는 천장 가까운 곳에 수북이 먼지가 쌓인 채 우리를 내려다보듯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를테면 아카데미 과학의 '로마 군선' 이라든가.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 같은 것들이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아이의 집 거실 책장에 전시된 에나멜 도색까지 마친 로마 군선 완성품을 보고 너네 집 잘 사는구나 하고 엄지 척! 인정해 주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렇게 서울 강북의 야생에서 뛰놀던 우리는 언젠가는 플라스틱 모형으로 가득 찬 저 거대한 박스를 기필코 컬렉션에 추가하리라는 자본주의스러운 욕망에 서서히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동네 문방구에서 흔히 접하던 조립식(플라모델)


그렇게 이런저런 플라모델을 수도 없이 접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획기적인 신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교내에서 꿈나무들의 창의성을 기른다고 라디오를 직접 조립하는 경연 대회를 열었는데 내가 반 대표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4석 라디오 조립 키트와 전기인두, 실납, 니퍼 등을 동네 문방구와 철물점을 뒤져 마련했지만, 문제는 대회 전날까지 조립 매뉴얼을 아무리 뜯어봐도 뭔 말인지 이해가 안 되더라는 사실이었다. 지금이야 구글과 유튜브를 파고들면 기판 조립부터 납땜 등 노하우를 얻을 수 있지만 80년대에는 대회만 열었을 뿐 기본적인 사전 지식과 준비 사항에 대해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모난 자갈밭에 냅다 헤딩하는 독학자의 마음가짐으로 대회가 열리는 과학실에 입장하여 시멘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라디오 조립 키트를 늘어놓고는 조립을 시작했다.

거치대도 없이 벌겋게 달구어진 인두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녹색 기판을 들여다보며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여기저기서 탄내가 진동하더니, 급기야는..


"아악, 뜨거엇!"

"뜨엇, 흑흑."

서툰 인두질 탓에 손가락이며 손등을 덴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좁은 교실에 울려 퍼졌던 것이다.

나 또한 세발 달린 트랜지스터를 납땜하다가 인두기를 놓쳐서는 왼쪽 손목을 데어 한동안 커다란 물집이 생겨 고생했노라고 이제야 고백하고 싶다. (다행히 흉터는 남지 않았다.)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음에도 포기는 할 수 없었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우리의 용돈과 어린 시절을 바친 '조립 생활'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고통스러운 결과와 마주해야 했으니까. 오후 2시부터 시작한 라디오 조립 대회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까지 이어졌고, 난 진땀을 흘린 끝에 저항,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등 앙증맞은 부품들을 그럴듯하게 납땜하는 데 성공했다. 잘 구획되어 배치된 소도시의 구조물처럼 각자가 모여 하나의 기능을 구현하고자 정밀하게 움직이는 질서 정연함 그리고 완성을 향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조립식과는 다른 차원의 희열이 느껴졌다.


깔끔하게 납땜한 기판 후면


하지만 기판을 뒤집어 보면 니퍼로 깔끔하게 다듬지 못한 철선들이 삐죽빼죽 사방으로 뻗어 엉망이었다. 이대로는 밤을 새도 대회가 끝이 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린 담당 선생님이 다음 날까지 각자 라디오를 완성해서 제출하기로 종료 선언을 했다.

그 와중에 어느 6학년 형이 생생하게 작동하는 라디오를 완성시켜 고개를 수그리고 깊은 고뇌와 좌절에 빠진 우리들의 부러움을 샀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지직, 치칫>

그 선배가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고르는 가운데 언뜻 터져 나오는 누군가의 맑은 노랫가락은 우리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불러일으켰지만, 엄연히 넘을 수 없는 벽은 존재했고 그 벽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집에 돌아와서 회로도와 내가 조립한 기판을 비교해보다가 이번 라디오 조립은 성공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직감에 사로잡혔다. 납땜을 마친 일부 저항의 색이 반대로 배치되어 꼽혀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은 납땜을 잘못해도 흡취기로 빨아들일 수 있지만 그때 그 시절에 누가 그런 걸 사용할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결국 나의 첫 4석 라디오 조립 시도는 처절한 실패로 마무리되었고, 당연히 배터리를 끼워도 라디오는 묵묵부답,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세밀하지 못한 인두질 탓에 한쪽 귀퉁이가 녹아내린 라디오 케이스는 조립이라면 자신 있던 내 마음을 속절없이 허물어지게 하는데 충분했다.

다음 날 몇몇 아이들이 FM 채널을 수신하며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는 가운데 난 침묵을 지키는 라디오를 책상 안으로 밀어 넣어 숨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립에 실패한 아이들이 더 많았고, 피곤함을 무릅쓴 아빠가 작업을 도와줘서 성공한 아이들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난 어렴풋이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날 위로해준 '조립 생활'은 취미로 남아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 취미가 일로 이어지는 순간부터 저 달궈진 인두와 종일 씨름을 해야 할 것이고, 밥벌이를 위해 납이 타는 매캐한 연기를 맡아야 한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희미하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이후에 다시 한번 실패를 겪고 세 번째 시도한 끝에 4석 라디오는 내 손에서 정상 작동을 허락했다.

납땜질은 점차 익숙해졌고 LED 가 번갈아 점등하는 간단한 전자 키트를 두어 번 조립하긴 했지만 난 점차 조립 생활에서 멀어져 갔고, 빈자리를 메워준 건 다름 아닌


"컴퓨터"였다.


재능 넘치는 누군가가 고심해서 설계하고, 납땜하고, 공들여 조립한 컴퓨터를 다루는 것에 난 본능적으로 이끌렸다.

세운상가에서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친구가 값싸게 넘긴 애플 IIe를 처음 접했고, 이후 IBM PC에서 여러 고전 게임을 즐기며 외로움을 달랬다. 대학교 전공은 자연스럽게 컴퓨터 공학을 택했고, 갓 들어온 동아리 후배들을 위해 다수의 데스크톱 PC를 용산 상가에서 공수한 부품을 바탕으로 조립해 주며 용돈 벌이를 했다. (약간의 수고비를 조립비 명목으로 챙긴 것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운때가 맞아 테헤란로에 위치한 떠오르는 인터넷 회사에 연이 닿아 10년 넘게 다양한 경험을 하며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지속한 1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컴퓨터/인터넷 업계가 얼마나 광속으로 발전하는지를 생생히 목도했고(느리고 거대한 컴퓨터가 손 안으로 들어와 한 몸처럼 지내게 됐으니..), 그 바닥에서 살아남고자 애쓰는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고 소통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넘어서기 어려운 한계는 무엇인지, 나 자신이 평생을 걸고 '조립'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와 그 과업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점차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남들보다 일찍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고, 제2의 인생길을 개척하기 위한 가능성을 두드리기 위한 결정을 내린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 즐긴 '조립 생활'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도리가 없다.


만약에

누군가가 레고 신상을 선물하지 않았다면..

동네 '호돌이 슈퍼'의 벽면을 빈틈없이 채운 플라모델을 매일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골방에 틀어박혀 장시간 조립 생활에 몰두하는 아들의 내성적인 성격(어떻게 보면 자폐에 가까운)을 부모님이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면..

4석 라디오를 조립하면서 실패를 겪고 좌절하지 않았다면..


지금 난 다른 길 위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준 뭇사람의 운명은 불확실한 예외를 가능한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은 맨손으로 조립을 하며 손맛을 느끼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레고나 건프라를 조립하면서 어린 시절 느꼈던 그 '손맛'과 '희열'을 다시금 느끼곤 합니다. 기어 변속까지 가능한 레고 테크닉 스포츠카 시리즈나 조그만 부품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로봇의 관절이 인체의 그것과 비슷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이걸 설계한 자에게 장인이라는 칭호를 내려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인크래프트 같은 가상 세계에서의 제작 게임이 최근 트렌드라지만, 저는 무언가를 조립한다는 행위만큼은 직접 맨손으로 끼워보고 뜯어보고 돌려봐야 성이 차는 아날로그 형 인간에 가깝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서울시 아빠단 활동을 하면서 선물 받은 전자 학습 교재가 있는데요. 이 키트는 놀랍게도 기판을 조립하는데 납땜을 할 필요가 없어 아이들도 편하게 조립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키트를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뱀 로봇'을 만드는 과정을 간단히 남겨 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즐겁고 신나는 나름의 취미 생활을 평생토록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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